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문화공원을 지킵시다 - 릴레이 기고] (3) 장광열 무용평론가

정체성에 걸맞지않는 각종 인위적 시설물 설치로 최근 비판 여론이 높아진 제주돌문화공원의 본래 조성 취지를 되돌아보게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기고를 릴레이로 싣습니다. [편집자 주]


북해의 테르스헬링(Terschelling)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배를 타야만 접근할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이곳에서 매해 6월에 열리는 우롤(Oerol) 페스티벌은 특정 장소에서의 공연(site specific performance)에 집중하는 예술축제이다. 섬 주민의 수가 5000여 명인데, 관객 수는 매년 증가 지금은 13만 장의 티켓이 판매되고 있으며, 어업과 농업에 이어 문화예술이 섬 경제의 세 번째 기둥이 되었다. 

축제의 컨셉트는 섬 전체가 무대라는 것이다. 섬 주변의 경관이 공연을 위한 자연적인 무대(site)로 활용된다. 자연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예술가들은 그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발표한다. 관객들은 섬 전역에서 벌어지는 무용 음악 등 다양한 공연을 보기위해 천천히 걸어서, 때로는 자전거를 이용해 이동한다.

우롤 축제에서는 사람들이 주변 환경에 의해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하는지, 사회 자연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탐구할 수 있다. 우롤 축제가 추구하는 것은 곧 인간과 자연의 대화이다. 

제주국제즉흥춤축제(Jeju International Improvisation Dance Festival)는 제주돌문화공원에서 매해 5월에 열린다. 돌문화공원이 갖고 있는 자연 생태계를 즉흥이란 예술 장르와 결합시킨 국제 무용예술 축제이다. 우롤 축제처럼 공원 전체가 무대가 되고 산재한 돌 하나하나가 예술가들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설문대할망신화와 스토리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자연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탐구하게 만든다.

매해 5월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열리는 제주국제즉흥춤축제. 그냥 바라만 보았던 돌의 형상이 예술과 만나면 새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사진=제주국제즉흥춤축제 제공
매해 5월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열리는 제주국제즉흥춤축제. 그냥 바라만 보았던 돌의 형상이 예술과 만나면 새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사진=제주국제즉흥춤축제 제공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은 대한민국 제주도가 세계 인류를 위해 선사한 자연 문화유산이다.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제주도의 다양한 돌들이 전시되어 있고, 자연휴양림을 포함한 100만 평 규모의, 제주의 모든 것을 담은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한마디로 제주도의 민속이나 역사 신화를 집대성해 놓은 곳이다.

제주국제즉흥춤축제는 7년 전 돌문화공원 조성의 주인공인 백운철 단장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이 희대의 문화유산을 더 많은 지구인들이 공유할 수는 없을까? 제주국제즉흥춤축제는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다. 돌문화공원에 ‘즉흥’이란 예술 콘텐츠를 결합시키는 작업은 냉동고에 보관된 문화유산을 해동시켜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다양하게 이를 공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즉흥은 창작 주체자의 무의식으로부터 이미지를 끌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용 창작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미 짜여 진 작품, 규격화된 공연 형식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몸짓은 자연 생태와 만나면 그 창의성이 무한대로 발화된다.

그 때문인지 즉흥을 매개로 하는 창작 작업을 하는 국내외 즉흥 아티스트들에게 제주돌문화공원은 이미 명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공연한 예술가들이 SNS에 남긴 사진과 영상 그리고 후기가 큰 역할을 했다. 축제에 참여하고 싶다는 예술가들이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공모에 응한 아티스트들 역시 만만치 않은 경쟁을 통해 선정된다.

아티스트들은 돌문화공원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연계된 신화와 스토리를 공부한 후 공연할 장소를 스스로 결정한다. 지난 7년 동안 같은 장소를 선택한 아티스트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들이 펼쳐낸 공연과 돌에 대한 해석은 저마다 달랐다. 한마디로 변화무쌍 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냥 바라만 보았던 돌의 형상들이 아티스트들의 즉흥 춤과 만나면서 새롭게 조망되었다. 관객들이 던진 “돌이 살아 춤춘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은 돌문화공원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즉흥춤을 출 때, 그건 무용수의 춤이 아니다. 돌이 춤추고, 자연이 춤추고, 제주신화의 중심인 설문대할망이 살아 함께  춤춘다. 제주돌문화공원은 그 자체로 예술가들과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영감과 예술적 감흥을 공유할 수 있는 천혜의 공간이다.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즉흥춤을 출 때, 그건 무용수의 춤이 아니다. 돌이 춤추고, 자연이 춤추고, 제주신화의 중심인 설문대할망이 살아 함께  춤춘다. 돌문화공원은 그 자체로 예술가들과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영감과 예술적 감흥을 공유할 수 있는 천혜의 공간이다. 사진=제주국제즉흥춤축제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즉흥춤을 출 때, 그건 무용수의 춤이 아니다. 돌이 춤추고, 자연이 춤추고, 제주신화의 중심인 설문대할망이 살아 함께  춤춘다. 돌문화공원은 그 자체로 예술가들과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영감과 예술적 감흥을 공유할 수 있는 천혜의 공간이다. 사진=제주국제즉흥춤축제

다음 공연 장소로 천천히 걸어가며 바라보는 돌문화공원의 풍광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발로 느껴지는 대지의 촉감, 시시각각 방향을 바꾸며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순도, 햇살이 조금 강하다고 느껴질 때 쯤 구름이 해를 가리고, 어느 새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날씨는 돌문화공원이 선사하는 또 다른 자연과의 만남이다. 

제주돌문화공원은 이제 더 많은 지구인들과 공유되어야 한다. 인공적인 것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자연은 훼손된다. 지금 이대로의 돌문화공원 구석구석을, 천천히 걸으며 음미하는 것 자체가 힐링을 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이 예술, 명상, 어둠 속 반딧불이, 밤하늘 아름다운 별과 만나면 이 천혜의 자연유산은 또 다른 가치를 창조한다.

제주돌문화공원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 공존을 담은 친환경적인 생태적 가치, 질 높은 예술작품을 통해 사회, 경제 등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예술적 가치, 공간과 자원을 활용한 관객 창출을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보고(寶庫)이다.

제주도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해녀문화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7대 자연경관에 선정된 곳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이미 오래전에  ‘문화예술의 섬’을 표방하기까지 했다. 제주도가 ‘국제도시’ ‘문화도시’를 넘어 ‘창조도시’로 자리매김하려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각기 다른 컨셉트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예술을 통한 국가와 지역의 이미지 고양은, 이미 선진 여러 나라의 21세기 중요한 정책의 하나이다. 지금이야말로 정부 단위의 효율적인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과시형의 요란한 문화정책 보다 고부가가치의 문화예술 정책에 눈을 돌려야 한다. 제주돌문화공원이 전 세계 더 많은 지구인들에게 창조적인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꽃 피워지길 기대한다.


# 장광열

무용평론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
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제주 대표
제주국제댄스포럼 운영위원
숙명여자대학교 무용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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