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44) 아미타브 고시, 김홍옥 역, ‘대혼란의 시대’, 에코리브르, 2021.

아미타브 고시, 김홍옥 역, ‘대혼란의 시대’, 에코리브르, 2021. 사진=알라딘.<br>
아미타브 고시, 김홍옥 역, ‘대혼란의 시대’, 에코리브르, 2021. 사진=알라딘.

한 인터뷰에서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기후 변화라는 용어가 아니라 ‘만물 변화’(the everything change)라고 했다. 인류세는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다. 기후 변화는 세상 모든 것을 바꿔버릴 테니까. 사막화, 산불, 홍수, 잦은 폭염과 태풍, 이상한 장마와 같은 이상 기후들은 아마도 우리가 겪게 될 모든 것들의 변화의 극히 일부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추세의 변화가 계속된다면 그 끝은 멸종과 종말이다. 그러면 지구 온난화 같은 단어는 지나치게 따뜻한지도 모르겠다. ‘대혼란의 시대’의 번역본이 내세우는 부제는 ‘기후 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다’이다. 말 그대로 우리는 궁핍하고 무기력한 상상력의 시대를, ‘대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는 인도에서 태어나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소설가이다. 그는 이 책을 펴낸 이후로도 기후 변화에 대한 소설과 논픽션을 한 권씩 더 내기도 했다 한다.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는 않았다.) 기후 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손에서 놓지 않은 끈질긴 지식인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그가 시카고대학교에 초청되어 연속 강연을 행한 내용을 엮은 것이 ‘대혼란의 시대’이다. 시카고대학교에는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가 재직하고 있다. 그는 인문학계에 인류세 담론을 도입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두 사람은 인도 출신의 탈식민주의적 사유를 중시하는 세계적인 지식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인류세와 기후 변화 담론에 큰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같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 1948~. 인도의 역사가-옮긴이)는 영향력 있는 자신의 에세이 ‘역사의 기후(The Climate of History)’에서, 사가들은 인류세(Anthropocene)라 불리는 이 시대, 즉 "인간이 지질학적 행위체가 됨으로써 지구의 가장 기본적인 물리 과정을 변화시키고 있는 시대에 그들이 지닌 근원적 가정과 절차를 상당수 수정해야 할 거라고 주장한다. 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류세가 예술과 인문학뿐 아니라 우리의 상식적 이해와 그를 넘어선 오늘날의 문화 전반에도 도전을 제기한다고 덧붙이려 한다.” (19쪽)

차크라바르티는 인류세 시대에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가 더 이상 구분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고시 역시 근대성, 특히 근대 문학이 과학과 문학이 구분되게 된 상황을 돌이켜 본다. 브뤼노 라투르가 지적한 것처럼 근대성은 “‘분할하기(partitioning)’, 즉 자연(Nature)과 문화(Culture)의 상상적 간극을 더욱 벌려놓는 프로젝트”(95~96쪽)와 긴밀하게 관련 있다. 그것이 과학소설이 주류 문학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이유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기후 위기의 시대에 더 이상 주류 문학이 과학과 문학으로 구분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근대 이전까지만해도 “비인간의 행위 주체성”(90쪽)이 억압당하거나 배제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특히 아시아의 서사들이 그렇다. 근대 이전의 이야기들에 인간만이 아니라 다양한 비인간 존재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고시는, 오늘날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기후 변화라는 ‘낯선 기이함’(uncanny)은 부르주아적 삶과 연관되어 있는 일상성,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강조하는 근대 서사의 형식와 불화한다고 본다.

하지만, 저자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우리의 삶에는 소설이 그리는 것보다 훨씬 우연과 기이함이 넘쳐난다. 그는 1978년 델리 지역에서 예상치 못한 기상 이변을 만난다. 나중에야 델리 지역을 강타한 최초의 토네이도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 또한 그 때 희생당한 저자의 지인에게 헌정되었다. 기후 재난의 현실은 이처럼 우리가 상상하지 않은, 생각해 보지 않은 사태들의 연속일 것이다. 그것은 일상성의 유지라는 주류적 근대소설의 안온한 상상력으로 포착될 수 없을 것이다.

고시는 이 책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담론들에 비해 이를 다룬 문학적 상상력이 얼마나 궁핍한지를 비판한다. 하지만 자신이 소개한 것처럼 기후 소설, 즉 클라이파이(cli-fi)라고 부르는 과학소설의 하위장르들은 기후 변화를 주된 이야기로 삼아 상상력을 전개해 나간다. 그럼에도, 저자는 과학소설이 낯선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이야기라는 정의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류세가 과학소설에 저항한다고 본다. 그 자신의 과학소설의 저자임에도 과학소설에 대한 다소 협소한 정의가 아닌가 싶다. 

또한 이 책이 나올 때, 이미 많은 기후 소설과 이에 대한 논의들이 많았을 텐데, 그러한 문학적 성과들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기후 변화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저자의 의견에는 같은 생각이다. 한국 문학에는 다행인지, 자연스러운 흐름인지 비인간 행위자와 기이한 낯선 상상력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학소설(SF)도 주류소설(MF)이라고 해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한 변화 가운데 기후 변화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 역시 더욱 풍부해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 덕분에 알게 된 새로운 지식이 상당히 많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한 가지. 근대 과학소설의 효시로 자주 언급되는 ‘프랑켄슈타인’ 역시 이상 기후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1815년 4월 5일부터 몇 주 동안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300킬러미터 떨어진 탐보라산에서 기록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화산 분출이 있었다. 먼지 기둥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결과 기온이 섭씨 3~6도 떨어지는 등 심각한 기후 교란 사태가 수년 간 이어졌다. 1816년은 심지어 ‘여름이 없는 해’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해 5월,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과 퍼시 비시 셸리, 그리고 메리 올스턴크래프트 고드윈(메리 셸리) 등은 무서운 폭풍우를 즐기며 귀신 이야기를 써보자고 했다. 그 결과물 하나가 ‘프랑켄슈타인’이었던 것.


# 노대원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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