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곶자왈 보전 유지(遺志) 이어져야 / 윤용택 논설위원·제주대 교수

머지않은 시기에 제주곶자왈도립공원에 영원한 곶자왈 지킴이 고 송시태 박사(사진)의 상(像)과 기림비가 세워져 곶자왈 보전에 대한 고인의 유지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머지않은 시기에 제주곶자왈도립공원에 영원한 곶자왈 지킴이 고 송시태 박사(사진)의 상(像)과 기림비가 세워져 곶자왈 보전에 대한 고인의 유지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곶자왈 지킴이 송시태 박사(1961-2022)가 얼마 전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났다. 교육자이면서 지질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던 그가 학문적 완숙기에 접어든 시기에 세상을 떠난 것은 제주지역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올해 2월 33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이제부터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조사와 연구를 맘껏 할 수 있던 터라 그의 타계는 너무나 아쉽다. 더구나 비양도 현장조사가 화산지질 전문가였던 고인의 마지막 행적이어서 마음을 더욱 숙연케 한다.

곶자왈은 제주섬에서 반드시 보전해야 할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한 ‘곶자왈’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이가 바로 고 송시태 박사이다. 고인은 2000년 박사학위 논문 ‘제주도 암괴상 아아용암류의 분포 및 암질에 관한 연구’을 발표함으로써 곶자왈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시금석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는 그 이후 20여년 동안 곶자왈 연구를 이어가면서 곶자왈 보전운동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곶자왈’하면 ‘송시태 박사’를 연상한다. 그만큼 고인이 제주사회에 남긴 족적은 크다.

이참에 고인이 그토록 세상에 알리려 노력했던 곶자왈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살펴보자. ‘곶자왈’은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고인이 학술용어로 도입하면서 제주사회에 널리 회자되기 시작하였다. ‘곶자왈’은 ‘제주도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으로 숨골과 동굴이 많아서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머금으며, 토양은 거의 없지만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공기와 습기로 나무들이 잘 자라고 다른 지역에서 찾기 힘든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제주어로 ‘곶(곳, 고지)’은 ‘숲’, ‘산 밑의 숲이 우거진 곳’, ‘마을과 멀리 떨어진 잡목 따위가 우거진 들이나 산’을 의미하고, ‘자왈(자월)’이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어수선하게 된 곳’을 이른다. ‘곶’과 유사한 제주말로, 술, 숨풀, 숨벌 등이 있고, 한자로는 ‘수(藪)’로 표기하였다. 제주사람들은 ‘곶’에서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나무를 하고 숯을 구웠으며, 소와 말을 키웠고, 위난의 시기에는 피난과 은신처로 사용하였다.

제주사람들에게 ‘곶’은 울창한 숲이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쓰이는데 반하여 ‘자왈’은 농사를 짓지 못하는 황무지라는 의미에서 부정적으로 쓰였다. 제주어 사전에 따르면, ‘자왈’과 ‘곶자왈’은 거의 동의어이다. 그러다 보니 산업화로 재목이나 땔감이 필요 없고 소나 말을 키우지 않게 되자 곶자왈은 더 이상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개발의 광풍이 불면서 곶자왈이 대자본에게 헐값에 팔려나갈 때, 고 송시태 박사는 곶자왈의 숨은 가치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크고 작은 요철(凹凸) 지형의 용암 암괴지대인 곶자왈이 빗물을 흡수하는 통로가 되고, 암반과 퇴적층을 거치면서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곶자왈이 청정 지하수를 만드는 공장이라는 사실을 제주사회에 알린 것이다.

생전 (사)곶자왈사람들 초대 대표를 역임한 송시태(가운데) 대표가 2008년 곶자왈 개발의 가능성을 높이는 관리보전지역 보전지구 등급변경에 대한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곶자왈사람들의 활약으로 이 안건은 심의보류 됐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생전 (사)곶자왈사람들 초대 대표를 역임한 송시태(가운데) 대표가 2008년 곶자왈 개발의 가능성을 높이는 관리보전지역 보전지구 등급변경에 대한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곶자왈사람들의 활약으로 이 안건은 심의보류 됐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그리고 고인은 곶자왈이 ‘생명의 숲’임을 알리는 데도 앞장섰다. 세계 어디에나 용암지대와 용암숲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곶자왈은 제주섬의 특수한 지리와 지형의 산물이다. 고인은 여러 탐사대원과 함께 온대와 아열대의 점이지대에 위치한 제주섬의 곶자왈은 동일 구역에도 서로 다른 기온과 습도를 보이면서 매우 다양한 식생을 이룬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곶자왈은 생태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곶자왈에서 집과 배와 생활도구를 만들 재목과 숯을 구울 나무를 구하고, 약초와 산나물을 얻었다. 그리고 늘 가뭄과 비 피해를 안고 살아야 하는 제주섬에서 곶자왈은 그러한 재난에서 제외된 중요한 곳간이었다. 하지만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제주도민들에게 곶자왈은 버려진 땅이요, 쓸모없는 황무지로 인식되었다.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곶자왈은 잘린 나무에서 돋은 맹아들이 성장하여 원시림 못지않은 이차림이 되었고, 뭇 생명들이 서식하는 생명의 숲이 되었다.

곶자왈의 지질학적, 수문학적, 생태학적 가치들을 제대로 모르던 시기에 고인은 곶자왈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사단법인 곶자왈사람들’을 만들고 대표직을 역임하면서 곶자왈 보전운동을 펼쳐왔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개발로부터 곶자왈을 지켜내기 위해 곶자왈의 생태계 등급과 지하수 등급을 상향 조정을 주장하였고, 사유지 곶자왈을 정부에서 매입하여 공유화하도록 제언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인은 통합영향평가위원회, 지하수관리위원회, 환경정책위원회 등에 참여하면서 전문 식견을 제주도정에 제공하였다.

고 송시태 박사의 주업은 교육자였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중등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술연구로 학계에 기여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사회참여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충실하게 수행해내었다. 그러기에 고인은 향년 61세라는 짧은 삶을 살았지만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루기 힘든 많은 교육적, 학문적, 사회적 성과들을 이루었다. 이제 고인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 깊은 애도와 함께 두 손 모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기에 김정순 곶자왈사람들 대표가 추도사에서 말한 한 대목을 옮겨 본다.

‘곶자왈의 현실은 아직도 녹녹치 않습니다. 수많은 개발로 이미 3분의 1의 곶자왈이 사라졌고, 앞으로도 3분의 1의 곶자왈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곶자왈을 지키기 위해 바꿔가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곶자왈의 비밀을 밝혀내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람사르습지가 있는 동백동산에 인접한 선흘곶자왈에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이 최종 승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제주고사리삼을 비롯한 희귀동식물 서식지가 바람 앞에 등불이 되고 있다.

곶자왈은 개발 예정지가 아니라, 제주에서 가장 가치 있는 곳이다. 제주도정은 2012년 제주에서 열렸던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관계자들이 곶자왈은 신이 제주도민에게 준 보물(God jewel)이라 극찬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곶자왈이 파괴되면 제주의 청정 지하수가 사라지고, 희귀 동식물과 뭇 생명의 안식처도 사라지며, 제주섬의 미래도 그만큼 암울해질 것이다.

위기에 처한 곶자왈을 보면서 고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머지않은 시기에 제주곶자왈도립공원에 영원한 곶자왈 지킴이 고 송시태 박사의 상(像)과 기림비가 세워져 곶자왈 보전에 대한 고인의 유지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윤용택 논설위원·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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