[양동규의 film·筆·feel] (15) 나하공항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

동시대 스냅 04_오키나와, 2019 / ⓒ2022. 양동규

동시대 스냅 

예정된 시간에 맞춰 활주로로 향하던 비행기는 이륙을 하지 못하고 한동안 멈춰서 있었다. 특별한 안내방송도 없었다. 옆으로 다른 비행기 한 대가 더 들어왔다. 시선을 하늘로 옮기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난비하고 있는 전투기 대여섯 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태평양 상공 또는 그 어딘가에 긴급을 요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10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난비하던 전투기는 한 대씩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이지? 왜 전투기가 이곳에? 비상상황인가? 그런 생각들을 하던 중 내가 앉아있던 비행기는 무심한 듯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시간은 사라져버린 시간이었다. 시간은 활주로로 이동하던 그전과 이어져버렸다. 문득 떠오른 생각 ‘여긴 오키나와공항이다. 오키나와공항은 국제공항이다. 국제공항에 전투기가 착륙했다. 긴급한 일이 있었나 보다.’였다. 

며칠 뒤에 사진을 정리하다 궁금해서 오키나와공항을 검색해 보고서야 알았다. 오키나와공항을 일본 내에서는 나하공항이라 부른다. 나하공항은 국제공항이면서 군공항이다. 일본 항공자위대와 미국 공군에서 함께 관제하는 공항이다. 근처에 미 공군 카데나 공군기지도 있다. 단 한 개의 활주로를 민항기와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 미 공군까지 다 해먹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에서는 귀를 찢는 전투기의 굉음을 들을 일이 없다. 그런데 이곳에 공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1989년 송악산 공군기지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공군은 기지 건설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떠오른 사진 한 장을 보며 제주에 제2공항이 건설되면 우리도 보게 될 풍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1945년 5월 30일 미군은 오키나와 슈리성에 성조기를 꽂았다.

#양동규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20대에 흑백카메라를 들고 제주를 떠돌며 사진을 배우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골프장 개발문제, 해군기지 건설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접하며 그로 인해 변화되어가는 제주의 본질을 직시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섬의 하루」, 「잼다큐 강정-범섬에 부는 바람」 등을 연출, 제작했다. 개인전 「터」(2021), 「양동규 기획 초대전 섬, 썸」을 개최했고 작품집 「제주시점」(도서출판 각)을 출판했다. 제주민예총 회원으로 「4.3예술제」를 기획·진행했고 탐라미술인협회 회원으로 2012년부터 「4.3미술제」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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