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생각] 여든 여덟 번째 / 이문호 교수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산북 제주시에서 한라산(1950m)을 가운데 두고 산남 서귀포로 넘어가는 겨울 하늬 바람을 일명, 제귀지풍(濟歸之風)이라 부르겠다. 반대로 여름철에는 서귀포에 남풍이 한라산(漢拏山) 백록담을 넘고 윗세오름, 어승생악 아흔아홉골을 지나 북쪽 제주시로 부는 바람이 귀제지풍(歸濟之風)이겠다. 산북에서 산남으로 부는 바람이 제귀지풍이면, 반대로 산남에서 산북으로 오르는 바람은 귀(歸, 돌아갈 귀)제지풍이다.

제주시 방향에서 바라본 한라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시 방향에서 바라본 한라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 아흔 아홉골

제주시 서남쪽 해안지경 어승생악(1169m) 아흔아홉골, 크고 작은 골짜기가 마치 밭고랑처럼 뻗어 내린 기봉(奇峯). 백에서 한 골이 모자라 호랑이도 임금님도 안 나온다는 아흔아홉골 또는 구구동(洞). 제2횡단도로에서 10km 지점의 해안동(海安洞)에 있는데, 어승생악(御乘生岳) 동쪽 동산에 크고 작은 꼬불꼬불한 골짜기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울창한 수목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 그윽한 멋과 고요한 정취가 속세와 절연된 느낌을 준다. 오밀조밀한 봉우리들이 솟아 있으며, 그 사이의 깊고 얕은 수많은 계곡에는 맑고 찬 물이 흐른다. 골짜기 안에 이르면 언덕바지 비탈진 곳에 기암괴석(奇岩怪石)이 수목 속에 들어서 있고, 맑고 찬 약수가 샘솟는다.

2. 겨울철 서귀 돈내코(豚川口) 300m의 제귀지풍(濟歸之風)

북쪽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로 향한 바람은 푄현상에 의하여 체감 기온이 평균 2-3도 올라가 제주시보다 서귀포가 따뜻하다. 돈내코는 예전에‘멧되지가 물을 마신 내 입구’라고 해서 돼지와, 내천 입구의 돈천구(豚川口)라고도 불린다. 

백중날물맞이는 원앙폭포와 난대상록수와 한란, 겨울산딸기가 잘 자란다. 왜 그럴까? 답은 수직 암벽에 생성된 제귀지풍의 주엽(主葉, Main Lobe)이 돈내코 상공, 부엽(副葉, Side Lobe)은 중문과 남원 쪽이기 때문이다. 단열 압축을 물리적으로 설명하면,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면 타이어와 펌프의 고무관이 따뜻하다. 내부 공기양이 많아져 내부가 단열 압축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타이어는 인공의 갇힌 공간(Closed Loop), 반면에 돈네코 남벽 300m를 타는 바람은 개방공간(Open Space)에서 단열 압축이 일어나 서귀포를 향한 하늬바람이 따뜻해진다.

3. 여름철 제주시 어승생악(岳)1169m 99곡(谷)의 귀제지풍(歸濟之風)

일반적으로 대류권에서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상승하는 공기는 그 주변 영향으로 온도가 하강하게 되면서 단열 팽창을 하게 된다. 공기가 머금은 수증기들이 응결하여 구름을 형성하고 강수를 내리게 된다. 수증기를 탈락시킨 공기는 산 정상을 지나 후면의 산 내리막을 따라 불면서 공기가 하강하게 되면 이번에는 단열압축(斷熱壓縮, Adiabatic Compression) 되면서, 이미 수증기를 잃은 공기는 건조단열감률을 따라 온도가 상승하면서 불어 내린다. 제주시에서는 한라산 정상을 넘은 서귀포 남풍이 윗세오름을 지나는 바람과 어승생악 아흔 아홉골 골짜기를 지난 계곡풍(溪谷風)이 더해져 후덥지근한 산바람 열풍(熱風)이제주시로 부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슬포는 봄·여름에 산방산 절울이 바다에서 부는 마바람 냄새가 심하게 나면 중산간 마을에 비가 내린다. 애월-한림-대정-안덕 바다에서 부는 서남풍과 급작스런 한라산 기압이 변해지면 해발 200고지 위 새별오름에서 동광 평화로에 짙은 안개가 덮치면서 한라산을 오르고 반면에 제주시는 햇빛이 내려 쬔다. 타원형으로 20도 기울어진 제주 지형이 오묘함이다.  

특히, 6~7월 장마철 서귀포에서 불어오는 남풍은 한라산 백록담 윗세오름-어승생의 1169m 99곡을 거치면서 바다 해풍(海風)이 산바람(山風)으로 변해 제주 성내로 불어오다. 이에 반해 제주시 앞바다인 제주시 묵은성 앞바다와 사라봉 해변가의 바닷바람(海軟風)은 제주시로 상륙하는데 기(氣)를 못 편다. 

서귀포 제귀지풍(濟歸之風, 왼쪽)과 여름 제주시 귀제지풍(歸濟之風). 사진=이문호. ⓒ제주의소리
서귀포 제귀지풍(濟歸之風, 왼쪽)과 여름 제주시 귀제지풍(歸濟之風). 사진=이문호. ⓒ제주의소리

1970년대 제주시 서사라 삼도동에 조그만 집을 짓고 10년간 살 때는 여름 한 철 습도나 날씨, 바람과 상관 관계를 잘 못 느꼈다. 그런데 전주에 50년 살다가 여름 장마 때 제주시에 가면 습도와 바다 바람과 해풍의 귀제지풍(歸濟之風)을 크게 느낀다. 지리산의 산바람과 한라산에서의 바다 산바람(海軟山風) 차이는 전주의 센물(硬水)과 제주 물(軟水)의 ‘맨지락(Soft)한’ 부드러움이 차이와 같다.

제주에 가장 큰 문제는 여름철 습도가 꼽힌다. 한국 장마철 평균 습도가 65% 이상이다. 습도와 관련한 20년 전 이야기를 꺼내본다. 러시아 모스코바 과학원 유명교수 3명이 Brainpool 정부 초청으로 6월 본 전주 연구실에 왔다. 월급은 당시 기준 무려 500만원. 그런데 숨을 잘못 쉬어 ‘답답하다’면서 월급이 많아도 조기 귀국을 했다. 습도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건조한 지역에 살던 사람은 습도가 많은 지역에 와서 견디기가 힘든데, 반대로 습도가 높은 지역 사람은 건조한 러시아나 미국 LA가도 문제가 안된다.

겨울철 서귀포 돈내코의 남벽 수직높이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s) 300m로 인한 겨울 온풍(冬溫風), 여름철 제주시 윗세오름~어승생악 1169m 아흔아홉 골로 인한 여름 열풍(夏熱風). 여름 날씨와 겨울 날씨는 정반대를 보이는데 제귀(濟歸)와 귀제(歸濟)의 순과역(順-逆, Forward-Reverse) 풍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한라산을 오르고 내리는 바람은 자연지능제어(自然知能制御, Natural Intelligence Control)로 부를 수 있기에, 본보기로 국제인공자연지능학회에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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