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일지] 범행에서 판결까지…조직폭력배, 3000만원 받고 검사 출신 변호사 살인

제주의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인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공범에게 살인죄가 적용돼 징역 12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1심 ‘무죄’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하지만, 사건 당시 3000만원이란 거액을 주고받으며 이승용 변호사를 손봐 달라고 한 윗선이 누구인지, 또 이를 둘러싸고 제기됐던 제주도지사 선거 캠프 연루설 등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미궁이다.

1999년 11월5일 오전 6시48분쯤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인근에 세워진 쏘나타 차량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 주변에는 혈흔이 가득했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남성은 제주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해 서울지방검찰청과 부산지검에서 검사생활을 하다 고향 제주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던 이승용 변호사로 확인됐다. 당시 이 변호사의 나이는 44세였다. 

경찰은 1999년 11월6일 중앙지구대에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수사본부는 7개팀에 형사 40여명으로 구성됐다. 

경찰은 이 변호사가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스스로 차량에 올라 운전대를 잡은 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했다. 

부검 결과 이 변호사는 예리한 흉기에 복부 등 신체 6곳이 찔렸고, 가슴을 관통해 심장을 직접 겨냥한 자상도 발견됐다. 

경찰은 이 변호사의 가족은 물론 당시 제주에서 활동하던 유명 조직폭력배 ‘유탁파’와 ‘산지파’ 등을 수사대상에 올렸지만,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또한 이 변호사의 살인 도구로 쓰여던 흉기도 발견하지 못했다. 

1999년 11월10일 경찰은 “이 변호사가 특별히 남의 원한 등을 살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원점 재수사를 언급했으나 범인을 잡지 못했다. 

당시 제주 사회에서는 호텔 지분 다툼, 조폭의 선거 개입 등 다양한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1년 가까이 지지부진하던 수사는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다 제주경찰은 2000년 이 변호사 살인사건 수사본부를 해체했다. 

경찰이 이 변호사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하면서 살인죄 공소시효인 2014년 11월5일 0시를 기해 만료, 이 변호사 살인사건은 제주에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겨지는 듯 했다.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의 반전은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졌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2020년 6월27일 ‘나는 살인교사범이다-제주 이 변호사 살인사건’ 방송을 통해 22년 전 사건을 조명했다. 

출연한 유탁파 전 조직원인 김모씨(56)는 자신이 이 변호사의 살인을 교사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유탁파 두목 백모씨의 지시로 ‘갈매기’라 불리는 조직원 손모씨가 이 변호사를 살해했다고 방송에서 인터뷰했다. 두목 백씨는 2008년, 손씨는 2014년에 각각 사망했다. 

제주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은 2020년 6월말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천명했고, 7월1일 김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입건, 수사를 개시했다.

수개월간 관련 옛 수사 기록과 추가 증언 등을 확보한 경찰은 2021년 4월 김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내렸다.  

2021년 6월23일 김씨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캄보디아 포이펫에서 차량을 이용해 프놈펜으로 이동하다 현지 경찰에 적발됐다. 김씨는 캄보디아에서 카지노 관련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정부는 8월5일 김씨 추방을 결정했고, 국내 송환 절차가 진행돼 8월1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에 입국했다. 입국한 김씨는 경찰에 붙잡혀 같은 날 제주에 왔다. 

경찰조사 과정에서 김씨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줄 알고 방송에 출연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김씨가 수십차례 출·입국했고, 형사처분을 피하기 위해 8개월 이상 해외에 체류한 것으로 봤다. 2015년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라 이 변호사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는 만료없이 폐지됐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한달 간 보강수사를 통해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고, 제주지검은 2021년 9월14일 김씨를 살인교사가 아닌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17일 김모씨에 대해 살인혐의는 무죄를 선고하고, 방송 제작진을 협박한 혐의만 인정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살인 유력 용의자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입증할만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 재판부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가 성명불상자로부터 3000만원을 받고 같은 조직폭력배인 손씨에게 손을 좀 봐달라고 지시했고, 손씨가 특별제작한 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진술했다. 

결정적인 단서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스스로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방송되지 않았지만 김씨는 인터뷰에서 이 변호사를 미행한 사실 및 이로써 알게 된 정보, 범행 현장 상황, 주범이 피해자를 칼로 찌른 부위, 사용된 흉기의 특징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경찰 수사에서 파악하지 못했던 사정에 관한 것들도 있었고, 대체로 수사결과와 부합하거나 모순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결국 항소심 판결로 23년 동안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던 故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일단락되게 됐다. 

그럼에도 김씨에게 3000만원을 건네며 이 변호사를 손봐 달라고 한 윗선이 누구인지,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미궁이다.

또한 1998년 제주도지사 선거 관련한 캠프 관련설 역시 파악할 수 없게 됐다.  

당시 피살 이전 이승용 변호사는 모 도지사 후보의 금품 선거 등에 대해 양심선언하겠다고 밝힌 도민을 돕고 있었다. 이후 양심선언 도민은 잠적했고, 이후 이승용 변호사 피살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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