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12) 대평리 당케에서 세양물까지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9코스 출발점. 사진=윤봉택.
9코스 출발점. 사진=윤봉택.

내려 놀수록 가벼워지는 올레, 행복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는 길, 혼박세기 작은 행복을 꾸밈없이 나눌 수 있는 올레 9코스가 행복 올레가 아닌가.

“박수기정”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모든 즐거움을 압도한다. ‘막은굴’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박수기정’은 ‘산여바위’에서 병풍처럼 펼쳐지며 창고천 하류 ‘황개’로 알려진 범천포 까지 1600m 정도 이어지는 명승 해안 절벽이다.

‘박수기정’은 이렇게 규모가 크지만, ‘박수기정’ 의미가 담겨있는 ‘박수물’은, 표현 그대로 박세기(바가지)로나 받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바위 샘이다. 바닥에서 150cm 정도 높이에 있는 기정(절벽) 바위 틈새에서 솟아나는 이 샘은 삼백 예순날 마르는 일이 없다.

하지만, ‘박수기정’은 알아도 ‘박수물’은 지역 주민 말고는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는 ‘박수물’까지 접근하려면 ‘막은굴’에서부터 500여m를 기정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여야 하는데, 만조 시에는 건너가기 어렵고, 낙석 위험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박수물’을 맞으면 몸에 부스럼이 낫는다고 하여, 지역 주민에게는 없어서는 아니되는 귀한 약수이다.

제주올레 9코스는 서난드르(대평리) 당케에서 시작된다. ‘당케’는 당포로써 오래전 외국 이양선이 자주 접안 하였던 곳이며, 나라에 말을 진상할 때 이용되었던 포구이다. 하늬바람을 피할 수가 있어 지금도 겨울에 풍랑주이보가 내리면 화순항을 기점으로 이곳까지 원양어선의 피항지로 이용되는 천연 항만이기도 하다.

대평포구를 지나면 ‘당클’이다. ‘당클’의 ‘홀애미덕’을 따라 방파제를 지나면, 자갈 해안선에는 ‘막은골’ 질곡 따라 내려오는 ‘당클내’가 있고, 다시 ‘막은굴’과 ‘앞뿔렝이’가 이어져, 평소에도  조인의 낚시줄이 갈대처럼 흔들거린다.

당클, 막은굴, 앞뿔렝이.
당클, 막은굴, 앞뿔렝이.
박수기정.
박수기정.
박수물.
박수물.

여기서 썰물이 되면 ‘막은굴’ 머럭을 지나 ‘박수물’ 해안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그 ‘박수물’에 가서 손바닥을 펴 박수물을 받아 먹으면, 그 촉감만으로도 온갖 시름이 썰물처럼 사라짐을 느낄 수가 있다.

열두 번째로 연재하는 9코스는 여러 사정으로 코스가 변경되었다. 2008년 4월 26일 5코스 12km 구간으로 개장되었다가 9코스로 변경되었고, 코스 또한 6.1km로 사유지 구간이 제외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가, 2021. 10. 18. 군산~안덕계곡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변경되면서, 대평리, 감산리, 창천리, 화순리를 잇는 11.8km로 연장되었다.

‘박수물’에서 나오면 오래전 나라에 말을 진상할 때, 말이 다녔던 ‘몰질’ 입구 ‘막은골’이다. 겨우 말 한 마리 지나다녔을 정도로 험한 비탈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한밧’ 입구 동산이다. 

동산 위로 오르면 넓은 지대가 나타나는데, ‘한밧’이다. 이 지역에는 예부터 흙 가운데서도 가장 좋다는 오색토가 채굴되어, ‘이두어시’라는 마을이 형성되었다가 4.3사건 때 마을은 사라졌지만, 그 문화 흔적(대나무)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앞에는 도래오름·월라봉·이두악(伊頭岳)이라 부르는 오름이 있는데, '도래'는 달(月)의 제주어이다. 

몰질.
몰질.
한밧-월라봉.
한밧-월라봉.
이두어시.
이두어시.
한밧입구-괸돌.
한밧입구-괸돌.

월라봉 동쪽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감산리에서 대평리를 잇는 길가 ‘한밧’ 입구가 나오는데, 이곳 지명이 ‘괸돌’이다. 주변에 고인돌이 있어 불려진다. 여기에서 군산 방향으로 오르면, 군산 가기 전에 작은 능선이 있는데, ‘몰등어리왓’이라 부르는 키 낮은 ‘몰오름’ 숲길이다.

주차장에서 ‘굴메’ 계단을 오르면 군산 정상 가까이에 올레 9코스 중간 인증 점이 있다. 이곳 군산에도 과거 일본 억압기에 파 놓은 아홉 개의 진지동굴이 있고, 정상 주변에는 묘를 써서는 절대 아니되는 금장지가 있다. 

그리고 군산에는 ‘날개 돋힌 아기장수’ 전설이 전해온다. 오래전 김성신의 처 박 씨가 쌍둥이 아기를 낳았는데 알고 보니 날개 돋은 아기였다. 이를 이상히 여겨 조상의 묘를 이장하고 돌아와 보니, 아기가 이미 죽어 있었다. 이러한 소문이 돌자, 대신 그곳에 금악리에 사는 박 씨가 묘를 썼는데, 집안이 잘되었다는 전설이 담긴 명산이다.

몰등어리왓-몰오름-군산.
몰등어리왓-몰오름-군산.
몰등어리왓 올레.
몰등어리왓 올레.
군산 중간 인증.
군산 중간 인증.
군산.
군산.
대평리-월라봉-몰등어리왓-산방산.
대평리-월라봉-몰등어리왓-산방산.

오름에서 마을로 내리면 ‘영구물’이라는 샘물이 기다리고, 그 창고천 줄기를 따라 가면, 양재교 다리 아래에 수영하여도 좋은 ‘양재소’라는 넓은 못이 있다. ‘도고샘, 남반내’ 남덕사를 지나서는 바로 계곡 계단 따라 내리면 안덕계곡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옛부터 제주에는 논농사가 귀하였다. 이는 그만큼 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는 오래전 안덕계곡 바위 틈새에서 나는 물을 이용해 대나무 통 구시(구유)를 연결하여, 물을 끌어다가 논농사를 지었는데, 이러한 논을 ‘구시논’이라 불렀다. 지금도 안덕계곡 암벽에는 구시를 연결하고 고정하기 위해 철근을 박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바위그늘집 건너 계곡을 지나다 보면, 새들이 많이 찾아와 목욕하는 ‘생이물’, 식수로 사용했던 ‘조베낭샘’등 여러 개의 바위샘이 있다.

이곳을 지나 창고천을 따라가면 계곡 좌우에 ‘임금내, 고래소, 진모르동산, 올랭이소, 장군석, 번내, 보막은소, 도채비빌레, 게끄리민소, 멩알목소, 범개(황개)’가 즐비하게 있다.

영구물.
영구물.
양재소.
양재소.
안덕계곡.
안덕계곡.
안덕계곡-구시.
안덕계곡-구시.
생이물.
생이물.

화순리는 황개천을 중심으로 예부터 선사유적을 비롯하여 마을이 이뤄졌는데, 화순리의 옛 지명을 ‘번내’라고 한다. ‘보막은소’에서 물을 막아 바위를 뚫어 수로 670m를 만들어 논을 개척한 이가 김광종인데, 이로부터 본격적인 논농사가 시작되었기에. 두 번째로 살기 좋은 고장이라 하여 화순마을을 ‘제2 번내’라 하였다.

‘황개창’에서 한국남부발전소 정문을 지나면, 길 북쪽에 ‘다담은 망고농장’ 하우스가 있는데, 그 하우스 사이 진입로 따라 30여 m만 가면, 화순리 고인돌 1호가 있다. 농장 경영주께서 고인돌을 보호하면서 답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놓았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 고인돌의 뚜껑 표면을 살펴보면, 15개 정도의 별자리 또는 성혈로 추정되는 500원 동전 크기의 홈이 파여 있다.

팽나무가 지켜선 화순리 동하동 마을로 들어서면, 옛 모습 담긴 키 작은 돌담이 올레 고븐데기마다 다여 있고, 그 사이로 산방산이 ‘세양물’에 발을 담가 오수를 즐기는 시간, 길 건너에 제주올레 9코스 종점, 10코스 안내소가 있다.

번내.
번내.
게끄리민소.
게끄리민소.
황개천.
황개천.
화순리고인돌 1호.
화순리고인돌 1호.
화순리 동하동
화순리 동하동
9코스 종점.
9코스 종점.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로 격주로 게재합니다. 

# 필자 윤봉택 시인은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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