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게시글, 인권침해 소지’ 컨설팅 논란
사내 기구인 인권경영위원회는 패싱, 왜?
당초 과업엔 인권침해 게시 글 10건 이내 분석 주문

제주문화예술재단(문예재단)이 추진하는 용역을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실명으로 운영되는 온라인 업무 게시판 게시글이 인권침해인지 여부를 따지기 위해 경영 컨설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문화예술재단(문예재단)이 추진하는 용역을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실명으로 운영되는 온라인 업무 게시판 게시글이 인권침해인지 여부를 따지기 위해 경영 컨설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문화예술재단(문예재단)이 추진하는 '낯선' 용역을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실명으로 운영되는 온라인 업무 게시판의 게시글에 대해, 인권침해 여부를 따져보기 위한 경영 컨설팅을 추진한다는 용역 때문이다. 

유례없는 내용의 이번 용역을 두고 재단 안팎에서는 석연치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실명을 달고 허심탄회하게 직원들 누구라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업무 전용 게시판에서 대체 어떤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일까? 무엇보다 이미 재단 내에 사내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권경영위원회’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인권침해 여부를 따지기 위한 외부 용역부터 실시하기로 한 결정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 사내 실명 온라인 게시판 인권침해 있었나?

문예재단은 지난 8일 ‘2022 제주문화예술재단 인권영향평가 용역’이란 제목의 입찰 건을 기관 누리집에 게시했다. 금액은 2145만원. 용역 기간은 계약일로부터 10월 31일까지다. 용역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문예재단의 인권영향평가, 두 번째는 ‘게시판 운영에 대한 인권경영컨설팅’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 내용인 인권영향평가는 문예재단 규정에서 명시한 비정기적인 평가 과정이다. 

문제는 두 번째, 문예재단은 용역 과업지시서에 ‘게시판 게시글이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인권침해 소지없이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인권경영컨설팅’이라고 설명했다. 용역 과업지시서 안에서 명시한 ‘게시판’은 문예재단의 전자결제시스템 그룹웨어 안에서 운영하는 내부 게시판을 의미한다. 게시판은 업무 내용을 공유하는 용도로 쓰이며, 직원 실명으로 게시글을 올린다. 과업지시서는 업무용 온라인 실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이해관계자에게 인권침해인지 아닌지 컨설팅 용역으로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해당 용역을 추진하는 재단 경영기획실의 업무 책임자 A씨는 용역 추진 이유에 대해 “최근 노사협의회에 안건 하나가 상정됐다. 안건 내용은 과업지시서에서 명시한대로 ‘게시판 게시글이 이해관계자에게 인권침해 소지 없이 운영되는지 인권 경영 전문 기관에 컨설팅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노사협의회 안건은 재단 직원이 익명으로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인권 관련 담당부서인 경영기획실은 컨설팅 요청에 동의했고, 노사협의회에서도 안건이 통과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멀쩡한 인권경영위원회는 왜 패싱?

표면 상 용역 추진 절차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먼저 문예재단 내 인권경영위원회를 ‘패싱’한 용역 추진 과정이다. 문예재단 인권경영위원회는 인권 경영과 관련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위원회가 지닌 심의·의결 권한 가운데는 ▲인권의 개선을 위한 권고에 관한 사항 ▲인권실태조사의 실시에 관한 사항 ▲인권침해사건의 심의 및 결정에 관한 사항 등이 포함돼 있다. 공정성을 담보하고자 문예재단 내부 위원과 외부 위원을 포함하도록 규정한다.

뿐만 아니라 신고부터 조사·처리까지 인권 구제 절차 과정도 규정에 따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절차를 밟지 않고 곧바로 게시글의 인권침해 문제를 외부에서 판단해달라며 노사협의회에 요청한 것이다.

인권경영위원회에서는 게시판 게시글 문제를 왜 다루지 않았는지 묻는 질문에 경영기획실 A씨는 “안건 자체가 게시글 인권침해 여부를 컨설팅으로 다뤄달라는 요청이었다”면서 “인권경영위원회에서 게시글 문제를 다룬 적은 없다”고 명확한 답을 피했다.

사내 각종 인권문제를 다루기 위해 설치된 인권경영위원회에서 게시판 문제를 다룬 적이 없으므로 인권침해 문제여도 인권경영위가 다룰 수 없다는 것인지, 사내 게시판 게시글의 인권침해 문제는 인권경영위 소관이 아니라는 것인지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최초 과업지시서에 밝힌 게시판 관련 내용. 게시판 게시글 10건 이내 라는 구체적인 건수와 내용이 명시돼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최초 과업지시서에 밝힌 게시판 관련 내용. 게시판 게시글 10건 이내 라는 구체적인 건수와 내용이 명시돼 있다. ⓒ제주의소리
그러나 수정된 과업지시서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10건 이내'라는 내용이 빠지고 나머지 부분도 대폭 축소됐다. ⓒ제주의소리
그러나 수정된 과업지시서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10건 이내'라는 내용이 빠지고 나머지 부분도 대폭 축소됐다. ⓒ제주의소리

# 과업지시서에서 넣었다가 뺀 '10건'...왜?

석연치 않은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문예재단은 용역 과업지시서를 한 차례 수정해 등록했다. 처음 올린 용역 과업지시서는 “사내게시판에 게시된 사례들(10건 이내)이 인권침해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분석과 게시판 내 인권보호를 위하 운영 가이드라인(예 : 점검주기 등) 제시 내용이 담긴 보고서 1부 작성”이라고 과업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적었다. 그러나 새로운 과업지시서에는 자세한 내용은 빠졌다.

이에 대해 경영기획실 A씨는 “10건이라는 숫자는 입찰 기관이 과업량을 파악하기 위해 통상적인 과업량을 고려해 정했다. 특정 게시글을 미리 점찍은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건수나 ‘게시된 사례들’이라는 표현에서 볼 때, 특정 게시글을 이미 점찍었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내부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인권침해 여부를 따져본다면서 게시글을 미리 특정한 것이 아니라면, 인권침해 논란이 될만한 게시글이 10건 이상일 경우엔 과업지시서 과업 내용 주문이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결국 게시글을 10건 정도로 특정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해당 온라인 게시판은 직원들이 실명으로 업무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공간이다. 내부망이긴 하나 글쓴이의 신분이 직원 전체에게 분명하게 노출되는 환경이다. 인권경영위원회나 구제 절차도 회피할만큼 어떤 중대한 인권침해 내용을 게시판에 올릴 수 있을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매 분기마다 열리는 노사협의회에서 직원 건의가 보통 10여개 씩 올라오는데, 자주 등장하는 중요 건의들을 제치고 '게시글 인권침해' 건은 재단이 유독 빠르게 대응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더해진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승택 전 이사장 재임 당시 각종 경영상의 내부 문제들이 게시판을 통해 제기된 점을 고려할 때, 신임 이사장 임명 시기에 맞춰 게시판 내 지적에 부담을 가진 일부 구성원이 무리한 용역을 추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영기획실 A씨는 “너무 기가 막힌 주장이라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면서 컨설팅 요청자가 사내 게시판에서 어떤 유형의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답해줄 수 없다”고 잘랐다.

창립 20년이 지났지만 고질적인 내부 갈등, 낙하산 이사장 임명, 직장 내 괴롭힘, 성문제, 시대역행적 공무원 파견 논란 등으로 갈수록 발전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제는 직원 게시판 게시글의 인권침해 여부를 용역으로 따져보겠다는 이례적인 상황까지 벌어지면서 또다른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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