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46) 노의현, 대마와 대마초, 소동, 2021

출처=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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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하는 이 글의 시작을 ‘책을 소개한 사람’ 소개로 시작하려고 한다. 나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 이는 패션브랜드 쌈지 대표로 활동했던 천호균 대표이다. 그는 쌈지 대표를 접은 이후 ‘농사는 예술이다’라는 모토를 앞세우며 쌈지농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근년에 들어 그는 DMZ에서 대마 농사를 짓고 있다. DMZ는 금단의 땅이다. 남북의 분단과 군사적 대치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그곳에서 하필이면 금기의 식물 대마 농사를 짓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서 농사를 통해 예술적 소통을 모색하는 그의 지혜가 나타난다. 파주에 사는 그는 분단의 현장을 평화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의 의도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식물로 대마를 선택한 것이다. 

이 책을 지은 이의 생각도 바로 여기에 있다. 평생을 농림과 수산과 축산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온 저자는 조부 때부터 4대에 걸쳐 기독교 정신으로 대를 잇는 크리스천이다. 저자가 독실한 크리스천임을 밝힌 것은 청교도적인 순결주의를 앞세워 대마의 퇴폐적 이미지를 불식하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농대를 나온 그는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지도, 교육, 유통,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했고, 농업경제 대표, 한국협동조합발전연구소 토대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퇴임 후 그는 대마와 대마초에 관심을 가지고 그릇된 인식에 기반한 정보와 제도, 법제 등에 의해 ‘악의 풀’로 낙인 찍힌 대마의 의미와 가치를 복원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의 꿈은 우리나라와 전 지구에 걸쳐 대마가 다시 제 지위를 회복하는 데 있다. 

‘하늘이 내려준 기적의 선물일까, 저주받은 악마의 풀일까?’ 이 책은 자문자답한다. 저주를 내린 오해와 편견, 그것에 기반한 제도와 법제는 대마를 철저하게 악마의 풀로 규정하고 금기시했다. 30만 종에 달한다는 식물들 가운데 이처럼 악마화 한 이미지를 뒤집어쓴 식물도 드물다. 대마는 근대 이후의 역사에서 가장 크게 유명세를 탄 논란의 식물이다. 논란의 가장 큰 이유는 대마초 때문이다. 대마초는 중독성이 없음이 입증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이나 담배에 비해 가혹한 처벌을 내려 대마초를 피운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리곤 했으니, 사람들의 뇌리 속에 대마는 대마초의 나쁜 기억에 의해 덧씌워진 악마의 풀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대마가 ‘악의 풀’로 자리 잡은 데는 미국의 산업주의 영향이 크다. 석유 개발업자, 종이 생산업자, 석유와 석탄 기반의 화학 제품업자들은 지난 100년간 쌓아온 이들 이익집단과 정치인 관료 집단의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다. 석유와 석탄으로 일군 근대 산업주의는 대마라는 막강한 경쟁상대를 무력화 하기 위해 거친 흑색선전을 해댔고, 그 결과 대마를 1만 년간 인류와 함께 해온 역사를 뒤로 한 채 ‘악마의 풀’로 전락했다. 산업자본의 프로파간다는 상상을 초월한다.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어도 작금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기술의 실용성이 조정되곤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대마를 눌러야 이익을 보는 산업자본의 음모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난 시절의 오해와 편견, 음해의 사슬을 넘어 대마는 산업과 의료, 농업, 생태의 차원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대마에 덧씌워진 문화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대마 합법화 논의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프랑스와 중국 등 이미 대마를 합법화하여 대마 농사를 적극 장려하는 나라들은 대마 수출로 수익을 얻고 있다. 미국에서도 산업용 대마 합법화가 통과되었고, 일본에서도 의료용 대마 판매가 허용되었다. 2018년에 한국도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했다. 대마는 인류 문명과 함께 한 ‘천사의 풀’이다. 지난 1만 년 이상의 인류사와 함께 한 대마는 인류가 최초로 재배한 작물이다. 의약품과 각종 제품의 원재료로 쓰이고 있는 대마 활용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인류학과 식물학, 사회학 등 인문학적 관점에서 대마와 대마초를 재조명한다. 인류사에서 대마가 차지한 지위와 역할을 들여다본다. 대마의 식물한적 구조와 영양, 대마와 대마초의 차이 등을 체계적으로 밝힌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마 불법화 과정은 곧 대마를 짓밟아온 정치와 경제 주체들의 부조리였다. 한국에서도 대마 불법화 과정이 박정희 독재 정권의 체제 강화를 위한 수단이었음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대마초의 유해성이 술과 담배의 그것에 비해 크지 않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고, 대신 의료와 섬유, 건축 등 수많은 유익성이 강조되고 있는 마당에 대마 합법화 논의가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앞서 소개한 바, 천호균 대표의 DMZ 대마 농사는 생명평화라는 가치를 담은 생명평화 예술로 진화하고 있다.

저자는 대마를 인류를 구원할 식물로 규정한다. 대마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 5만여 가지에 달한다고 한다. 대마 종이를 이용하면 나무를 지킬 수 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도 대마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주장들의 배경에는 대마의 어마어마한 생장능력에 있다. 4월에 파종해서 8월에 수확하는 대마는 4개월 만에 4~5미터 높이로 자라나는 데, 그 생장력으로 대기 중에 떠다니는 기체상태의 탄소를 고체 상태로 포집하는 능력 때문에 지구온난화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유발한다. 기체 탄소를 고체 탄소로 붙잡아두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할 지구인으로서는 대마라는 천사의 선물을 악의 풀로 가둬두는 바보 같은 짓을 멈춰야 한다. 시들어가는 지구에 활력을 불어넣을 대마를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해방하여 다시금 인류의 벗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 책은 ‘지구와 환경, 인류를 위한 대마 사용설명서’를 자처하고 있다.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는 이들, 대마를 둘러싼 사회학, 인류학 등 인문학에 관심있는 이들, 미래산업과 농업문제에 관심있는 이들을 독자로 모시고 싶다는 출판사의 선전문구는 이 책의 목표를 뚜렷하게 알려준다. 1장에서 11장에 이르는 이 책의 소제목들로 문장을 이어보자면 이렇다. 하늘이 내린 기적의 식물, 대마는 인류의 정신문화와 함께 해왔다. 대마 식물지를 들여다보면 대마와 대마초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대마는 의약품으로서 유용하며, 영양가 있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또한 대마는 환경을 살리는 지구 파수꾼이다. 대마는 탐욕과 야합·권력과 음모에 의해 대마 불법화가 이뤄졌다. 향후 대마 합법화를 이뤄서 대마 관련 산업을 활성화 해야 한다. 

사실 대마라는 식물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대마를 사용하는 인류의 무지와 편견이 문제다. 하여 인간의 권리를 논하는 인권에 이어 동물권 논의와 실천이 거세게 일고 있는 데 이어 식물권을 주장하는 관점도 커지고 있다. 대마를 식물권 논의 차원에서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검은 황금의 시대가 가고 녹색 황금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저자의 서문은 화석 에너지의 시대가 가고 6차산업의 생태적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는 전 지구의 시대정신과 부합한다. 21세기는 과학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정신성의 시대를 이야기 하고 있는 신문명의 시대이다. 이제는 생명평화의 메신저인 대마를 해방하여 제국주의와 산업주의에 찌든 그릇된 지식으로 대마를 악의 풀로 묶어두는 전 지구적 오류의 사슬을 끊어낼 시점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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