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돌문화공원] ③ 취지·목적 무시한 전시시설 개편, 내부 관리는 뒷짐

1998년 북제주군 시절부터 “돌문화, 설문대할망신화, 민속문화를 집대성한 역사와 문화의 공간”이란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내·외 무수한 인사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제주돌문화공원.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기조가 급격히 무너지면서 돌문화공원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연속기획으로 돌문화공원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민·관 협력을 통해 지난 20여년 간 세계적 수준의 공원조성으로 극찬을 받아온 제주돌문화공원. 그러나  지난 민·관 협약 종료 이후인 2021년부터 돌문화공원의 관리·운영을 제주도가 전적으로 맡기 시작하면서 공원은 안팎으로 냉혹한 평가에 직면하고 있다.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인프라로서 평가 받아야 할 공간을 ‘적자 개선’, ‘관광객 확대’ 같은 구시대적인 기계적 논리를 앞세워, 공원 조성 취지와 전시 기획의 정체성을 해치는 시도들이 야외뿐만 아니라 실내 공간에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돌문화공원의 내실을 키우는 신화·역사·민속자료 수집과 기증에는 제주도의 사업소 기관인 제주돌문화공원관리소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관료가 주도하는 행정 편의주의적인 돌문화공원 관리 시스템을 더 늦기 전에 체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돌문화공원 제주돌박물관 지하에는 ‘제주수석관’이 자리잡고 있다. 정갈한 수석들을 관람하며 섬세한 돌의 미학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존 목적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시실 바닥에는 언젠가부터 기대어 누울 수 있는 빈백(beanbag)들이 놓여있고, 전시실 한쪽 벽면에는 제주수석과 전혀 무관한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다. 영상물은 돌문화공원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경관을 담은 영상부터 랩·드라마 형식도 함께 포함돼 있다.

기자가 현장을 찾아보니 돌문화공원관리소는 이곳에 ‘영상 감상하고 쉬어가라’는 취지의 문구를 붙여 놓고 있었다. 물론 무더운 날씨나 장시간 관람에 잠시 휴식을 위한 공간은 필요할 수 있다. 제주돌문화박물관 입구 한쪽에 비치한 빈백도 이러한 목적으로 읽힌다. 하지만 제주수석관에서는 전시 기획 의도에 따른 동선을 방해하고 있다. 제주수석관 공간을 전혀 다른 용도로 바꾼 것은, 공간에 담긴 고유한 기획 의도를 무시한 일방적이고 저급한 판단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돌문화공원의 정체성과 고유한 전시기획 의도 보다 행정 편의적인 판단을 앞세운 사례로, 관심있는 관람객들은 물론 전시 전문가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이유다.

화산섬인 제주도의 다양한 돌문화를 알리고 있는 돌문화공원 내 '제주수석관'에 언제부터인가 전시관 한쪽에 '쉬어가라'는 의미의 빈백(beanbag)이 놓여있다. 한쪽 벽면에는 공원 홍보영상을 포함한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고유한 전시물의 성격과 맞아야 하고, 공간의 전시기획 의도까지도 완전히 무시한 저급한 시도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화산섬인 제주도의 다양한 돌문화를 알리고 있는 돌문화공원 내 '제주수석관'에 언제부터인가 전시관 한쪽에 '쉬어가라'는 의미의 빈백(beanbag)이 놓여있다. 한쪽 벽면에는 공원 홍보영상을 포함한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고유한 전시물의 성격과 맞아야 하고, 공간의 전시기획 의도까지도 완전히 무시한 저급한 시도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돌문화공원관리소가 제작한 영상을 감상하고 빈백에 누워 쉬어가라고 안내한 모습. 하지만 이 공간은 본래 수석을 감상하는 목적이다. ⓒ제주의소리
돌문화공원관리소가 제작한 영상을 감상하고 빈백에 누워 쉬어가라고 안내한 모습. 하지만 이 공간은 본래 수석을 감상하는 목적이다. ⓒ제주의소리
돌문화공원관리소가 제작한 영상이 벽면에 나오고 있다. 수선관 전시기획 의도와는 이질적인 랩·드라마 형식의 영상물까지도 틀어놓고 있다.  ⓒ제주의소리
돌문화공원관리소가 제작한 영상이 벽면에 나오고 있다. 수선관 전시기획 의도와는 이질적인 랩·드라마 형식의 영상물까지도 틀어놓고 있다.  ⓒ제주의소리

실내 공간을 행정 임의대로 수정하려 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조성 중인 설문대할망 전시관에 설치한 오백장군, 돌하르방, 동자석상 등 일명 ‘3상’을 밖으로 이설하려는 계획도 시도된 바 있다.

설문대할망전시관에 들어설 3상과 3선(초가지붕선, 오름선, 무덤선)은 돌문화공원 기획에 일찌감치 반영된 방향이었다. 그러나 외부 의견을 참고한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관리소가 임의로 계획을 수정하려 했다. 이와 관련해 백운철 전 돌문화공원 추진기획단장은 지난 3월 16일 법률 대리인을 통해 제주도지사에게 ‘3상 이설 반대’ 요청 문서를 정식으로 전달하기 까지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계획은 무산됐지만, 민·관 협력을 통해 20년 넘게 고유한 이미지를 구축해온 돌문화공원이 현재 어떤 위기에 처해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제주돌문화공원 전시실 내 '신화의 통로'에 전시되어 있는 오백장군상, 돌하르방상, 동자석상. 제주를 대표하는 3상(像)을 전시해놓은 공간이다. 최근 돌문화공원관리소 공무원들이 이 석상들을 전시장 밖으로 이설하려는 계획을 시도하다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의소리
제주돌문화공원 전시실 내 '신화의 통로'에 전시되어 있는 오백장군상, 돌하르방상, 동자석상. 제주를 대표하는 3상(像)을 전시해놓은 공간이다. 최근 돌문화공원관리소 공무원들이 이 석상들을 전시장 밖으로 이설하려는 계획을 시도하다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의소리

# 외형도 망치고, 내실도 외면

교통약자를 이유로 들었지만 지금은 일반인용으로 전락한 전기셔틀차, 그와 맞물린 공원 내 도로 개설 시도, 주변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관람객에게도 외면 받는 이질적인 하트 모양 설치물, 덕지덕지 붙어 있어 하늘연못 경관을 해치는 빛바랜 플라스틱 와패들, 공간 성격을 무시한 빈백 설치와 영상물 상영, 설문대할망전시관 3상 이설 시도까지.

제주도가 돌문화공원 추진기획단과 관리 위탁 계약을 종료한 2021년부터 불과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공원에 벌어진 일들이다.

문제는 이렇게 공원 곳곳을 들쑤시는 동안, 관리소가 돌문화공원 내실을 다지는 업무에 충실했냐는 것. 돌문화공원관리소는 지난해와 올해 신화·역사·민속 자료 수집에 필요한 예산을 책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증 역시 굼뜨다. 지난해 기증품은 다랑쉬오름 사진 2점, 김구판관 초상화 1점 등 3점에 불과하다. 올해는 아직 기증 절차가 확정된 경우가 없다. 돌문화공원 발전에 꼭 필요한 일은 제쳐두면서 차량 들이고, 도로 깔고, 설치물 세우는 애먼 일에만 몰두한 셈이다. 

오죽하면 방향타를 상실해 표류하는 돌문화공원을 걱정하는 시민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 처해있다. 

사단법인 설문대, 사단법인 설문대국제명상문화원 설립 준비위원회, 제주돌문화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25일 성명서를 내고 “(제주돌문화공원의 설립 취지와) 지향과 반하는 이런 일들은 그 본질이 비전문가들인 공무원 중심의 행정 편의주의에 의해 운영되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돌문화공원의 운영주체를 관련전문가와 이 공원의 의미와 가치를 바르게 살리고자 하는 도민과 기타 뜻있는 인사들로 구성될 재단법인에서 운영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는 돌문화공원 훼손 등 작금의 사태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생각”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들은 돌문화공원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제주도의회에 제출할 탄원서까지 모으고 있다. 제주도의회 역시 행정 주도의 돌문화공원 관리가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지적하는 상황. 때문에 ‘수치’를 앞세우는 구시대적인 판단 기준 대신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가장 제주도적인 문화공원’이라는 돌문화공원의 기본 방향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들이 사실상 공원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재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도민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사업 기간 내내 가장 제주도적인 문화공원을 조성하는데 역할과 책임을 다한다는 전제조건하에 이뤄지는 것이며, 이것은 민·관의 힘을 합쳐 우리 세대의 하나의 기념물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순수한 향토 종합문화사업으로 발전해 나가는데 그 목적이 있다.”

- 1999년 1월 19일 신철주 북제주군수, 백운철 탐라목석원 대표 간 제주종합문화공원조성사업(현 제주돌문화공원 사업) 협약서 가운데 일부

난잡하게 붙어있는 아크릴와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난잡하게 붙어있는 아크릴와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돌문화공원을 관통하는 콘크리트 도로 포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돌문화공원을 관통하는 콘크리트 도로 포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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