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주권과 제2공항] ③책임 떠넘긴 정부-도정, '도민주권' 확보 과제

국토교통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2021년 7월 환경부가 제2공항 건설 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반려 결정을 내린지 1년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제2공항의 조속한 추진을 약속했다. 원희룡 국토부장관도 제주도지사 시절 제2공항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잠잠하던 제2공항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를 둘러싼 환경훼손과 도민사회 찬반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제주의소리]는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보완의 의미와 향후 논란이 될 쟁점을 세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제주에 있어 가슴 시린 이름이다. 국책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시작된 제주 해군기지 사업으로 평화롭던 마을은 쑥대밭이 됐고, 밭을 일구던 농군은 투사가 됐다.

강정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유럽 대도시와 같이 호화 유람선이 드나드는 아름다운 항구를 만들겠다고 포장했던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 정작 해군만을 위한 군사기지였음을 깨닫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정 해군기지는 절차적 정당성에도 큰 문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문제가 됐던 것은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이 부정당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2022년 오늘날 지역 최대 이슈가 된 제주 제2공항을 두고, 도민사회는 다시 강정마을을 떠올리고 있다. 그만큼 제2공항을 둔 지역 내 갈등은 심각하다. 그보다 시간을 거듭할수록 더 심각해졌다는 표현이 적절한 상황이다.

두 사업 모두 국책사업이라는 공통점과 함께 정부와 제주도정이 앞장서서 지역주민의 의사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뒤집힌 제2공항 여론조사 결과, 무색해진 '도민주권' 결정

도민의 '자기결정권'은 거창하지 않다. 설사 국책사업이라 해도 제주도민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제2공항의 추진 여부를 제주도민들이 직접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거듭 곱씹어봐도 지난해 2월 실시된 도민 여론조사는 절호의 기회였다. 2015년 11월 제2공항 예정지 발표 이후 오랜 기간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도민들에게 직접 의견을 묻는 방법은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었다.

무엇보다 쉽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던 관련 기관·단체 간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조사의 주체가 된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제2공항 도민 의견수렴 여론조사를 승복함은 물론, 이후의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협의를 거쳤다.

사업의 추진 주체인 국토부 역시 제주도에서 합리적·객관적 절차에 따른 도민 의견수렴 결과를 제출할 경우 정책결정에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제주도기자협회 소속 도내 9개 언론사가 2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제2공항 찬반 여론조사에서는 각각 반대 51.1%-찬성 43.8%(엠브레인퍼블릭), 반대 47.0%-찬성 44.1%(한국갤럽)으로 나타났다. 한 곳의 여론조사는 오차범위 내에 있었다 하더라도 반대 의견이 보다 앞섰고, 또 다른 곳의 여론조사는 반대 의견이 분명하게 확인된 결과였다.

혹자는 '주민수용성' 측면에서 성산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주민수용성을 물을 대상은 제2공항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주민들이어야 했다. 개발이익을 누리게 되는 인근 주민들 역시 온전한 대상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도민사회가 주지하다시피 결과가 뒤집힌 제2공항은 더 큰 갈등을 부추겼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의 '제2공항 강행' 발언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명시적·묵시적 약속을 무너뜨렸다. 도민 공론조사가 실시되지 않았으면 몰랐을까, 결과에 대한 불복은 더 큰 화를 키웠다.

그 중심에는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영혼없이 끌려다닌 제주도,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고 민심을 져버린 제주도지사, '도민주권' 약속이 무색하게 미온적으로 방치해 온 정부가 있었다.

◇ 전례 없던 '보완가능성 용역'...책임 떠넘기며 확대된 갈등

도민 수용성을 담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제2공항은 다시 결정적 기로에 서기도 했다. 2~3차례의 걸친 재보완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환경부에 의해 반려되면서다. 

반려 결정은 '보완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청한 내용의 중요한 사항이 누락되는 등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적정하게 작성되지 않아 협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내려진다. 이전부터 문제시 돼온 조류, 소음, 숨골, 멸종위기생물 등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그러나, 국토부는 2021년 10월 환경부에서 반려한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보완 가능성 검토 연구용역을 실시키로 하면서 사실상 차기 정부에 공을 떠넘겼다.

부실한 내용을 다시 보완하겠다는 결정도 아니었다. '보완이 가능할 것인가'를 별도로 연구하는, 전례 없던 용역 형식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 공교롭게도 용역의 과업기간은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였다. 

'절차적 투명성과 지역주민 상생'을 약속해 온 문재인 정부는 주요 기점마다 원희룡 제주도정과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게임'을 거듭했고, 결국 제2공항 문제를 온전히 책임지지 못했다.

그 사이에 '제2공항 조속 추진'을 제주지역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고, 새정부 국토교통부 장관에 '제2공항 강행'을 부르짖던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가 발탁됐다. 

사실상 제주 제2공항 재추진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부작용은 도민들의 몫이 됐다. 

◇  새 도정에 맡겨진 '도민주권' 확보

제2공항을 둘러싼 도민들의 의견은 아직 반반으로 엇갈려 있다. 대선을 치를면서 제2공항 찬반 입장에 따라 정파로 갈리는 양상까지 보였다.

지난 5월 1일 [제주의소리]가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일보, 제주MBC, 제주CBS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제주 제2공항의 조속한 추진'에 대한 의사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4.9%는 찬성, 48.8%는 반대 의사를 밝혀 오차범위(±3.1%) 안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앞서 [제주의소리]가 지난해 8월 26일 실시한 제주 성산 제2공항 건설을 묻는 질문에서도 '백지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50.9%로, '재추진해야 한다'는 응답 44.5%와 차이를 보였다. 반대 여론이 근소하게 앞서는 추세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갈등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돌아가게 됐다.

오 지사에게는 도민들의 주권을 되찾아야 하는 책임이 주어지게 됐다.

실제 오 지사는 6.1지방선거 후보 시절부터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당선 직후 [제주의소리]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법과 제도의 시스템에서 충분히 자기 결정권을 견지하면서 풀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오 지사는 "윤석열 정부와 원희룡 국토부가 아무리 제2공항 조기 착공을 원한다 해도 법과 제도의 틀을 벗어나면서까지 진행할 수는 없다"며 "국회도 다수석이 민주당에 있기 때문에 제주도정, 도의회, 국회가 협력하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법안들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오 지사는 조만간 원희룡 장관과 만나 제2공항과 관련한 논의를 갖는다는 계획이다.

제주지역 국회의원 3인 역시 도민주권을 누차 강조해 왔다. 특히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김한규 의원(제주시 을)은 "제2공항은 결국 절차적 정당성 문제이고 도민 자기의사결정권이 매우 중요하다"며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도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 꼭 주민투표 방식이 아니어도 찬반이 서로 숙의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 가능' 결론을 내린 국토부는 이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다시 작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 문제도 재차 다뤄지게 될 전망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결말은 진작 무산됐다. 이제 적어도 도민들의 삶에 대한 결정을 도민들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상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 남겨진 과제가 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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