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문화공원을 지킵시다 - 릴레이 기고] (4)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신화, 국제무대에 우뚝 서다 / 김반아 하버드대 철학박사

정체성에 걸맞지않는 각종 인위적 시설물 설치로 최근 비판 여론이 높아진 제주돌문화공원의 본래 조성 취지를 되돌아보게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기고를 릴레이로 싣습니다. [편집자 주]


아르노 르 브뤼스끄 박사(미술사)는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는 미술월간지 ‘눈’ 1992년 2월호에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생명이 돌 속에 불어 넣어졌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아래는 그의 글 ‘목석원, 나무와 돌의 정원’에서 추린 것이다. (번역: 김영숙 불문학박사) 

백운철은 그의 섬 제주의 역사와 문화유산보존에 온 열정을 바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방식으로 집단 기억 보존의 차원에서 그 내용을 무대화 하고 활성화하고 있다. … 신들린 사람이라고도 불리는 백운철의 저력은 제주의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이다. 이 전설 속의 모성애와 아들들의 절망감은 그가 세운 돌탑위에 얹힌 돌 얼굴들에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온 섬을 헤매어 찾은 돌 얼굴들을 목석원에 수집하는 것은 전설 속의 아들들의 비통한 영혼을 위로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바닷가에서 발견된 이 돌들은 수 백 년 동안 비, 바람, 파도에 씻겨 예술작품에 비길만한 기이한 형상들을 하고 있다. 이른 아침 목석원을 찾은 방문객은 드디어 평온을 찾은
이 돌얼굴들이 아침 안개 속에서 나누는 조용한 대화에 놀라게 된다.

아르노 르 브뤼스끄 박사(미술사)는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는 미술월간지 ‘눈(L^OEIL)’ 1992년 2월호에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생명이 돌 속에 불어 넣어졌다는 내용의 ‘목석원 ㅡ나무와 돌의 정원’ 특집 기사를 실은 바 있다. ⓒ김반아
아르노 르 브뤼스끄 박사(미술사)는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는 미술월간지 ‘눈(L^OEIL)’ 1992년 2월호에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생명이 돌 속에 불어 넣어졌다는 내용의 ‘목석원 ㅡ나무와 돌의 정원’ 특집 기사를 실은 바 있다. ⓒ김반아

  돌과 나무의 정원, 그리고 설문대할망

2001년 9월 프랑스 문화재관리국 연간지 ‘모뉴멘탈’에 탐라목석원이 세계적인 ‘현대정원’에 선정되었을 때 아르노 르 브뤼스끄는 두 번째 기고를 했다. 

예술가 백운철이 한국 남단 제주도에 일궈 놓은 정원, 그곳에서는 돌로 된 형상들이 설문대할망의 전설을 노래한다. 소복이 쌓인 눈, 그 청정한 고요 속에서 흰옷을 차려입은 돌들이 제주의 전설을 지키고 있다. 돌과 나무의 정원 목석원은 신화와 시적 서정을 바탕으로 섬의 기억을 노래한다. 아침이 밝아오면, 나이 모를 태고의 광물계 무리들이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를 그 오묘한 대화 속으로 이끌어간다. … 길들여지지 않는 섬 제주도는 여자, 바람, 돌이 많은 삼다도이다. 그중 첫 번째 것은 전통적으로 부계사회인 타 지역과 구분되는 모계 사회적 구성을 알려준다.

2001년 9월 프랑스 문화재관리국이 발간하는 연간지 ‘모뉴멘탈’에 현 제주돌문화공원의 전신이 되었던 탐라목석원이 세계적인 ‘현대정원’에 선정되었다. 당시 6페이지에 걸쳐 연재된 탐라목석원 특집기사. ⓒ김반아
2001년 9월 프랑스 문화재관리국이 발간하는 연간지 ‘모뉴멘탈’에 현 제주돌문화공원의 전신이 되었던 탐라목석원이 세계적인 ‘현대정원’에 선정되었다. 당시 6페이지에 걸쳐 연재된 탐라목석원 특집기사. ⓒ김반아

2002년 12월~2003년 1월호, 정원조경, 인테리어장식, 건축 관련 프랑스의 격월간지 <메종 프랑세즈>지에 아르노 르 브뤼스끄는 ‘목석원, 그 머나먼 섬의 정원’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의 글을 기고했다. 

이제 백운철은 ‘제주돌문화공원’이라는 더욱 원대한 계획을 총괄 기획하고 있다. 제주돌문화공원 역시 설문대할망 신화를 핵심 주제로 삼고 있다. 설문대할망의 몸을 상징하는 형태로 지표면과 동일하게 세워질 건축물 주변에는
오백 장군 아들들을 상징하는 오백개의 탑들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 백운철의 계속되는 여정은 ‘땅의 정신(향토정신)’을 영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 문화유산과 예술적 감성이 어떻게 서로 만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게 될 것이다.

2011년, 아르노 르 브뤼스끄의 추천으로 백운철은 프랑스 초형이상학회가 주는 최고상 <그랑지두이>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상장을 수여 받았다. 

2011년 제주돌문화공원 민관합동추진기획단장 백운철은 프랑스 초형이상학회가 주는 최고상 &lt;그랑지두이&gt;상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nbsp;ⓒ김반아
2011년 제주돌문화공원 민관합동추진기획단장 백운철은 프랑스 초형이상학회가 주는 최고상 <그랑지두이>상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반아

  돌문화공원의 기획 의도  

목석원과 돌문화공원의 설립 상황을 찬찬히 살펴보면 규모에서 뿐 아니라 만들어진 의도에서 차이를 볼 수 있다. 목석원에서는 예술가 백운철이 젊은 혈기로 40년간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신화를 주제로 돌과 나무 정원을 만들어 희귀한 전시를 하여 연 100만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그런데 어느 시기가 되자, 마치 하늘이 정해 놓은 기간이 끝난 듯, 각종 사건이 일어나면서 목석원은 경영이 어렵게 되어 문을 닫게 되었다. 설문대 할망과 일심 단결이 된 백운철은 모든 전시물을 제주도(당시 북제주군)에 무상 기부하는 조건으로 돌문화공원의 광활한 공간으로 옮기고 그때부터는 할망의 자태가 들어나 돌문화공원을 가득 채우는 것을 목표로 돌문화공원을 디자인 하는 것으로 진로를 바꿨다. 

아르노 르 브뤼스끄가 돌문화공원에서 영속적으로 이어가기를 바랬던 ‘땅의 정신(향토정신)’과 관련된 문화유산과 예술적 감성의 향연은 설문대할망 창조여신이 돌문화공원에서 대대적인 데뷰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여성의 몸을 본 따서 지하에 설계된 대형 설문대할망전시관은 이 사실을 대변해주고 있다.

ⓒ김반아
ⓒ김반아

  설문대할망 이야기의 인류사적 의미

인류학자 전경수 교수에 의하면 세상에는 창세신화를 갖고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은데, 설문대할망은 “창세와 모신 신앙의 내용을 겸비한 신화 중의 신화”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빛을 못보아 왔다.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빛을 못보게 방해 해 온 요소가 있다. 바로 ‘여성영웅의 출현을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역사인식의 반영’이었다. 그것은 우리 역사의 유교화 현상에서 유래했고, 한반도가 부계–부권 사회가 되면서 생긴 여성문화 말살의 실례이다. 

“인간사회의 시작이 사실상 모계사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확인한다면, 설문대할망이야기는 모계사회를 조명하는 이야기”이다.(전경수, 2010) 유교식 부계 문화 때문에 설문대할망은 오랫동안 조명을 받지 못하고 변두리에 내쳐 있었는데, 이제 돌아보면 이 사실은 다행한 일이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탐라가 다른 지역같이 철저히 유교화가 되지 않았고, 따라서 해녀를 중심으로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도 모성의 위대함에 대한 인식이 실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도민들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모계사회의 특성은 종족번식, 희생, 조화, 협조, 등, 인류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요소들이다. 

설문대할망 탑 앞에 서 있는 아홉 제관들. ⓒ김반아
설문대할망 탑 앞에 서 있는 아홉 제관들. ⓒ김반아
돌문화공원 풍경. ⓒ김반아
돌문화공원 풍경. ⓒ김반아
김반아 철학박사&nbsp;
김반아 철학박사 / 미국 하버드대 교육철학 박사

“설문대할망이 여성이며 창세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부계사회에서는 설문대할망신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이 말은 돌문화공원의 역할을 재조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돌문화공원은 이 시대가 요청하는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부권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설문대할망은 인류가 방향타를 돌리는 데 필요한 키를 제공한다. 

“설문대할망은 세계의 위대한 여성원형의 한국적인 모습이다.”
- 제레미테일러 박사(신학자, 꿈탐험가, 미국 개신교 목사)


#김반아(Vana Kim Hansen)

1964년 이화여고 졸업
1966년 브라질 쌍파울로 미술학교
1974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 동양학·철학 학사
1980년 미국 시카고대학, 철학 석사
1985년 미국 하버드대학, 교육철학 박사

생명모성연구소 소장
제주 설문대할망국제명상문화원 이사
2017년부터 한겨레온 ‘김반아의 생명모성과 한반도의 길’ 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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