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규의 film·筆·feel] (19) 검은 돌, 숨은 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


검은 돌, 2017 / 숨은 돌, 2021 / ⓒ2022. 양동규
검은 돌, 2017 / 숨은 돌, 2021 / ⓒ2022. 양동규

검은 돌이 숨었다. 숨은 돌은 보이지 않지만 드러나 있다. 숨은 돌은 부드러우면서도 차갑다. 봄이 오면 숨은 돌은 검은 돌이 된다. 검은 돌은 여름에 만났다. 장마가 막 시작될 무렵이다. 장맛비가 오기 시작할 때 돌은 검게 변했다. 사실 검은 돌은 검지 않다. 대부분 그렇다. 그렇게 짙은 검정의 돌은 많지 않다. 물에 젖었을 때 검게 변하고 더 무거워진다. 돌은 언제나 거기에 있을 것 같으면서도 있지 않을 때가 많다. 돌도 움직인다. 변한다. 시간은 숨은 돌을 검은 돌로 검은 돌은 더 검은 돌로 변하게 한다. 돌은 어떻게든 움직인다. 깎이고 깨지며 부드러워지고 날카로워진다. 항상 있을 것 같았던 돌은 사라지고 다른 돌이 생겨난다. 돌이 변하는 것은 돌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변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이다. 자연은 돌을 천천히 부드럽고 느리게 변화시킨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천천히 변한다. 그런데 사람은 돌을 쉽고 빠르게 바꾼다. 때론 무섭게 돌을 변하게 한다. 가끔 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비롭게 느껴진다. 돌은 수십 수만 년을 살았다. 버티며 변해온 시간이 만들어낸 신비로움이다. 신비로운 돌은 그렇게 그곳에 있었다. 다시 가면 그 돌은 없을 것이다. 아니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 양동규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20대에 흑백카메라를 들고 제주를 떠돌며 사진을 배우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골프장 개발문제, 해군기지 건설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접하며 그로 인해 변화되어가는 제주의 본질을 직시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섬의 하루」, 「잼다큐 강정-범섬에 부는 바람」 등을 연출, 제작했다. 개인전 「터」(2021), 「양동규 기획 초대전 섬, 썸」을 개최했고 작품집 「제주시점」(도서출판 각)을 출판했다. 제주민예총 회원으로 「4.3예술제」를 기획·진행했고 탐라미술인협회 회원으로 2012년부터 「4.3미술제」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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