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강요된 통합보다 넘치는 다양함이 필요하다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이제 곧 민선 8기 제주도정이 출범한다.

지난 6월 1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제주는 전국 상황과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한 달 만에 치러진 선거라 전국적으로 국민의힘이 압승했지만, 제주에서는 민주당이 승리했다. 선거전부터 도지사는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 만큼 이번 선거는 전국 상황과 달랐다.

그래서일까 국민의힘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하지만 여당이 되고 치러진 첫 선거에서도 도민들로부터 외면받은 데는 스스로 돌아봄이 먼저다.

부상일 국회의원 후보가 토론회에서 “제주도가 전라도화됐다.”고 한 말이 선거 내내 논란이 됐다. ‘전라도화’, ‘전라남남도’는 이미 제주도민 사이에서, 특히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일부 도민 사이에서 심심찮게 나돌던 말이다.

술자리 말로도 적당하지 않은 말을 여당 후보가 공개 자리에서 내놓으며 선거 전략화했으니 도민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특정 지역을 폄훼하는 정치적 편견이 물씬 느껴지는 말이다. 더 나아가 제주도민을 자기결정권이 없는 존재로 무시하는 발언이다.

국민의힘은 여당이란 강점을 안고 새로운 제주 미래를 약속함으로써 선거를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 마저 스스로 차버린 정치적 실패이자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과 같은 일이다.

과거 엄혹한 시절 민주인사들은 독재정권에 맞선 용기 하나로도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어느덧 권력과 기득권이 되어버린 지금은 더 큰 용기와 다짐이 필요한 때다. 도민 기대와 지지 속에 당선된 586 정치인들이 다시 처음처럼 나를 내려놓고 만인을 위한 삶을 사는 용기로 새로운 제주사회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제주의소리
과거 엄혹한 시절 민주인사들은 독재정권에 맞선 용기 하나로도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어느덧 권력과 기득권이 되어버린 지금은 더 큰 용기와 다짐이 필요한 때다. 도민 기대와 지지 속에 당선된 586 정치인들이 다시 처음처럼 나를 내려놓고 만인을 위한 삶을 사는 용기로 새로운 제주사회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제주의소리

제주와 광주는 국가 권력에 의한 가족과 이웃이 죽어나간 아픔을 경험한 곳이다.

전두환을 찬양하고 광주민주항쟁을 여전히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는 정당을 외면하는 투표결과를 지역감정이라 할 수 없다.

여전히 4.3을 폭동이라 말하고 도민 아픔을 달래고 치유하는데 방해해온 정치인들도 여당 내에 있다. 지역을 떠나 국가 권력으로부터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를 공감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이 사랑받기는 힘들다. 

여기에다 도민여론조사에서 반대로 의견이 모아진 제2공항 추진정책과 제주도정 7년을 중앙정치를 위한 수단과 발판으로 이용했다는 원희룡 전 지사에 대한 실망도 이번 선거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기에 지난 제주지방선거는 국민의힘이 스스로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 선거다. 남 탓으로 선거결과를 바라본다면 국민의힘으로서는 다음 선거에서도 다른 선거결과를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여당이 자초한 패배 속에 제주에서는 민주당이 20년 만에 도정을 운영하게 됐다. 하지만 민주당과 오영훈 당선인으로서는 선거 승리보다 더 어려운 과제들이 즐비하다. 

새 도정 출발을 앞두고 통합과 포용으로 하나 된 제주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지난 문재인 정부나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보듯 늘 선거 후에도 갈등과 분란은 여전하다. 제주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과 욕망 아래 다양한 목소리는 쏟아지고 갈등은 여전할 것이다.

한때 국가는 사회통합이란 명분 아래 하나 된 목소리를 강요한 적이 있다. 또 민주주의는 합의와 단일한 의견을 이끌어내는 절차적 수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 민주주의는 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동일한 목표 아래 합의하고 통합시키는 장치로써 작동하기 어렵다. 

세계는 인종과 계급, 종교, 정치성향, 행복에 대한 가치와 욕구, 문화 등 다양한 가치와 사고가 뒤섞여 존재하는 사회다. 또 개인들은 예전과 달리 전달된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온갖 정보망을 통해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얻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21세기를 이끄는 민주주의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확대 속에 경쟁과 타협을 통해 다양한 갈등을 다루고 풀어가는 제도로서 기능할 수 밖에 없다. 

새 도정 시작은 개발중심 사고와 정책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넓힘으로써 지속가능한 제주사회로 나가는 데 있다. 그동안 제주국제자유도시가 내세운 장밋빛 목표는 경제성장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지상과제로 삼아 지역내총생산(GRDP) 높이기에 매달리는 과거 정책으로는 다양한 요구를 풀어갈 수 없다. 70~80년대처럼 성장과 개발을 공동의 목표로 삼아 사회동력으로 활용하기에는 이미 사회는 너무 많이 변화했다.

이미 제주사회도 심각한 불평등이 구조적 문제가 됐으며 자연환경 파괴와 교통문제, 생활환경오염이 행복을 갉아먹는 시대다. 개발과 성장보다는 공존과 지속가능성이 현실과제로 떠오른다. 핵심 산업이자 가치인 농업과 노동, 제주사회를 지탱해온 공동체 문화, 곶자왈과 오름, 지하수와 바다를 지키는 일도 급한 과제다. 문제 해결의 시작과 끝은 도민이다. 무엇보다 도민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도전하고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선거결과에서 눈여겨볼 일은 오영훈 당선인을 비롯한 586 정치인들의 당선이다.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민주화운동을 했던 오영훈 당선인을 비롯해 도의원들도 여럿 재선과 3선에 성공하며 제주도정과 도의회를 이끄는 주력으로 자리한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친 후 정치권에 입문한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많았다. 이른바 386세대는 486을 거쳐 이제 586이라 불리고 있다. 정치입문 초기에는 젊은 피로서 정치권에 개혁바람을 일으키며 신선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벌써 30년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일부는 기득권 세력이 됐고 일부는 그 언저리에서 안주하며 살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양극화를 비롯한 사회 갈등은 커가다 보니 기대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586 용퇴론 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한 시대 정치를 움직이는 세력을 싸잡아 한꺼번에 물러나라 하는 것은 동의하기 힘들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우리나라 민주화와 사회 개혁에 기여해 온 민주 세력을 낙인하고 공격하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 세력들에게 거는 기대가 예전 같지 않고 용퇴론 마저 나오는 이유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민주화운동이란 훈장을 달고 다닌 세월이 너무 오래고 공동체를 위해 민주주의 가치와 이념을 실천하기보다는 이득과 안위를 위한 선택을 해온 이들도 많다. 지난 도의회에서 절대 다수당이던 민주당 내 586정치인들이 보여준 모습에서도 실망스런 순간이 많았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과거 엄혹한 시절 민주인사들은 독재정권에 맞선 용기 하나로도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어느덧 권력과 기득권이 되어버린 지금은 더 큰 용기와 다짐이 필요한 때다. 

도민 기대와 지지 속에 당선된 586 정치인들이 다시 처음처럼 나를 내려놓고 만인을 위한 삶을 사는 용기로 새로운 제주사회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 김효철 객원논설위원,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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