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15) 대정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곳에서 올레가 열리고, 그 올레로 들어서면 모든 경계가 일순 사라지며 영혼의 숨결로 서벅거리는 서쪽 끝 모슬포, 탐라국에서 대정만큼 상흔 많은 고단이 어디 또 있으랴. 모슬포로 더 알려진 대정은 제주 근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대정 사람을 “대정몽생이”이라 했을까. 이는 불의에 항거하였던 대정인의 기품을 단적으로 예시한 게 아닌가. 조선의 올곧은 선비들의 적거지이자, 나라가 어려웠던 시대에 온 몸을 던져 의거하였던 우국 열사들의 본향이 대정이다. 동계 정온, 추사 김정희, 정난주의 유배와 강제검의 난, 방성칠의 난, 오좌수의 의거, 이재수의 신축민란, 그리고 알뜨르비행장, 모슬포 제1육군훈련소 등은 근대사의 형극 그 자체였다.

열다섯 번째로 순례하는 제주올레 11코스는 2008년 11월 30일 개장되었으며, 대정읍 하모리 체육공원에서부터 무릉리 제주 자연생태문화체험골(무릉외갓집) 까지 17.3km. 44리이다.

탐라의 3성 9진 방어 유적 가운데 모슬진의 유적지를 지나 모슬포항을 돌아서면, 하모리·동일리·상모리·보성리·신평리·무릉리·청수리를 지나면서, 대정오일장·서산사·하모3리 섯사니물당·동일리포구·하모리 고인돌·모슬봉·정난주 묘역·신평도요지, 신평본향 일뤳당·신평·무릉 곶자왈·정개왓·오찬이궤·성제숯굽터·고래머들·인향동 구남못으로 이어지며, 삶의 물음표에 덧난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올레가 제주올레 11코스이다.

11코스 안내센터를 지나 길을 건너면 모슬진 유적이 있다. 이 모슬진은 서귀포시 강정동에 있던 가래방호소를 1510년 장림 목사 때 회수로 롤 옮겨 동해 방호소를 세웠다가, 1677년 5월 윤창순 목사가 동해 방호소를 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모를진 터 바로 곁에 오좌수 의거비가 세워져 있다. 강화도조약 이후 왜놈 침탈이 점차 많아지자, 이를 지켜내기 위하여 대정읍 하모리 출신 이만송·이흥복·정종무·김성만·김성일 다섯 분이 분연히 일어나 항거한 의거비가 있다.

오좌수 의거비. 사진=윤봉택.&nbsp;<br>
오좌수 의거비. 사진=윤봉택. 

바로 북쪽에 있는 ‘신영물·신령수·영신정이라 부르는 샘물이 있다. 하모2리 영수동 도로변에서 솟아나는 이 샘은 과거에 한 풍수가 지나가면서 물맛을 보고 나서 물맛이 너무 신령스러워 불린 이름이다. 수도가 보급되기 이전까지는 마을의 중요한 식수원이었다. 

제주도 서부지역의 거점 항구인 모슬포항 주변에는 1930년 지역 어민들이 어업조합을 설립한 후 세운 물류창고가 있고, 골목을 나서면 대정오일장이다. 제주도 내에는 서귀포시 지역(대정, 표선, 중문, 서귀포, 고성/성산포) 오일장 등 5개소이고, 제주시 지역(세화, 한림·제주시 민속) 오일장 등 3개소인데, 대정오일장은 매월 1일 6일에 열린다.

동일리 지경 머리에 ’산이물‘이 있고, 더 지나면 무오법정사 항일항쟁 주역 강창규 스님이 창건한 서산사가 표석과 함께 있다. 해안선을 지나면 길 남쪽에 불턱처럼 조성된 하모3리 돈짓당인 ‘섯사니물당’이 있다.

모슬포항.&nbsp;
모슬포항. 
강창규 애국지사비.
강창규 애국지사비.

‘망동산, 모도리수눌늪’을 지나면 ‘생이물’ 건너에 동일리포구가 기다린다. 홍물동 지나면 청소년 수련관 뜨락에 하모리 고인돌이 있다. ‘물배왓, 동카름, 벨레기동산’ 지나 ‘장갈연못’ 위 대정여고 교정에는 제1육군훈련소 시절 제98육군병원 병동이 실습실로 사용되고 있고, ‘솟은밧, 비케왓, 우중모루’ 지나면, 모슬봉수가 있던 모슬봉 입구이다.

5부 능선에 있는 중간 스탬프를 지나면 보성리 지경이다. ‘한굴밧’ 지나 ‘광대왓’ 방향으로 들어서면, 풍수지리상 좋은 터로 알려진 ‘존섭’이고, 바로 위가 정난주 마리아묘역이다.

모슬봉.&nbsp;
모슬봉. 

신평리 마을 초입에는 한 가마에서 유일하게 두 종류의 옹기(황색·흑색)를 동시에 구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쌍굴가마가 있었다 하여 불린 ‘하동굴동산’이다.

‘한진못’ 지나 ‘조로방내’ 넘으면, 크지 않은 연못 ‘서녁물’이 보이고, 4.3사건으로 사라진 ‘식물동네’ 지나면, ‘모루왓’ 우측으로 신평곶자왈 입구가 나타난다. 바로 이곳이 1901년 장두 이재수가 신축민란을 봉기할 때, 이곳 신평리 본향 ‘일뤳당’에서 천지신명께 제를 올렸던 유서 깊은 신당이 있다. 과거에 당굿을 할 때는 돼지를 산에 풀어 놓고 난 다음에 다시 산돼지를 잡듯이, 풀어 놓은 돼지를 잡는 산신놀이를 하였다고 전한다.

신평리 본향당.
신평리 본향당.

신평곶자왈로 들어서면, 자왈 높은 곳에 볼레낭이 많아서 불려진 ‘꼬리볼레동산’과 자왈에 방목한 소를 돌보기 위해 테우리들이 모여 놀았던 ‘테우리동산’이 있고, 이곳에서부터 ‘한숙이’와 ‘고른질’로 가는 길이 나눠지기 때문에 불려진 ‘거린밧’이 있다.

신평 곶자왈 잣도를 지나면, 무릉곶자왈이다. ‘잣질’ 올레 따라 13km 지점 지나 ‘새왓’으로 가면, 정씨 성을 가진 분이 이곳에 머물면서 자왈을 개간하여 생활하였던 ‘정개밭’이다.

그리고 지난날 오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한 손으로 소를 때려잡을 정도 힘이 천하장사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 끼에 쌀 한 가마 분량의 밭을 지어 먹어도 모자라 부잣집 소를 잡아 먹으며 이 궤에서 생활하였다고 하여 불린 ‘오찬이궤’가 있다. 좀 더 아래로 내리면, 과거 인향마을이 설촌될 당시, 한 형제가 이 숲에 들어와 숯가마를 만들어 숯을 구웠다 하여 불린 ‘성제숯굽터’가 있다.

정개발.
정개발.
성제숯굽터.<br>
성제숯굽터.

15km 지점 지나면 ‘고래머들’이다. '고래'는 맷돌, '머들'은 돌무더기 또는 땅에 박혀 있는 암석을 말하는 제주어인바, ‘고래’ 제작에 필요한  연한 성질의 돌이 많았기 때문에 불린 지명이다. 

인향동(인냉이)는 무릉2리에 있는 자연마을로서, 평지동(고바치)·좌기동(사기수)·웃날뢰(신평리)·날뢰(일과리) 등과 함께 이뤄진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우마 방목 때 급수원으로 사용되었던 ‘구남물, 구남수’가 있는데, 못 서쪽에는 돌로 만들어진 구시통(돌확) 2개가 좌우로 놓여 있는데, 이는 빨래로 인하여 물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빨래 전용으로 만들어 놓은 세답 문화유산이다. 이처럼 연못가에 구시통을 놓아 빨래하였던 곳은 한경면 낙천리 저갈못과 이곳이 유일하다. 

한라산과 산방 능선.<br>
한라산과 산방 능선.

‘왕돌단, 삼오정’을 지나 ‘동카름’에서 삶의 느낌표를 나누는 이 마을 올레 삼촌을 만났다. 85세 연장자부터 75세까지 보석 같은 사람들….

무릉 오거리에는 대정현이 설립될 당시 이 지역에서 기와와 목탄을 생산하여 대정현청으로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다리를 설치하였던 ‘고인교’가 있고, 이곳에서 좀 더 가면 제주올레 11코스 끝점 무릉외갓집이다.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로 격주로 게재합니다. 


# 필자 윤봉택 시인은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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