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광복절 특사 제외…‘갈등 치유’ 외면 유감

대통령의 언행은 하나하나가 모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아무 생각없이 내뱉거나 행동하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더구나 대통령 주변엔 두터운 참모진이 포진해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단행한 광복절 특별사면에는 어떤 메시지가 들어 있을까.

윤 대통령 스스로 밝혔다. 이번 사면은 무엇보다 민생과 경제회복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하지만 특정 경제인 사면을 ‘경제위기 극복 기회 제공’으로 포장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사실, 근거가 부족했다. 재벌 총수는 뭘해도 용서가 된다는 또 하나의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제로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려 상습 원정도박을 한 경제인 사면은 실소를 자아낸다. 

정치인이 전면 배제된데 대해선 반응이 엇갈린다. 국정 지지율이 바닥권인 상황에서 정치적인 부담이 컸을 것이다. 

재벌 총수에 가려 별로 부각되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사 관계자들에 대한 사면이 눈에 들어왔다. 정부는 ‘노사 통합’을 이유로 내세웠다. “집단적 갈등 상황 극복”이라는 법무부의 설명도 따랐다. 

노사 관계자 사면에 시선이 쏠린 것은 제주 강정마을 때문이다. ‘노사’ 혹은 ‘집단적’ 한 단어만 ‘주민’으로 바꾸면 딱 들어맞는 갈등의 현장, 통합이 절실한 현장, 제주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바로 강정이다. 

올해 광복절 특사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외됐다. 여전히 212명은 ‘전과자’ 딱지를 떼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월5일 강정을 찾았을 때 주민들에게 한 발언과 맞물려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올해 광복절 특사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외됐다. 여전히 212명은 ‘전과자’ 딱지를 떼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월5일 강정을 찾았을 때 주민들에게 한 발언과 맞물려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다 사법처리된 주민 253명 가운데 사면·복권된 인원은 41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212명은 ‘전과자’ 딱지를 떼지 못했다. 제주도가 2014년부터 40차례나 특별사면을 건의했지만 결과적으로 허사가 되었다. 올들어서도 오영훈 지사(7월18일), 제주도의회(7월29일)가 잇따라 8·15특사를 요청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만시지탄이 없을 리 없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당국의 인권 침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 문재인 정부 때 말끔히 해결했어야 했다. 호기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윤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강정을 찾아 ‘공동체 회복’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품게하는 메시지를 내지 않았던가. 당시 그는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사법 처리자에 대한 사면 등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표명한 바 있다. 또 강정마을 지역발전사업의 차질없는 진행을 제주지역 공약으로 제시했다. 

“강정마을이 우리나라의 통합과 치유의 현장이라는 출발점에서 깊이 고민하겠다” 2월5일 강정 현지에서의 윤 대통령 발언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강정 주민 사면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사안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서른세번이나 외친 ‘자유’와 함께 비중있게 언급한 또 하나의 보편적 가치 ‘인권’의 문제이다. 

254명, 이들이 정치인인가? 이번에 면죄부를 받은 ‘횡령-도박’ 사범을 능가(?)하는 못된 범죄라도 저질렀단 말인가. 

“제주해군기지 건설지역을 강정마을 해안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배제되고 절차 위반이 있었다”

“해군기지 반대 측 주민과 활동가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

“극심한 찬반 양론으로 인하여 유구하게 지켜왔던 강정마을 공동체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양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9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을 들여다 본 뒤 내린 이같은 결정은 강정마을 주민들이 구제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웅변해주고 있다. 정부의 판단이 그때그때 달라져서는 안된다. 

거듭 대통령의 메시지를 떠올려본다. 이번에는 광복절 경축사다.

올해 일본에 대한 과거사 사죄 요구는 없었다. 윤 대통령은 대신 ‘이웃’을 언급했다. 같은날 일본 각료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공물 대금을 봉납했다. 

이튿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일본 입장에서는 멈출 수 없는 관습’이라고 말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일본은 과거와 다름없이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는데도 우리 정부는 관계 개선을 ‘구애’하는 낯선 풍경이 펼쳐진 셈이다. 

여러 언론매체가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고 의미를 부여한 경축사를 통해 윤 대통령은 어떤 메시지를 드러내고 싶었던 걸까. 

다시 특사 얘기다. 

“강자에게만 관대한 법치주의는 헌법과 제주도민들에 대한 모독이다”

광복절 특사 직후 정의당 제주도당이 발표한 논평은,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 사회 약자들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이게 몹시 씁쓸하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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