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연구센터, 2022 명사 초청 강연 첫 번째 유철인 명예교수

유철인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주의소리
유철인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주의소리

제주학연구센터는 24일 오후 2시 센터 2층에서 유철인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강연을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제주학연구센터가 올해 건입동(옛 제주문학의 집)으로 새 둥지를 틀면서, 연속 기획으로 마련한 제주학 명사 초청 강연의 일환이다.

첫 번째 순서를 장식한 유철인 명예교수(이하 유 교수)는 ‘제주도에 대한 자기 민족지와 학문적 생애사’라는 주제로 인류학자로서 지난 제주학 활동을 소개했다.

그는 제주도로 이주한 1984년 2월부터 2022년 3월 제주대학교 철학과에서 퇴임할 때까지 38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제주를 연구해온 인류학자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제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인류학자로서 본인을 성찰하고 분석한 ‘자기 민족지(autoethnography)’ 차원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유 교수는 제주에 대한 학문적 생애를 다섯 가지 개념으로 요약했다. ▲도서성 ▲재일제주인 ▲제주4.3 ▲제주해녀 그리고 ▲제주학이다. 개인적-사회적 경험을 토대로 제주 섬 특유의 도서성을 분석했고, 자신이 학자로서 재일제주인·4.3·해녀·제주학에 매진해온 결과물을 차례대로 소개했다.

# 세 가지 분석으로 바라본 제주

유 교수는 “1984년 2월 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주하자마자 내게 ‘육지’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제주사람들은 제주도를 제외한 한국사회를 육지라고 일컫는다”면서 “1520년에 제주로 유배 온 김정이 쓴 ‘제주풍토록’에 한반도 지역을 ‘陸地(육지)’로 표현한 것을 보면 제주도에서는 한반도 지역을 일컫는 ‘육지’라는 말을 오래 전부터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육지라는 말의 의미에 초점을 맞춰 발표한 논문이 바로 ▲일상생활과 도서성: 제주도 문화에 대한 인지인류학적 접근(1984) ▲제주인의 생활세계에 있어서의 환경과 역사의 의미(1984)이다.

그는 “1984년 노형동 슈퍼마켓에서 어떤 월간지와 커피 제품을 사려고 했을 때, 제주도에 없는 물건은 육지에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가게의 이러한 전략은 섬의 한계를 알면서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방식으로 도서성에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제주사람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은 어느 정도 고립성을 유지하던 섬에서 나타날 수 있는 배타성을 바탕으로 ‘육지사람’인 외부인과 구별 짓기를 통해 드러난다”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이후 1990년 발표한 논문(해석인류학과 생애사: 제주사람들의 삶을 표현하기 위한 이론과 방법의 모색)을 통해 “제주사회에는 대면사회와 산업사회의 요소가 공존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유철인 명예교수에 따르면 대면사회는 ‘알음으로’ 일이 되는 사회이며, 내부인과 외부인의 구분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회다.

유 교수는 “도서환경에 대한 적응, 주변성에 대한 대응, 대면사회와 산업사회의 공존이라는 세 가치 측면이 제주사람의 생활세계의 핵심이 되면서 제주문화의 전통이 재창조 되고 있다는 내용으로 논문(제주문화의 연속과 변화와 재창조, 1995)을 발표했다. 이렇게 제주사람의 생활세계 내지 제주문화에 대한 인지인류학적 접근을 마무리했다”고 일종의 제주 적응기를 소개했다. 

유철인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주의소리
유철인 강연이 24일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 제일제주인

이렇게 인류학자로서 제주라는 공간과 제주사회·제주인을 파악한 유 교수는 세부적인 사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첫 번째가 바로 재일제주인이다.

그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 문부성 과학연구비 보조금 과제의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해 일본 오사카시 이쿠노구를 현지조사했다. 이쿠노구는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후 1998년(재일 사회의 밀항자), 2000년(제주사람들의 생활세계에서의 일본)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유 교수는 “제주도와 일본을 잇는 사회적 네트워크는 제주사람들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이동하면서 시작됐다”며 “제주도에 남아있는 가족과 친척으로 인해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에게 제주도는 여전히 중요한 생활세계의 일부가 되고 있다. 반대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제주사람의 생활세계에는 가족이나 친척이 재일동포로 살고 있는 일본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제주4.3

유 교수는 처음으로 4.3의 존재를 알게 되고, 4.3은 제주도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을 때를 “제주대학교 교수로 임용되던 1984년 봄”이라고 기억했다.

3월 학기가 시작돼도 임용이 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니, 제주 출신 몇 사람의 신원조회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4.3이 신원조회를 더디게 한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더 구체적인 사례는 1985년이다. 그는 “당시 제주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가 ‘아라문화’라는 학생회 잡지를 창간하면서, 미국 학자인 ‘존 메릴’의 4.3 논문의 일부를 게재하려다 당국에 사전 적발됐다”고 밝혔다.

그때 학생회 지도교수였던 그는 “학생회가 준비한 글을 싣지 않는 대신, 내가 책임을 지고 어떤 형태로든지 메릴의 논문에 관한 것을 학생회 잡지에 게재하기로 결론이 내려졌다”면서 그해 논문을 소개했다.

그가 4.3 연구를 결심한 계기가 바로 학생회 사건이다. 유 교수는 “과거 자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겠다는 것보다 지금 제주도에 사는 우리에게 4.3은 무엇을 던져주고 있는가를 알려는 ‘현재에서 과거를 찾는’ 작업을 하려던 것”이라고 4.3 연구의 방향을 설명했다.

그리고 ▲제주4.3연구소 이사(1995) ▲제주4.3 제50주년 학술·문화사업추진위원회(1988) ▲4.3 증언채록팀 팀장(2002) ▲‘구술된 경험 읽기: 제주 4.3 관련 여성 수형인 여성의 생애사’ 논문(2004) ▲제주4.3 62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4.3 경험에 대한 여성구술사적 접근’(2010) ▲제주대 평화연구소 학술세미나―4.3 경험에 대한 여성 구술생애사(2013) 등 연구를 이어갔다.

그리고 2015년 2월 제주4.3연구소장을 임기 중에 스스로 그만두면서 4.3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사그라졌는데, 그 이유에 대해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주해녀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는데 힘을 쏟은 탓도 컸다”고 밝혔다.

유철인 명예교수는 1984년 제주대학교 교수로 임용돼 2022년 정년 퇴임했다. ⓒ제주의소리
유철인 명예교수는 1984년 제주대학교 교수로 임용돼 2022년 정년 퇴임했다. ⓒ제주의소리

# 제주해녀

그가 제주해녀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때는 1996년이다. ‘제주해녀의 생애사에 나타난 물질경험의 세계’로 한국학술진흥재단 자유공모과제를 수행했다.

유 교수는 “당시만 해도 인용한 출처가 없거나 통계가 정확하지 않은 것 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의 해녀에 대한 이야기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제주해녀 연구의 역사성이 부족한 것으로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연구를 이어가면서 2006년 6월 7일 해녀박물관 개관 기념 학술대회에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의 등재 제도인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제주해녀(문화)를 등재하자고 처음으로 제안했다.

“제주해녀의 물질기술과 생태환경에 관한 지식은 유네스코 협약에서 정의한 무형문화유산에 적합한 것이며, 제주해녀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물질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가치를 보여주기에 제주해녀(문화)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에 의해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 등재 제안의 핵심이다.

유 교수 등 해녀의 가치를 알릴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 외에 수많은 이들의 노력까지 더해진 끝에, 2016년 11월 30일 제주해녀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그는 “제주해녀에 대한 나의 연구는 유네스코 대표목록 등재 뿐만 아니라 제주해녀를 국가중요어업유산과 국가무형문화재에 등재하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제주해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1997년 4월 인터뷰 했던 당시 서른 두 살 성산포 상군 해녀 김순자를 기억하며 “그녀의 생애와 물질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해녀라는 직업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길잡이가 됐다”고 떠올렸다.

2006년 1학기에 그가 이러닝 강좌로 개설한 ‘제주해녀와 에코페니즘’은 제주대에서 최초로 개설된 제주도 지역 관련 교과목이다. 이 강좌는 2012학년도부터 영어로 개설됐고, 2017년 11월 1일부터는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K-MOOC)로 발전했다.

유철인 명예교수. ⓒ제주의소리
유철인 명예교수. ⓒ제주의소리

# 제주학

그는 제주도민으로 살면서 제주학회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제주학회의 전신인 ‘제주도연구회’의 간사를 1985년 맡았고 이후 편집위원장(1993~1996년), 부회장(2007~2010년), 회장(2013~2014년) 등을 맡아 활동했다. 위에 언급한 연구 활동들은 제주대학교 교수로서 재임 당시 이룬 것들이다.

그는 “제주학이 무엇인지 제주학의 이름으로 제주도를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아있다”는 끝맺음과 함께, 올해 공저자로 펴낸 책 ‘인류학과 제주학의 시선으로 제주도를 읽다’에서 적힌 윤용택 교수의 소개글을 남겼다.

“인류학 차원에서 본다면 제주섬을 다루는 제주학은 그것(인류학)의 일부이지만, 제주도의 자연·인문·사회분야를 아우르는 제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학은 그것(제주학)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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