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78) 산에서 뛰는 것은 수컷말, 바닷 속 암초를 뛰는 것은 배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웅매 : 웅마(雄馬), 수컷말. 암컷말은 자마(雌馬)
* 여 : 바닷 속에 있는 위로 솟은 바위, 암초


매우 이색적이다.

산에 방목한 웅마, 즉 수컷말이 야생마처럼 펄펄 날 듯이 뛰고 있는 모습과 잠수(해녀)들을 싣고 바다 위를 넘나드는 배를 대구(對句)고 표현하고 있다. 거침없이 풀밭을 날고뛰는 말의 형세로 보아, 봄을 맞아 발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다 위를 달리는 배도 망망대해를 헤치며 미끄러지다 바닷속의 위험한 바위도 뛰어넘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뛰노는 말이나 바다 위를 치달리는 배나 아주 신명이 날 대로 났다. 말의 생태와 험한 바다의 배를 한데 묶어 같이 본 시각이 자못 흥미롭다.

혹여 파릇파릇 풀이 돋아난 새봄의 초원에 마음껏 뛰노는 수컷말의 역동적인 동세에서, 너울 치는 바다를 달리는 배, 아마 해녀를 실은 잠수 배가 위험을 무릅쓰고 오갈 것을 기원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닐는지…. 사진=픽사베이.
혹여 파릇파릇 풀이 돋아난 새봄의 초원에 마음껏 뛰노는 수컷말의 역동적인 동세에서, 너울 치는 바다를 달리는 배, 아마 해녀를 실은 잠수 배가 위험을 무릅쓰고 오갈 것을 기원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닐는지…. 사진=픽사베이.

농사나 세시 풍습, 일상생활 속의 갖가지 일들 그리고 지난 일 속에 이뤄지는 이야기들 가운데서 끄집어내 이치에 닿는 목소리를 속담 형식으로 요약, 함축한 것들이 태반인데 이 말은 특이하게 다가온다.

우선 가축인 말을 등장시키면서 뜬금없이 바다 위로 배를 함께 띄운 것이 그러하다. 말과 배, 연관이 닿지 않은 두 사물을 하나의 대구로 구성한 것 또한 기발한 착상이 아닌가.

혹여 파릇파릇 풀이 돋아난 새봄의 초원에 마음껏 뛰노는 수컷말의 역동적인 동세에서, 너울 치는 바다를 달리는 배, 아마 해녀를 실은 잠수 배가 위험을 무릅쓰고 오갈 것을 기원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닐는지….

그러니 필시, 뛰노는 말 못지않게 바다 위의 배 또한 모험도 마다하지 않은 것일 테다.

표현상, ‘산에서 뛰노는’이라 할 것을 ‘산 뛰는 건 웅매’으로 한다든지, ‘여를 뛰어넘는 건 배’라 한 것도 명사 종결형으로  매우 재치 있는 생략법이다.

‘웅매와 배’의 대구가 매우 간결해 다른 말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독특한 면모를 자아내고 있다.

결국 눈앞에 남는 것은 ‘웅마’와 ‘배’다. 서로 동일시한 데서 오는 표현 효과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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