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시인이 새 시집 ‘목련꽃 편지’(한그루)를 펴냈다. 18번째 한그루 시선으로 제작된 이 책은 총 5부에 걸쳐 시조 71편을 실었다.

이송희 시인은 해설에서 “한희정 시인은 시집 ‘목련꽃 편지’를 통해 ‘제주’라는 장소가 품고 있는 슬픔과 트라우마를 해후하고 공유한다. 그것은 제주4.3이라는 민족적 트라우마에서 비롯돼, 지극히 개인적인 그리움과 사랑이 담긴 정서 표현의 방식으로도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출판사는 작품 소개에서 “제주의 곳곳을 호명하며 그에 담긴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들이 눈에 띈다”면서 “때로는 애잔한 슬픔으로, 때로는 격정과 분노의 목소리로, 수만의 감정이 깃든 이야기들이 정갈한 정형률에 담겨 전해진다. 시조라는 형식에 담긴 압축미와 중심을 꿰뚫는 정수의 시어가 돋보이는 시집”이라고 소개했다.


목련꽃 편지
한희정

인편도 우편도 아닌, 홀연히 온 봄소식
늦잠결 초인종 소리, 눈 비비며 찾아온
앞마당
목련나무가
편지 한 장 들고서

바람결 사십 년 전 편지 한 통 따라 왔네
무심코 연 팔레트에 열두 색깔 꽃이 피듯
아버지
한 글자 한 글자
몽글몽글 꽃이었지

외로움이 깊을수록 꽃은 더욱 환했네
자취방 창호 문에 우련 비친 섬 하나
초승달
꽃 이파리에다
안부 묻던 그 봄밤

마늘밭 뻐꾹 소리

해풍에 젖고 마르는
알뜨르 마늘밭에

싹둑 잘린 마늘 대궁
햇볕 아래 누워 있네

줄줄이 사월의 현장,
뻐꾸기 울음 우네

견실했던 생애만큼 말수 없던 할머니,
뒷마당 조부님 묘 이장하던 그날처럼
목이 쉰 호곡소리가 환청인 듯 다가와


시인은 책머리 시인의 말에서 “시인이 뭐냐 물으면/ 도로 입을 닫습니다/ 부고도 없이 죽어간 어휘들을 찾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아 아픈 곳을 꿰맵니다/ 드러내/ 채찍을 맞더라도/ 기쁘게 내밉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희정은 2005년 '시조21'로 등단했다. 시집 ▲굿모닝 강아지풀 ▲꽃을 줍는 13월 ▲그래 지금은 사랑이야 ▲현대시조100인시선집 '도시의 가을 한 잎' 등이 있다.

현재 제주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국제시조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124쪽, 한그루,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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