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도정, 행정체제 개편 시동] ⑤ 주민참여 기반한 '논리 개발' 핵심과제

도민 정부 시대를 선언한 민선8기 오영훈 제주도정이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돌입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번번이 제기돼 온 '제왕적 도지사의 폐단'과 '행정의 민주성 저하' 문제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취지다. 최소 5~6개의 제주형 기초자치단체가 필요하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제시되면서 논의는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다만, 전례에 비춰 풀어야 할 과제가 곳곳에 산적해 있다. 예기치 못한 사회적 갈등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제주의소리]는 과거 행정체제 개편 논의 과정을 되돌아보고, 예상되는 기대와 우려, 더 나아가 대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은 시작 단계부터 넘어서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별자치도 출범 직후부터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오늘날까지 소모적인 논쟁만 이어졌다. 실제 현 시점에서도 실현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발걸음을 떼는 것은 도민들의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한 도민사회의 열망은 끊이지 않았다. 

2011년 2월 제주M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제주형 자치모형 도입'과 관련한 질문에 '기초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방안'에 찬성이 66%, 반대가 19.8%로 나타났다.

10년이 지나 2021년 10월 제주도의회와 제주와미래연구원이 공동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기초자치단체 부활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찬성이 36.1%(그렇다 29.3%, 매우 그렇다 6.8%)로 반대 23.5%(그렇지 않다 19.5%, 전혀 그렇지 않다 4.0%)보다 높게 나타났다.

기초자치단체가 사라지면서 체감이 된 문제는 행정시장의 주민 책임성 약화, 주민참여 약화, 지역간 불균형 심화, 행정의 민주성 약화, 행정서비스 질적 저하 등이었다.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은 권한·사무가 도움이 된 측면도 있지만, 이면에 방치된 부작용을 간과할 수는 없다.

2006년 특별자치도 도입 당시의 취지는 '지방자치단체에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해 도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겠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뒤늦게나마 기초자치단체 부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주된 이유는 '자치권 보장'과 '삶의 질 향상'이다. 180도 상황이 뒤바뀐 구조다.

도민사회의 요구를 뒤로하고 현 행정시 체제를 그대로 두는 것은 제주도지사로서는 책임 방기이거나 직무 유기일 수 밖에 없다. 결국 핵심은 효율성과 방향성이다.

기초자치단체 도입 과제에 꼭 '제주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숨은 의도가 있다. 기존 국내 지방자치단체에 도입된 '기관대립형'이 아닌 '기관통합형'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중앙정치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개발하겠다는 목적이다.

대표적으로 '의원내각제'의 사례를 들 수 있는 기관통합형 정치모델은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일찍이 정착한 체제다.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해 영국, 캐나다, 독일 등에서 내각제의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대통령 중심제와 더불어 현대 민주국가의 대표적인 정부 형태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내각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지난해 9월 리셋코리아 개헌분과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헌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는 의견이 66.5%로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정부형태를 의원내각제로 도입하자는 의견은 19.8%에 그쳤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비율(53.2%)과도 큰 차이를 보였다.

각 정부 형태의 장단이 있기에 중앙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내각제 도입 가능성을 꾸준히 타진하고 있다. 제주에서 성공적인 기관통합형 모델이 안착될 시 향후 개헌 논의 과정에서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 그 틈새시장을 공략하는게 제주의 기회라는 의견도 뒤따른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강원특별자치도의 모형 역시 제주로서는 파고들 여지가 있는 쟁점 사안이다. 사실상 모태를 제주특별자치도에 두고 있는 강원특별자치도는 기존의 기초자치단체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출범을 앞두고 있다.

정부로서는 앞선 '기초자치단체 통폐합'의 부작용이 확인된 상태에서 강원도에도 똑같은 모델을 적용하기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매번 제주사회의 주장을 가로막았던 '형평성의 논리'가 이제 역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성사 가능성은 '논리 개발'에 달렸다. 12년간 공전을 거듭한 단순 '지역차별' 논리가 아닌 객관적 데이터 확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주도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에 행정체제 개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용역비로 15억원을 편성해 심사를 앞두고 있다. 예산안이 통과되면 8월말에서 9월초께 용역을 발주하고, 내년 12월까지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에 대한 구상안을 수립키로 했다.

15억원이라는 예산은 용역비 치고는 적지 않은 예산이다. 일례로 제주 최상위 법정계획인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용역비는 12억원 수준이었다. 제주도는 용역 과정에서 약 300명이 참여하는 주민참여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비용임을 설명했다. 전문가들로만 대안을 만들 수도 있지만 '도민 주권' 취지에 맞게 주민의견을 폭 넓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민사회에 축적된 데이터를 도출하고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는 절차가 필수적이게 됐다. 무엇보다 오는 8월부터 출범하는 행정체제개편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한 시점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은 이미 예견된 듯한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이다. 오영훈 지사는 후보 시절부터 자신이 구상하는 기초자치단체의 아이디어를 꾸준히 제시한 바 있다. 기존 기관대립형이 아닌 기관통합형을 도입하고, 행정구역은 인구수에 따라 적어도 5~6곳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오 지사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지만, 현 시점에서는 도리어 '기관대립형-5~6개 분할'이 최종안으로 도출된다면 지사의 공약을 꿰맞춘 결과라는 비판을 살 수 밖에 없다. '도민주권 시대'를 표방한 오영훈 제주도정이 자칫 참여한 도민들을 '거수기' 역할로 전락시킬 수도 있는 셈이다.

자칫하면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으로 회자되는 ‘답정너’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지역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비치고 있다. 심지어 같은 정당 소속의 도의원들의 견제도 예사롭지 않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한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현재 돌아가는 흐름을 보면 도민들은 '행정구역 5~6개, 기관은 통합형'이라는 용역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지사의 의도와는 달리 도민들은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도민 생활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만큼 도민사회 의견 수렴을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하성용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용역을 통해 운영하는 주민참여단의 목표가 보다 분명해야 한다. 주민참여단의 역할을 단순 여론 수렴과 내용 공유에만 그치면 이들을 홍보 수단으로 밖에 활용하지 못할 뿐"이라며 구체적인 역할 설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승배 제주도 자치행정국장은 "도민들의 자기결정권이 가장 중요하다. 형태 등은 공론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다양한 도민들이 원하고 있는 실용적인 방법들을 모아 용역을 계획하고 있지만, 이런 의견을 모아 집단지성에 의한 모형이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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