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91) 김준기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홍콩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네 지역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예술운동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네 나라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 국적에 따른 언어가 제각각 달라 영어 일어 중국어 번역 원고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청와대 전경. ⓒ대통령비서실
청와대 전경. ⓒ대통령비서실

한국은 지금 새로운 공간의 탄생 소식으로 떠들썩하다. 청와대에 복합문화공간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이후의 일이다. 한국의 정치체제인 대통령제의 상징공간이었던 청와대를 시각문화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다는 문화부장관의 사업계획 보고는 미술계는 물론 시민사회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청와대가 어떤 공간인가! 이승만 대통령의 경무대 시절 이래 청와대로 이름을 바꾼 윤보선 대통령에서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핵심부로서 영욕의 세월을 거친 대한민국 현대사의 현장아닌가. 그런 공간을 비우고 문화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은 그 상징성의 무게가 남다른 일이다.

대통령 집무공간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긴 일은 윤석열정부의 출범과 함께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 일은 전 정부인 문재인정부 때도 공약 사항이었으므로 짧지 않은 기간동안 실행에 옮기려고 논의를 갖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전 정부가 아닌 현 정부에서 이뤄졌다. 짧은 준비기간에 급히 추진한 대통령실 이전은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청와대를 관람하기 위해 연일 방문객이 몰리면서 향후 공간의 운영 방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복합문화공간 설치를 지지하는 54개 문화/예술 단체들이 연대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성명서는 청와대에 문화시설을 중심으로 한 복합문화공간을 설치한다는 계획은 선진국이라는 국격에 맞는 일로서 권위주의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환골탈태하는 사건으로 보았다.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시각문화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서 지난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 서울의 자연과 역사를 단절하는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해소하여 서울 도심의 역사성에 바탕을 둔 자연 경관의 흐름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조선의 전통과 한국의 근현대가 만나는 역사적 공간, 서울 도심의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하는 도심경관의 중심 공간으로 거듭날 청와대 복합문화 공간에 기대하는 바 크다. 

미술인들은 연대 성명서를 통하여 청와대가 대한민국의 문화중심으로 우뚝설 것을 주문했다. 나아가 정부의 정책이 미술인들의 염원과 동행하는 민관협치의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겉으로 보기에 이번 성명서는 관의 일에 민이 거들고 나서 박수치는 형국이다. 하지만 내면에는 더 내밀한 이야기가 있다. 이건희기증관 건립 문제를 놓고 본격화 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논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부분 영역이 그러하듯, 미술 영역에서도 근대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수준이다. 

프랑스의 파리의 예를 들어보자. 전근대의 유물을 망라하는 루브르박물관이 있고, 현대미술의 중심 퐁피두센터가 있다면, 근대미술을 잘 갖춘 오르세미술관이 있어 전근대와 근대, 동시대의 예술을 일람할 수 있도록 구색을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의 서울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전근대와 근현대를 간추린다고 하지만, 양 기관이 각각 수천 점의 근대미술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을 뿐 이를 두루 꿰는 근대미술의 연구와 수집, 보존, 전시, 교육의 길은 아직 요원하다. 무릇 컬렉션은 모여 있어야 힘을 발휘하는 것인데, 흩어진 구슬을 그대로 두고서는 보배를 만들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문제는 근대에 대한 한국의 콤플렉스와 관련이 깊다. 한국은 전근대 봉건왕정의 끝에 제구주의 침탈을 당하고 식민지로 전락했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 재편에 따라 냉전체제에서 급격히 성장한 신생 국가이다. 이러한 신생 근대국가들에게 근대성이란 스스로 만들어온 역사라기보다는 외세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라는 열패감이 앞서기 마련이다. 이런 까닭에 근대의 역사를 갈무리하는 일에 소홀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는 감정적인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이성적이고 엄밀한 잣대로 당대의 관점을 적용하여 분석하고 이를 동시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할 때 유의미한 서사로 되살아나는 법이다. 

청와대를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일은 근대미술관 논의와 맞닿아 있다. 지난해에 이뤄진 이건희수집품 기증 덕분에 한층 두께를 쌓은 국립기관의 근대미술 수집품들을 토대로 국립근대미술관의 꼴을 갖춰나가는 데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미술관 논의 또한 이런 관점에서 한국 특유의 근대성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만드는 일이다. 미술인들은 청와대 문화공간이 그 마중물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술인들만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함께 뜻을 모을 일이다. 우리 자신이 부정한다고 해서 없어지거나 감춰지는 것이 역사가 아니다. 아픈 시간이지만 그 세월을 살아내며 일궈온 역사를 갈고 닦으며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드는 일. 청와대 문화공간에 담긴 행간의 뜻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학사, 석사, 미술학 박사.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