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79) 되는 게 양반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될 세 : 되는 게


이루고자 한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 것만큼 신명 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능력껏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은 말할 게 없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함께 기뻐해 주니 생광나는 일임은 말할 것도 없다.

되고 안되고, 일어서서 흥하고 실패해 망하고의 차이는 너무도 극명해진다. 사람의 마음이란 조금은 간사한 데가 있어, 어느새 일을 이룬 자의 편에 서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주 깨어 놓고 성공적으로 가는 사람 쪽에 서서 두둔하고 옹호하고 나서기도 한다. 인심은 조석변(朝夕變)이라는가 하면, 시시각각 변한다고 시변(時變)이라 하는 게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다.

표변할 수 있는 게 알량한 사람의 마음이다. 혹여 본심은 그게 아니면서도 세(勢)의 흐름을 따라 어제까지 우호적이었던 눈빛이 오늘은 아리송하게 흐려 있다. 긍정적 표정이 아니라 어느새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선 것이다.

선거에서 흔히 보게 되는 풍경이다. 표차가 몇 표 나지 않는 지자체 선거. 당선은 해당 선출직의 자리에 오르는 영예로운 것이다. 그러니까 선거의 결과가 가르는 것은 당락이다. 당선과 낙선, 된 자와 떨어진 자로 칼처럼 갈라놓는다. 엄격하게 희비가 교차한다. 된 자는 천당에 오르고 떨어진 자는 지옥으로 추락한다. 어쩌면 선거같이 잔혹한 것이 없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된 자는 천당에 오르고 떨어진 자는 지옥으로 추락한다. 어쩌면 선거같이 잔혹한 것이 없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그에 더불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주위가 된 자 편에 서서 손뼉을 치며 칭송한다. 심지어 취향에 따라서는 알랑거리며 접근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추켜세우며 아부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희한한 장면들이 연출되는 세상이다. 세상사란 게 다 그런 것 아니냐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식자의 눈에 거슬리는 추태가 아닐 수 없다.

“경 허나네 될 세 양반이주기”(그러니까 되는 게 양반이지요)라 한다. 

된 자에게 지나치게 기울어 편드는 사람, 힘을 얻은 자에게 쉬이 마음을 주어 버리는 사람들, 그런 줏대 없는 사람들을 나무라면서 비꼬아 하는 일침(一針)의 언사로 들린다. 

이런 세상인심이 혹여 되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쏠인 나머지 너무 집착해 부정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선 안된다. 반사회적 행동 뒤에는 반드시 응분의 형벌이 따르는 법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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