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17) 용수리~저지리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용수리 새원탑. 사진=윤봉택
용수리 새원탑. 사진=윤봉택

제주올레는 삶의 쉼팡이다. 무거운 둑지를 억누르던 삶의 고단함도 제주올레 팡돌에 내려놓으면 무게감이 사라진다. 굳이 쉼표가 없어도, 느낌표가 없어도, 쉼과 느낌에 걸림이 없는 그 올레가 제주올레 13코스이다. 

이번 열일곱 번째로 연재하는 제주올레 13코스는 2009년 6월 27일 개장했다. 용수리 용수포구에서부터 용당리·두모리·조수리·낙천리·청수리·닥모루를 넘어 저지리 제주올레14코스 안내센터까지 15.9km, 40리가 넘는다.

용수리 바다는 대섬과 와도가 둘이 아닌 하나로 닻을 내리기에 더욱 아름답다. 용수포구·지삿개·와포·우두포·쉐머릿개·우포·벗개·군영개·군영포·지사포 등 많은 이름만큼이나 가슴 아픈 전설을 잉태한 용수포구는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포구를 새롭게 확장되다보니, 기존 포구는 안창이 되었지만, 엉덕동산에 팽나무 두 그루가 관광정이 되고,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어 버린 절부암은 대섬 물결로 당산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있어 그날을 기억하게 한다.

또한 용수포구에는 도내에서는 범섬과 이곳에서만 자생이 확인된 박달목서가 자라고 있다. 포구 서북쪽 도로변에는 ‘모살물’이 있고, 당시 개인재산을 털어 샘물을 정비한 고경생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이곳에서 남서 방향으로 가면, 해안가에 매조재기·새원탑이라 부르는 용수리방사탑 1호가 있다. 바다로부터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하여 원뿔형으로 세워졌다.

관광정. 사진=윤봉택
관광정. 사진=윤봉택

망부석 위 엉덕동산에는 1960년 10월 용수마을 신미생 갑장회에서 세운 관광정(觀光亭) 표석이 있다. 1960년대는 보릿고개 시대였는데, 당시 이 마을 90세 어르신 신미생들이 힘을 모아 관광정이라는 표석을 세웠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아마 관광정이라는 표석은 여기 말고는 전국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옹기종기 마을올레와 ‘주구동산, 매골동산’을 지나 한질을 건너면, 1942년에 세워진 효열탐라고씨의 정문이 있다. 열녀 고씨는 시부모 봉양은 물론 남편이 병을 얻어 위독하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살렸다고 전한다.

탐라고씨 정문. 사진=윤봉택
탐라고씨 정문. 사진=윤봉택

그리고 바로 위에 올레 순례자를 위한 작은 순례자의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1948년 6월 18일 고산에서 화순교회로 순회 예배 가다가 4.3 무장대에 잡혀 죽임을 당한 이도종 목사의 순교 정신을 기리고, 제주올레 13코스를 오가는 순례자를 위해 정필란 권사가 기증하여 2011년에 세워진 교회이다.

여기서 ‘돌도리, 왕지캐’ 지나면 바로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용수저수지이다. 3km 지점을 지나면, 지난날 이곳이 자왈지대였을 때, 숯을 구워 생산했다고 하여 ‘숯구메기’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용당마을에 속한다. 제주올레 화장실이 있는 삼거리에는 ‘선새비·선세비물’이라 부르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한라산이 크게 비추는 신비한 연못이다.

용수철새도래지. 사진=윤봉택
용수철새도래지. 사진=윤봉택
선세비물. 사진=윤봉택
선세비물. 사진=윤봉택

5km 지점을 지나가면 주변이 평지처럼 보이나 이곳 또한 자왈지대였었다. 아름드리 큰 소나무 일곱 그루가 있어 ‘일곱소낭밧·톨시웅’이라 부른다. ‘두못개’라 부르는 두모리 지역으로 좀 더 가면, ‘쪼른숲질’이 나온다.

9월 중순이 오면, 이곳에서 부터 올레 돌담에는 둥근잎 유흥초가 가슴 설레게 피어나는데, 조수리의 고목숲길을 지나 7km 지점 고사리숲길을 넘기면 아홉굿마을 낙천리이다.

샘이 좋은 불미마을 낙천리는 서사미, 서천미, 낙세미라 하다가 낙천리로 불렸다. 1660년경 불미를 위해 여산송씨가 두 아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불미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아홉 개의 연못을 이루는 ‘오빼미물’이 있는데, 수도가 공급되기 이전에는 조수·청수·저지·낙천리 등 4개 마을에서 공동식수로 사용되었다.

마을 중심 ‘저갈빌레’에는 ‘저갈물’이 있는데, 우마나 생활용수로 사용하면서 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 연못의 남북에 돌확을 만들어 놓았다. 이는 빨래로 인하여 물이 오염되는 방지하기 위해, 빨래 물을 미리 돌확에 채워 빨래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 돌확을 별도로 만들어 놓았던 것으로  선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최근까지도 이 돌확에서 감물 작업이 이뤄졌다.

향사터를 지나면 마을회관이 있고, 그 사이에 2011년 11월 복원된 잣질올레 입구에 중간 스탬프가 있다. 올레 따라 올라가면 ‘소록낭머들 오일영감한집’을 모시는 낙천리 본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멸실 되어 흔적만 있을 뿐이다. 그 머들에 낙천의자공원과 전망대가 있다. 호젓한 잣질을 따라 ‘웃구름물’ 방향으로 능선을 지나면 ‘물골’이 있고, 고븐데기 지나 ‘맹마구리왓’을 건너면, 한경면 중산간 4개 마을(조수, 낙천, 저지, 청수리)의 설촌지로 알려진 ‘용선달리’이다. 

낙천리 잣질. 사진=윤봉택
낙천리 잣질. 사진=윤봉택
용선달리. 사진=윤봉택
용선달리. 사진=윤봉택

1610년대 전주이씨 이몽빈 일가가 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설촌이 되었고, 이후 여러 성씨가 거주하면서 4개 마을로 형성되었는데, 좌수 김시권이가 기부한 돈으로 '구멍목이' 좌우 토지를 매입하여, 남북으로 여섯 개의 물통을 더 파서 못을 만들어 네 개는 식수, 두 개는 우마 급수용으로 사용하였다는 기념비가 있고, 주변에 용선달리본향당(하르방당) 팽나무 유적이 있다.

저지악으로 가는 뒷동산 지나 아리랑 올레를 따라가다 보면, 밭에서 채취한 돌을 일정한 너비로, 위의 밭 경사면까지는 겹으로 쌓다가, 평지에 닿으면 한 줄로 쌓아 마감한, 접담에 외도리 우쓴 돌담을 만난다.

이곳 뒷동산에서 일쳇동산까지는 한 능선으로 되어 있는데, ‘현장이동산’ 능선을 다 오르면, 저지오름 입구로 이어지는 내리막 올레이다. 

‘닥모루’ 입구를 지나 화장실 주차장 동쪽 직선거리 100m 지점에 저지리 닥멀본향 ‘허릿궁 할망당’이 있다. 신목은 팽나무이며, 당신은 서귀포 호근마을 정좌수의 일곱 자녀 중 말젯똘로서 ‘일뢰한집’이다.

저지리 닥멀본향당. 사진=윤봉택
저지리 닥멀본향당. 사진=윤봉택
닥모루 칠성단. 사진=윤봉택
닥모루 칠성단. 사진=윤봉택

‘닥모루’라고 부르는 저지오름은 과거에는 초가지붕을 덮는 새가 많이 생산되어 ‘새오름’이라고도 불렀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이 시작되면서 초가지붕이 사라지자, 오름에 나무를 심으면서 지금의 울창한 숲이 되었다.

오름 9부 능선 동쪽에는 1960년대 당시 학림사 승려가 세운 칠성단이 있는데, ‘궤’에 단을 만들어 칠성대라는 표석을 세워 놓았다. 오름올레 따라 능선을 내리면 ‘허리왓’ 지나 마을회관이 있고, 그 너머에 제주올레 13코스 종점 14코스 안내센터가 있다.

제주올레 13코스 종점. 사진=윤봉택
제주올레 13코스 종점. 사진=윤봉택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로 격주로 게재합니다. 


# 윤봉택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