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생각] 여든 네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생명주(生明紬)에서  세명주(細明紬)로

겨울철 눈 덮인 한라산이 마치 흰 명주 실타래인 세명주(細明紬)로 보이는 것을 사람들은 쉽게 설맹디로 불렀고 세월이 흐르면서 제주인의 입말을 닮아 설문대 할망으로 의인화됐다. 설문대 할망인 한라산은 오늘도 제주를 굽어보면서 제주를 지켜주고 있다.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서는 마을의 안녕을 비는 산신 포제(酺祭)를 올렸고, 제주도에서도 산천단 한라산(漢拏山) 산신제(山神祭)를 올려, 제주사람의 안녕과 행운을 빌었다.

명주 실타래, 실타래 꼭지 부분이 한라산 백록담 정상. 실타래 사이는 99계곡과 오백장군에 대한  모형. 사진=이문호
명주 실타래, 실타래 꼭지 부분이 한라산 백록담 정상. 실타래 사이는 99계곡과 오백장군에 대한 모형. 사진=이문호

제주에서는 자나 깨나 늘 보는 한라산-설문대 할망, 기원전 4세기부터 제주에 사람이 살았고, 당시 제주에 모든 천지만물에 DNA를 창조했다는 설문대 할망. 겨울 한라산은 온통 눈으로 덮힌 설산, 모슬포 정남 쪽에서 한라산을 보면 영락없는 큰사람 모양의 흰 명주 실타래 설명주(雪明紬)로 보인다. 사진에서 보듯, 실타래 꼭지 부분이 한라산 정상이고 실타래 사이는 아흔 아홉 계곡, 실타래는 오백장군이다. 명주베틀을 짜는 것은 어멍과 할망이다. 할망이 집안에 큰사람 설문대다. 설문대어원을 추적해보면, 설명주(雪明紬→明紬(명주)→明紬(맹지)→明紬(맹디)로 변음(變音)되어 설명주(雪明紬) →설맹디 할망. 

* 제주에서 명주(明紬)를 맹지→맹디로 발음한다. 그러므로 雪明(맹)紬(디=대). 紬 ; 주 →지 →디 →대 ; 明紬→명주 →명지 →맹디 →명대 ; ‘설맹디(雪明紬) 할망 또는 설맹대(雪明紬)할망’이라고  제주 방언으로 변음화 현상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명대(雪明㣕)=눈처럼 밝다, 이 때 대(㣕)는 뜻 없는 접미어조사이므로. ‘雪明㣕’ 할망. 하면 명주(明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대’를 붙이고 있다. 

설맹디는 생명주(生明紬, raw silk thread)→셍 명지→셍 명디→셍 무엔디→셀멘디→설메인디-설맹디 할망 —설문대로 변천. 즉, 설맹디할망-설문대 -생명주(生明紬)- 세명주(細明紬) - (구개음화) 로 추정한다.

세명주(細明紬)란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이다.

▶명주(明紬)와 명주 실(사絲)  
면주(綿紬)=명주(明紬)를 말하고,  면주(綿紬)=실=《同》 명주(明紬) 실.
明紬(명주) = 명주 실로 무늬 없이 짠 피륙.면주(綿紬 silks without figures) 
비단(緋緞)은 명주실로 짠 피륙의 총칭이다.  
생=고치(生 -) ; 생견(生繭).
생견(生絹) ; 생사(生絲)로 짠 깁. 생고치. raw silks
건견(乾繭) ; 말려 번데기를 죽인 고치. 그렇게 하는 일. ¶~실(室) dried cocoons
생명주(生明紬) ; 생사(生絲)로 짠 명주.  생명주(生明紬실  삶지 않은 명주실(絲)  
생사(生絲(生絲) ; 삶지 않은 명주실., 면포(綿布(면포) ; 무명 cotton cloth
저포(苧布) ; 모시풀의 껍질로 짠 피륙. 紵布(저포)
모직(毛織) ; 짐승의 털로 짠 피륙 등 실의 종류가 다양하다.  

▶세명주: 실의 어떤 형태인가를 보면, 세(細;=실 - ; 가는 실. fine thread)로, 세선(細線) ; 가는 줄.

세;=모시(細 -) ; 올이 아주 가는 모시. 세저(細苧). 세목(細木) ; 올이 아주 가는 무명 fine cotton cloth 등으로 미루어보면, 세명주(細明紬) ; 가는 명주실로 짠 피륙이라고 할 수 있다. 세면주(細綿紬) 실(糸) ; 가는 명주 실. ‘세명주’란 단어는 생명주(生明紬)가 변음 되어 세명주라 본다. 왜냐하면 거미가 일정하게 끈끈한 실을 뽑아내듯 고치에서 뽑은 올도 일정하기 때문. 따라서 명주실 같이 아주 가는 실타래란 표현은 그 가는 정도를 비유해서 하는 말. 이창화 교장선생님의 자문을 했다.

명주실에 대한 몇 가지 증거

첫째, 아기 첫돌 때, 명주실을 잡으면 장수(長壽) 한다고 여긴다. 이때 명주실이 바로 생명주(生明紬)이기 때문이다. 둘째, 표선면 표선리 포구 ‘당캐’(place) 할망당에 가보면 사진에서 보듯, 세명주 신당이 지금도 남아있고 요즘도 명주실을 올린다. 필자는 어릴 때, 마을 당산나무에 가서 쌀과 명주실을 어머니와 같이 올린 추억을 갖고 있다. 집안 식구의 건강과 평안을 빌었다. 셋째, 설문대 할망은 제주 사람들이 속옷을 만들어주면 제주와 육지 간 다리(橋)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했다. 명주실 100통이 있어야 설문대 할망이 속옷을 만드는데 한 통이 모자라 못 만들었고 제주는 섬이 됐다는 전설이다. 그런데, 6월 1일 지역선거판에 제주 해저터널과 김포공항 등 제주 연륙(連陸)문제에 불이 붙고 있다. 아! 설문대 할망!

유전자는 왜 명주실인가?

인체나 생체의 모든 DNA 유전 정보는 명주 실통같은 세포핵에 압축(packing)되어 담겨 있다. 외모는 물론 인체를 구성하는 210여 개의 장기를 만들어내는 정보가 여기에 모여 있다. DNA의 길이가 얼마나 되기에 이렇게 많은 정보를 담아낼 수 있을까?

DNA는 A, G, T, C라는 4개의 염기(鹽基, Base)가 세포 하나에 들어 있는 DNA에는 30억 개의 염기가 있다. 염기들 사이의 간격은 0.34n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다. 그렇다면 DNA를 쭉 펴서 일렬로 나열하면 그 길이는 약 1m(0.34nm×30억)에 이른다.
우리 몸의 세포 수를 대략 100조 개로 볼 때 모든 세포의 DNA를 꺼내서 붙이면 1000억km에 달한다. 제주밭담 길이가 2만2000Km로 지구둘레의 절반인데 DNA는 지구 둘레가 4만 km이니까 지구 둘레를 250만 번 회전할 수 있다. 인간은 이 엄청난 길이의 DNA를 몸에 감고 다니는 셈이다. 흥미롭게도 사람의 세포는 지름 8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만분의 1m)∼15μm에 불과하다. 이런 작은 ‘그릇’ 안에 어떻게 1m 길이의 DNA가 들어갈 수 있을까. DNA는 그냥 일렬로 나열돼 있지 않고 수없이 꼬인(packing) 명주실통의 아주 작은 모양으로 존재한다. 그 덕분에 1m 길이가 1400nm 정도로 줄어든다. 마치 노란 고무줄을 계속 꼬면 차곡차곡 접히면서 길이가 짧아지는 것과 같다.

설문대-생명주-세명주-명주 실타래 할망 전설과 1953년 왓슨 등에 발견된 Packing DNA 유전 정보의 상관 관계를 보면서 놀라는 것은 설문대 할망 전설과 생명과학의 Matching(整合)이다. 

참조 : S. K. Lee and M. H. Lee, “The COVID-19 DNA-RNA Genetic Code Analysis Using Information Theory of Double Stochastic Matrix”, IntechOpen, Book Chapter. April 17th, 2022. [Available in online https://www.intechopen.com/chapters/81329]. 

Packing 3-D DNA, 명주실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으로 연상(聯想). 출처=위키백과
Packing 3-D DNA, 명주실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으로 연상(聯想). 출처=위키백과
표선 ‘한 모살’ 할망당 세명주 신당. 명주 실타래 작은 묶음이 지방(紙榜) 함 위에 걸쳐 있다. 사진=이문호.
표선 ‘한 모살’ 할망당 세명주 신당. 명주 실타래 작은 묶음이 지방(紙榜) 함 위에 걸쳐 있다. 사진=이문호.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