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도정, 행정체제 개편 시동] ② 개편 열쇠 쥔 중앙정부-정치권 '시큰둥'

도민 정부 시대를 선언한 민선8기 오영훈 제주도정이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돌입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번번이 제기돼 온 '제왕적 도지사의 폐단'과 '행정의 민주성 저하' 문제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취지다. 최소 5~6개의 제주형 기초자치단체가 필요하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제시되면서 논의는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다만, 전례에 비춰 풀어야 할 과제가 곳곳에 산적해 있다. 예기치 못한 사회적 갈등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제주의소리]는 과거 행정체제 개편 논의 과정을 되돌아보고, 예상되는 기대와 우려, 더 나아가 대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기초자치단체의 필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도민사회의 여망이 무르익고 있었음에도 12년간 진척을 보이지 못했던 요인은 외부에도 있었다.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중앙 정부는 물론 정치권 역시 제주의 행정체제는 시큰둥하게 다뤄질 뿐이었다.

이는 특별자치도의 태생적 한계에 기인한다. 제주도는 지난 2006년 시행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지난 16년 간 4660여건의 권한을 이양받았다. 특별자치도의 유치는 제주도가 정치력을 행사했다기보다는 지역적 특수성에 따른 '테스트베드'로서의 성격이 짙었다.

그 테스트 과정에서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았다. 시군이 폐지된 이후 행정의 민주성 약화, 주민참여 약화, 지역간 불균형 발생 등의 문제가 발생한 가운데,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법인격을 갖춘 기초자치단체가 부활돼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됐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법 체계를 뜯어고치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했다.

특별자치도 제주의 근간이 된 제주특별법 제10조에는 '행정시의 폐지·설치·분리·합병'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해당 조항은 '제주자치도는 지방자치법에도 불구하고 그 관할구역에 지방자치단체인 시와 군을 두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은 지속적으로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바라는 제주사회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정부는 특별자치의 설립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거부했다. 단일 광역행정체계를 갖고 행정의 효율성을 기한다는 것이 특별자치도의 가장 큰 목적이었는데, 이미 권한 이양이 이뤄진 상태에서 이전의 행정체계로 회귀하는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도민사회가 숱한 논의 끝에 꺼내든 '행정시장 직선제'는 차선책이었다. 행정시장 직선제는 기존의 임명제 행정시 체제에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대안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권고안을 만든 행정체제개편위원회 조차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는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법인격 없는 행정시로서 주체적인 행정을 펼 수 없다는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행정시장 직선제는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직선으로 선출한 행정시장이 자치법규를 발의하고, 예산편성, 행정기구 조정 등을 요청할 수 있고, 도지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행정시장이 요청한 내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관련 권한은 역시 '도지사'가 지니고 있었다. 가령 도지사와 행정시장이 대립하며 행정시의 요청을 무시할 경우 직선제 행정시장은 허수아비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과거 행정시장을 지냈던 모 인사는 최근 중앙부처 공모 사업으로 확보한 국비 예산이 도지사의 반대로 인해 편성되지 못했던 일화를 토로한 바 있다. 심지어 도지사가 아닌 제주도청 예산담당관의 반대로 인해 지방비를 매칭하지 못했던 사례도 소개하며 행정시의 한계를 역설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부는 그나마의 우회책이었던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마저도 거부했다. 2019년 6단계 제주특별법 제도개선안 중 행정시장 직선제에 대해 '불수용' 결정을 내렸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행정시장 직선제가 특별자치도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고, 도지사와 행정시장 사이에 문제가 있을 경우 조정이 어렵다"는 주장을 들었다. 

지난 10년간 이어져 온 논의 과정에서는 특별한 의견도 내지 않다가 최종 문턱에서 퇴짜를 놓은 것이다. 주민들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하겠다고 수 차례 강조해 온 문재인 정부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배신감은 더욱 컸다.

결국, 돌고돌아 공은 국회로 돌아왔다.

현재 국회에는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 국회의원 발의로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위성곤 의원(서귀포시)이 발의한 개정안은 주민투표 실시 여부를 제주도가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와 군을 설치하려는 경우 제주도는 도의회의 동의를 받아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고, 결과만 행안부에 보고해야 하는 내용을 규정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5월 13일 회부됐지만, 아직까지 계류중이다.

선거 초기부터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국회의원 시절인 지난 3월 제주도의 관할구역에 지방자치단체인 시군을 설치하려는 경우 도지사가 도의회의 동의를 받아 주민투표 실시를 정부에 요청하고, 조례를 통해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구성을 달리할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마련했다.

해당 법안은 공전중인 국회에서 아직 제대로 다뤄지지도 못했다. 각자의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제주만을' 위한 법안에 열심을 다할지는 미지수다.

또 다른 우려도 뒤따른다. 정부여당과 국회 과반의석 확보 정당이 모두 더불어민주당이었을 때도 속도감있게 박차고 나가지 못한 법안이다. 그 사이에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국민의힘으로 뒤바뀌었다. 새 정부가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 사이 또 다른 특별자치도인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선점 효과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강원지역 최우선 공약으로 특별자치도 도입을 내걸었던 것과는 달리 제주지역 공약에 기초자치단체 부활은 커녕 행정체제에 대한 일체의 언급도 없었다.

중앙정부와 중앙정치권을 설득할 논리 개발은 여전히 제주사회에 남겨진 지상과제다.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이 아직 갈 길이 먼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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