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예술가 고길천이 기록한 강정 해군기지 투쟁사 ‘붉은 구럼비’…예술공간 이아 26일까지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깊이 참여하며 삶과 실천과 예술을 일치시키는 행동주의 예술을 보여온 고길천 작가의 강정 기록화 전시가 열린다. 비록 해군기지 건설 저항 과정에서 화가에겐 붓이나 다름 없는 오른손에 불쑥 마비가 찾아왔지만, 강정을 기록하고자 하는 열정은 왼손으로 붓을 들게 했다. 

오는 26일까지 제주시 예술공간이아(중앙로 14길 21) 전시실2에서 고길천의 강정 기록화 ‘붉은 구럼비’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10년에 걸쳐 작가가 기록한 작품이 전시되며, 해군기지 관련 강정마을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한 증언의 성격을 가진다. 

소개되는 작품은 해군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모습이 기록된 84점이다. 아크릴 물감, 오일바, 사진 콜라주 등 혼합재료를 사용한 대형 크기의 판넬 작품 11점과 종이 위에 목탄으로 그린 73점이 전시된다.

전시와 함께 발행되는 책자에는 84점의 작품이 수록됐으며, 구럼비 바위 폭파 전 강정마을에서 진행한 고길천의 그래피티 작업, 인터뷰 등 해군기지 반대 운동 관련 자료가 담겼다.

들꽃, 2019, charcoal on paper, 65.5×100cm. 2008년 여름,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해군기지 반대를 알리는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제주 내에서 5박 6일 간 진행되었고, 이는 이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으로 발전한다. ⓒ고길천
들꽃, 2019, charcoal on paper, 65.5×100cm. 2008년 여름,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해군기지 반대를 알리는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제주 내에서 5박 6일 간 진행되었고, 이는 이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으로 발전한다. ⓒ고길천
쇠사슬 투쟁, 2017, charcoal on paper, 71×100cm. 2011년 7~8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상 투쟁을 선언하고 그 중 일부는 온 몸에 쇠사슬을 두른 채 투쟁을 시작했다. ⓒ고길천
쇠사슬 투쟁, 2017, charcoal on paper, 71×100cm. 2011년 7~8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상 투쟁을 선언하고 그 중 일부는 온 몸에 쇠사슬을 두른 채 투쟁을 시작했다. ⓒ고길천

고 작가는 지난 2013년 8월, 강정평화대행진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동안 치료를 받기도 했다. 화가로서 자신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오른손은 이미 마비가 와버리기도 했지만, 병마를 이겨내고 고향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고난을 딛고 일어섰다. 

그는 치료와 재활훈련에 집중, 오른손 대신 왼손을 훈련하며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고길천은 작가의 글을 통해 “2007년 제주도 강정에 해군기지가 생긴다고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4.3항쟁과 평택이 생각났다. 그래서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마음을 두게 됐고, 그와 관련된 작품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나의 작품과 현실을 일체화하는 시각을 가지고 강정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강정마을에서 국가폭력을 목격했고 직접 경험했다. 당시 한국정부는 주민들을 육체적 존재가 지워진 추상적 존재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또 “국가와 연관된 하위기관에 의해 강정마을은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육체적 제재뿐만 아니라 재산권도 침탈당했다”며 “이번에 발표하는 기록화는 국가폭력과 그에 대한 항쟁의 기록”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강정마을에 대한 국가폭력을 기록한 나의 그림은 내가 경험했고 내가 알고 있는 현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국가폭력이 난무했다. 4.3을 기억하며 기록의 중요함을 알았기에 국가폭력에 대한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의 저항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 작가는 “예술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고 표현하고, 기록하는 일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나의 고향 제주도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제주도가 평화롭고 공동체가 살아있는 섬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행동주의 예술가 고길천 화백이 2일 자신의 강정 해군기지투쟁 기록화 앞에서 뇌졸중으로 불편해진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쥐고 포즈를 취했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평화투쟁 과정에서 오른손 마비가 왔던 고 화백은 오른손잡이라는 한계를 오직 강정을 기록하겠다는 열망으로 다시 왼손에 붓을 쥐어 작품을 그려내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제주의소리
행동주의 예술가 고길천 화백이 2일 자신의 강정 해군기지투쟁 기록화 앞에서 뇌졸중으로 불편해진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쥐고 포즈를 취했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평화투쟁 과정에서 오른손 마비가 왔던 고 화백은 오른손잡이라는 한계를 오직 강정을 기록하겠다는 열망으로 다시 왼손에 붓을 쥐어 작품을 그려내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제주의소리

 

겁박, 2017, charcoal on paper, 50×65.5cm. 해군 장교들은 토지 수용을 위해 수십명씩 몰려 다녔다. 주민들 소유의 땅을 포기하도록 폭언, 협박과 거짓 정보 전달이 난무했다. 결국 2010년 7월, 기지 건설 반대 측 주민의 토지를 모두 강제수용했다. ⓒ고길천
겁박, 2017, charcoal on paper, 50×65.5cm. 해군 장교들은 토지 수용을 위해 수십명씩 몰려 다녔다. 주민들 소유의 땅을 포기하도록 폭언, 협박과 거짓 정보 전달이 난무했다. 결국 2010년 7월, 기지 건설 반대 측 주민의 토지를 모두 강제수용했다. ⓒ고길천
폭파, 2016, charcoal on paper, 70×100cm. 2012년 3월 7일 대규모 공권력 투입으로 구럼비가 폭파되었다. 2011년 1월 20일 굴착기를 동원한 구럼비 파괴 공사를 시작한지 일년여 만이다. ⓒ고길천
폭파, 2016, charcoal on paper, 70×100cm. 2012년 3월 7일 대규모 공권력 투입으로 구럼비가 폭파되었다. 2011년 1월 20일 굴착기를 동원한 구럼비 파괴 공사를 시작한지 일년여 만이다. ⓒ고길천

제주4.3미술을 연구하는 김종길 미술평론가는 “고길천이 주목한 것은 강정 주민들은 물론, 구럼비 파괴와 해상 매립 공사를 저지하는 평화활동가에 대한 경찰의 불법적인 체포와 신체적 폭력”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기획한 박민희는 “고길천이 그린 국가폭력은 선명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 폭력은 익명의 추상이 아닌 생생한 표정을 가진 구체적 인물”이라며 “얼굴을 안다는 것은 곧 그만큼 가까운 거리를 뜻한다. 폭력이 얼굴이 이토록 생생한 건 현장에서 본 충격과 공포, 분노가 뇌리에 각인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같은 기간 아트스페이스·씨에서 개최되는 이진경 작가의 ‘먼 먼 산: 눈은 나리고’ 전시와 연계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4일 오후 4시에는 ‘행동주의 예술의 미학’을 주제로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되며, 6일 오후 4시에는 신짜꽃밴 특별공연 ‘생명을 노래하고 평화를 춤추다’가 마련된다. 같은 날 오후 6시 30분에는 두 번째 작가와의 대화 ‘역사화의 힘’이 진행된다.

1956년 제주에서 태어난 고길천 작가는 조선대학교 서양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판화를 전공했다. 1982년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제주와 서울, 일본, 미국 등 국내외 곳곳을 누비며 개인전도 열었다. 

2011년에는 한겨레신문이 선정하는 ‘주목받은 12인의 미술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2018년에는 김복진 미술연구소 ‘올해의 개인전 TOP 5’에 선정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기당미술관, 제주4.3평화공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미국 아트익스첸지 갤러리, 미국 센트럼아트 센타, 러시아 Novosibirsk art museum 등에서 소장 중이다. 

조작Ⅰ, 2017, charcoal on paper, 71×100cm. 김기현 전 사이버사령부 530단(심리전단) 부이사단은 군부대의&nbsp;<br>댓글을 통한 여론 조작을 증언했다.(2017년) 2009년 당시&nbsp;“우리 요원들이 (…) 일과 외 시간에 집에 가서 ‘자가 대응’을 합니다.” 밤새 온라인 작전을 하면 여론이 반전된다는 내용이었다. ⓒ고길천
조작Ⅰ, 2017, charcoal on paper, 71×100cm. 김기현 전 사이버사령부 530단(심리전단) 부이사단은 군부대의 
댓글을 통한 여론 조작을 증언했다.(2017년) 2009년 당시 “우리 요원들이 (…) 일과 외 시간에 집에 가서 ‘자가 대응’을 합니다.” 밤새 온라인 작전을 하면 여론이 반전된다는 내용이었다. ⓒ고길천
소주 한잔, 2020, charcoal and acrylic on panel, 140×112cm. 강정마을 주민들은 언론을 통해 해군기지 유치 관련 내용을 접했다. 소식을 들은 주민 한 명이 구럼비에서 낙담하고 있다. ⓒ고길천
소주 한잔, 2020, charcoal and acrylic on panel, 140×112cm. 강정마을 주민들은 언론을 통해 해군기지 유치 관련 내용을 접했다. 소식을 들은 주민 한 명이 구럼비에서 낙담하고 있다. ⓒ고길천
2007년 강정, 2019, acrylic on panel, 200×150cm. 2007년 8월 10일,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비민주적 방식으로&nbsp;<br>해군기지 유치를 공표한 윤태정 마을회장을 해임하고 강동균&nbsp;마을회장이 선출되었다. 8월 20일,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주민&nbsp;재투표를 실시, 총 유권자 1,200여명 중 725명이 참가했고&nbsp;680명(94%)이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투표했다.&nbsp;ⓒ고길천
2007년 강정, 2019, acrylic on panel, 200×150cm. 2007년 8월 10일,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비민주적 방식으로 
해군기지 유치를 공표한 윤태정 마을회장을 해임하고 강동균 마을회장이 선출되었다. 8월 20일,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주민 재투표를 실시, 총 유권자 1,200여명 중 725명이 참가했고 680명(94%)이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투표했다. ⓒ고길천
1948년 강정, 2019, acrylic on panel, 200x150cm. 4·3 당시 강정마을 일대 군경에 의한 희생자 수는 강정 2구였던&nbsp;<br>용흥동 지역을 포함해서 남자 136명, 여자 38명 이었다. “특히 4·3을&nbsp;경험한 노인들이 침묵해요. 평생을 강정에서 살아온 분들이 4·3의&nbsp;기억 때문에… 저는 이게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노인들을 이용해&nbsp;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해군의 행패에 화가 납니다.”- 강정 마을 주민(2011). ⓒ고길천
1948년 강정, 2019, acrylic on panel, 200x150cm. 4·3 당시 강정마을 일대 군경에 의한 희생자 수는 강정 2구였던 
용흥동 지역을 포함해서 남자 136명, 여자 38명 이었다. “특히 4·3을 경험한 노인들이 침묵해요. 평생을 강정에서 살아온 분들이 4·3의 기억 때문에… 저는 이게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노인들을 이용해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해군의 행패에 화가 납니다.”- 강정 마을 주민(2011). ⓒ고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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