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제주 아라요양병원장

근래에 지인 두 분께서 자서전을 펴냈다. 나름대로 지역사회에서 공헌을 하신 분들이어서 감명 깊게 읽었다. 그 분들을 이해하는 데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20여 년 전에 우연히 ‘살아가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우리 인생을 살찌우려면 꼭 해야 할 49가지를 추리고, 그것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책이었다. 그 49가지가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여겨져 따져 보았더니 아직 하지 못 한 것들이 대여섯가지 있었다. 

못 한 것이야 이제라도 하면 되지 생각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이 ‘부모님 발 씻어 드리기’와 ‘일기 쓰기’였다. 책을 읽을 당시 내 부모님은 물론 장인 장모님께서도 이미 돌아가셨으니 ‘부모님 발 씻어 드리기’는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일기 쓰기도 평생 쓴 것을 다 합쳐도 2년 안팎 정도라 일기를 썼다고 하기도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일기 쓰기’ 말미에 ‘일기를 쓰지 못했으면 자서전이라도 쓰라’라는 글이 있어 자서전이야 이제부터라도 준비하면 되겠지 마음먹게 되었다. 그때부터 차근차근히 준비하여 2011년 말에 병원장을 은퇴하는 것을 기회로 ‘큰 바위 얼굴을 꿈꾸는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출판하였다.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이후에 정부의 요직을 맡게 될 사람들이 국회에서 그 직을 맡을 자격이 되는지를 따지는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이 청문회 과정에서 망신을 당하거나 동의를 얻지 못해 사퇴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때로는 동의를 받지 못했지만 대통령이 그것을 무시하고 임명하는 바람에 정쟁의 회오리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물론 이 청문회가 정부의 정책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를 따지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걸 알기 어려우니 인간적 약점을 들추어내는 자리로 변질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 정도의 위치에 오른 사람의 처신이 일반 시정잡배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 많이 실망하게 되었다.

이 분들이 장차 청문회 자리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거나 자서전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살았다면 저렇게 했을까 생각하니 아쉽기 그지없다. 그동안 우리들이 식민지 생활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 너나없이 어렵게 살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래도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맡을 사람의 행적이 그 정도뿐이라면, 그런 사람이 과연 그 직을 맡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요즘 연좌제가 없어졌지만, 과거 친일파나 부모의 행적으로 자손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그런 경향이 뚜렷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경향은 지속될 것이다.

젊은 때부터 장차 청문회에 나서게 될 수도 있다거나 나중에 자서전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의 행동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나이가 든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젊은 때부터 생각과 몸가짐을 올바르게 가져 나중에 후회하거나 자손들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도록 힘쓰자. / 이유근 제주 아라요양병원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