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故 윤달세 쓰고 나까무라 옮겨 엮은 ‘400년의 긴 길’을 읽고 / 안봉수 

400년의 긴 길, 윤달세 저, 나까무라 에미꼬 역, 행복에너지. 사진=알라딘.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400년의 긴 길]이란 신간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 책은 400년 전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조선 팔도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기록에서 시작합니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그곳에서 전리품 취급을 받는 인간 이하의 삶을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이런 조선인이 약 1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400년의 긴 길 저자인 윤달세. 사진=도서출판 행복에너지.

그 책에 눈길이 더 갔던 것은 원저자가 제주 출신 재일동포로 제가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번역자는 일본인 나까무라 에미꼬인데, 공주대학교대학원 석사 출신이라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단숨에 책을 훑어봤습니다. 

우선 원저자를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윤달세(尹達世). 책 표지에는 1945년 일본 에이메현 출생,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졸업. 통일일보 고베지국장, 민단 효고(兵庫)본부 사무국장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혹시 제가 아는 윤달세와 동명이인인가 하는 기우에서 일본 도시샤대학 졸업명부를 열람하기 위해 일본 대학의 졸업자 웹사이트를 검색해 봤습니다. 그러나 그의 원적은 찾을 수 없었고, 구글에서도 검색해 봤지만 윤달세 저자의 출생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원저자가 제가 알고 있는 윤달세와 동일인 여부를 재확인하기 위해 제주에 수소문하여 그의 호적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제주 우도 출신의 윤달세, 그분이 원저자가 맞았습니다. 

윤달세는 1945년 9월 13일, 일본 에히메현이 아닌 제주 우도면 연평리에서 출생했습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대학을 나와 통일일보 고베 지국장, 민단 효고 본부 사무국장을 지냈습니다. 히메지돗쿄대학 강사와 오사카경제법과대학 객원연구원. ‘효고츠·조선통신사 연구회’ 대표간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2014년, 만69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습니다. 

본론으로 책을 읽은 소감을 논리적 순서가 아닌 하나의 단상으로 기술해 보겠습니다.

이 책은 43개의 특이 현상을 직접 현장 방문해 취재한 점이 눈에 띕니다. 재일교포 2세인 저자 윤달세는 1980년대부터 현지인과 또는 풍물 조예가, 지방박물관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사회인문학 유명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에 오래 종사한 경험으로 저널니스트(의미 있는 정보 전달자) 입장에서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피로인(被慮人)’의 흔적들을 찾아내 지난 2003년 ‘400년의 긴 길’이란 이름의 책을 펴낸 원저자의 각고의 노력에 우선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거주 중인 나카무라 에미꼬가 최근 이를 번역해 국내에 선보인 정성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번역자 나카무라 에미꼬는 “처음 이 책을 읽고 ‘이것은 한국 사람의 역사다. 교과서에 실릴 만한 가치 있고 재미있는 내용인데 모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일본 사회에 한 줄기 빛이 된 조선 사람들의 놀라운 삶의 흔적이 담겨 있어 이같은 역사적 사실이 번역작업을 통해 한국에 전해진다면 역자로서  매우 기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임진왜란으로 잡혀간 수많은 조선인들은 일본 땅에서 향수에 젖어 좌절하거나 쓰러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진 역경 속에서도 일본의 경제·문화·사회 각 분야에서 역할을 해냈습니다.

일본 성곽의 기와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기와공의 기술로 만들어졌고, 그 후손들이 일본 현지에서 시루떡을 만들어 제사를 올리고, 도토리 열매를 모아 묵을 쑤어 먹은 기록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 두부와 옛날식 김치 문화도 일본 구석구석에 남아있습니다.

안봉수 서울제주도민회 자문위원.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대한민국과 일본은 양국의 관계를 침략의 역사에 의한 대립과 갈등 구도가 아닌, 문화교류의 상생 협력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냉각된 한일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 소개합니다. 특히 원저자가 제주 출신이어서 더욱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안봉수 서울제주도민회 자문위원

전체 337쪽.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2022년 5월 10일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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