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제주와 자치 이야기] (6) 정치 발전 위해 지역정당 가능해야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역 투표율은 2018년에 비해 12.8%나 하락한 53.1%를 기록했다. 유권자 2명중 1명은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이다. 선거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들이 나오지만, 투표를 하지 않은 유권자들이 ‘왜 투표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국가정치의 축소판이 된 제주정치

물론 대선 직후에 치른 선거이니만큼, 선거에 대한 피로감이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효능감’이 있었다면 투표장에 나올 유권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효능감은 거대정당 간의 진영논리 싸움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주권자인 도민들의 삶과 관련된 의제들이 선거의 중심의제가 될 때, 특정정당의 열렬 지지자가 아닌 도민들도 투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제주지역의 정치를 보면, 국가 정치의 축소판같은 느낌이다. 제주의 경우에는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전국 평균보다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더 나왔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그러나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도의원 당선자들을 보면, 무소속 1명을 제외하면 민주당 27명, 국민의힘 12명이었다(교육의원은 제외). 이런 식의 지역정치가 당연한 것일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이웃 일본으로 가 보자. 흔히 제주와 비교되는 오키나와 현의회의 구성을 보면, 자민당, 공명당, 공산당 뿐만 아니라 지역정당인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등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진출해 왔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뿐만 아니라 홋카이도, 도쿄, 가나가와, 오사카 등지에도 지역정당이 존재해 왔다. 성향도 다양하다. 진보적 성향부터 극우성향까지 있고, 생활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도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특정 지역에 뿌리박고 활동하는 지역정치조직을 볼 수 있다. 미국 버몬트주에서는 버몬트진보당이라는 정당이 오랫동안 활동해 왔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바르셀로나 엔 코뮤(Barcelona en comu)’라는 지역정당(여러 정치집단과 사회운동세력의 연합정당 성격이다)이 현재 집권당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정치세력이 의회에 진출하려면 물론 선거제도 개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질문도 필요하다. 이제는 지방선거에 반드시 전국정당만 후보를 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이 있고 버몬트 진보당이 있듯이, 제주에는 ‘제주00당’같은 정당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이 있고 버몬트 진보당이 있듯이, 제주에는 ‘제주00당’같은 정당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엄격한 정당설립요건도 문제

한국의 엄격한 정당설립요건도 문제이다. 정치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은 연방제 국가이다. 그런데 독일에서 오랫동안 여당이었던 기독교민주당(CDU)은 기독교사회연합(CSU)이라는 정당과 손을 잡고 정치를 해 왔다. 기독교사회연합은 독일의 바이에른주에만 있는 정당이다. 우리로 치면 1개도에만 기반한 정당도 가능한 것이다. 사실 정당이란 자발적인 정치결사체인데, 몇 개 이상 시·도에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정당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정당법이 5개 이상 시·도에서 각각 1천명 이상 당원이 있어야 정당을 창당할 수 있도록 한 것 때문이다. 그러나 왜 정당이 꼭 5개 이상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 당원이 있어야 하는가? 

오히려 이런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실질적인 당원도 없고 활동도 하지 않는 페이퍼 정당도 쉽게 창당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정당의 요건을 규정하다보니, 특정한 지역의 정체성에 기반한 정당을 만들 수 없다는 데 있다. 사실 특정한 지역에 기반한 정당이 만들어지고, 그런 정당들이 연합해서 전국정당을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한 창당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무조건 시작부터 5개 이상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집해야 한다는 규정을 따라야 했다.

이런 정당법의 기원을 찾아보면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나온다. 현재의 정당법은 최초에 국회에서 만들어진 법률이 아니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만든 법률이었다. 기원 자체가 비민주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5개 이상 시·도에 조직이 있어야 창당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최초에는 지역 선거구 총수의 3분의 1이상에 해당하는 지구당도 창당요건이었다).

정당설립요건 완화와 지역정당 필요

이런 정당법의 문제는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들과 전문가들에 의해 오랫동안 비판받아 왔던 것이다. 그래서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2017년 결성한 ‘정치개혁공동행동’에서는 1개 이상 시·도에서 500명 이상 당원이 있으면 정당을 창당할 수 있도록 하고, 그보다 더 소규모인 경우에는 30명 이상만 모여도 지역정당(local party)를 창당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에 공감대가 모아졌다. 관련 법안도 20대 국회에서는 발의되기도 했다. 

이번 지방선거처럼 투표율이 낮은 선거를 보면서, 다시 정당설립요건 완화와 지역정당 법제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나와서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지역 얘기를 가지고 제대로 된 정책경쟁이 가능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다. 언제까지 지방선거에서조차 거대양당의 진영논리가 난무하는 선거를 치를 것인가?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이 있고 버몬트 진보당이 있듯이, 제주에는 ‘제주00당’같은 정당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하승수 변호사는?

1992년 공인회계사 시험, 1995년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지만,  정작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 실행위원과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6년부터 약 4년간 국립 제주대학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으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12년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와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풀뿌리 지방자치를 향한 [하승수, 제주와 자치이야기]를 매월 한차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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