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민의 보·받는 사람] (12) 제주도 고사리육개장 완전정복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필자의 기억을 소환해 전하는 편지 글입니다. 새하얀 편지봉투 앞면의 아래위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칸에 볼펜을 꾹꾹 눌러 누군가와 나의 이름을 써 넣던 ‘우리 시대의 편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공유하게 하는 코너입니다. 편지는 모바일 메신저나 인터넷 이메일로 소통하는 요즘엔 경험할 수 없는 공감의 통로입니다.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풀이 없어 밥풀을 이용해 편지봉투를 붙여본 적 있는 세대들에게 바치는 연서(戀書)이기도 합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그립습니다. / 편집자 


 효돈 마을 추석멩질 떡허는 날의 기억들...

멩질(명절) 떡 허는 날의 첫 시작은 우리 서귀포 효돈마을 하효 상사(하효리사무소) 옆에 기기방(정미소)에서 아침 일찍 쌀을 빻아 가루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걸로 떡을 했습니다. 우리 집은 주로 추석에는 조개 솔편(송편)을 하고, 설날에는 전기라고 부르는 빙떡을 했습니다. 설날에는 당연히 메밀가루를 빻아 빙떡을 했습니다. 제 기억 속 추석과 설날 멩질 준비의 다른 유일한 것이 바로 송편과 빙떡이었습니다. 가끔은 하얗게 눈처럼 곱게 빻은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편편하고 동그랗게 만들고 둘레를 별모양으로 뾰족하게 하여 기름에 구워내서 앞뒤로 설탕을 바르는 지름떡은 참 맛난 멩질떡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돼지고기, 소고기를 썰어 우영팥 둘레에 심어진 대나무를 잘라 뾰족하게 꼬챙이를 만들어 꿰어 적갈을 했습니다. 이 적갈 만큼은 대개가 남자가 하는 것이라 하여 아버지는 아침부터 혼자 분주했습니다. 가끔 방어나, 문어로도 적갈을 했지만 일상적이진 않았습니다. 

바짝 마른 솔라니(옥돔)에 참기름을 앞뒤로 살살 발라 숯불에 구울 때면 귀한 옥돔의 머리와 꼬리가 떨어져 나갈까 어머니는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포일이 보편화 되면서 그것을 옥돔 머리와 꼬리에 씌우면 온전한 형태 그대로 유지하여 얼마나 한 시름 놓았는지요.

탕시라고 부르던 야채들은 멩질 날 당일에 장만했습니다. 놈삐(무)를 채 썰어 데치고 한 뜸 식혀 소금 참깨가루를 넣어 살살 흔들어 간을 하고, 늙은 호박은 깍둑썰기하여 설컹설컹 삶은 다음, 참깨와 다진 쪽파를 뿌리고 참기름과 소금을 넣어 준비했습니다. 탕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고사리는 전날부터 약한 불에 여러 번 삶고, 헹구기를 반복하여 국간장에 살짝 조리듯이 볶아 마지막 참기름을 두르는 것으로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사실 나는 이 과정을 쉽게 쉽게 쓰고 있지만, 이 멩질 준비와 음식 장만하기는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신경 쓰이는 수고로운 것이었을까요. 

  올리 추석멩질엔 무신 갱 올렴수과?
 (올해 추석명절엔 무슨 제사국 올리십니까?)

사실 나는 군대 전역 이후부터 지금까지 명절 음식을 제가 다 합니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실명(失明)을 지난 편지에 알렸고, 누나들이 시집을 간 이후에는 멩질 준비는 자연스럽게 제 몫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직접 모든 음식을 만들어 식당을 운영했던 내력은 어느 날 갑자기 천재성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터득한 것이라면 너무 거창한 것인가요. 

우리 집 명절에는 떡을 추석에는 조개솔편이라던 송편을 설날에는 전기라고 부르던 빙떡을 하지만 다른 음식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도 가끔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갱이라고 부르는 국입니다. 육지에는 탕국이라고 하는, 제주에서는 그냥 국입니다. 
갱에 들어가는 재료는 주로 생선과 쇠고기입니다. 생선은 옥돔 같은 돔 종류를 넣고 오래 오래 푹 끓이다가 건져내어 살을 바르고, 뼈는 다시 넣어 푹 끓인 국물에 미역을 넣고 끓였습니다. 아버지는 멩질 갱고슴(명절 국거리)을 준비하기 위해, 명절이 다가오면 줄돔, 벵어돔을 낚아 갱을 올렸습니다.  

나는 한 번 시원한 맛이 좋아 생선에 무를 넣고 갱을 끓였다가 아버지에게 혼난 적이 있었습니다. 친척들은 다 맛있다고 하던데 아버지는 놈삐(무)를 넣으면 정성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말처럼 무를 넣고 끓이는 것이 한결 간단하긴 합니다. 아, 우리 아버지 보고 싶어집니다. 

소고기미역국도 갱으로 올립니다. 육지 사람들은 명절에 소고기미역국을 올린다 하니 생일상이냐고 의아해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장 귀한 음식재료를 정성을 다해 올리는 것이 생일상과 명절상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요. 제주의 힘든 시절 쇠고기 미역국은 가장 정성스러운 멩질 갱이었습니다. 소고기에 무를 넣은 소고기무국을 올렸다가 역시 아버지에게 혼났습니다. 아버지는 명절 갱의 재료로 무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로 만든 모든 음식은 다 좋아했지만요. 이 편지 읽는 여러분들은 올리 추석 멩질엔 무신 갱 올렴수과? (올해 추석 명절엔 무슨 국 올리세요?)

올해 봄에 고사리를 꺾어 삶고 말렸습니다. 사진=강충민.
올해 봄에 고사리를 꺾어 삶고 말렸습니다. 사진=강충민.

  올리 아버지 추석 멩질 상엔 고사리 육개장 올렴수다

올해 추석명절 준비는 예전 보다 음식준비를 조금씩 더 합니다. 몇 십 년 넘게 명절 상 올리던, 제가 아들로 되어 있는 아버지의 첫째부인인 큰 어머니에, 작년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절상도 같이 올리려고 합니다. 돌아가신 지 1년 안되면 명절 상 안 올린다 하는 이도 있었지만 진즉에 올리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49재에 탈상 한 것으로 했으니 이번이 아버지 탈상하고 처음 맞는 명절입니다. 

예전 명절준비처럼 새벽에 기기방에서 가루를 빻아오는 정성과 일일이 떡을 하는 수고로움까지는 못하지만 아버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으로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명절 갱으로 고사리육개장을 만들어 아버지 상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만든 음식을 참 좋아했습니다. 얼음물 넣어 살짝 반죽한 튀김옷을 입힌 바삭한 오징어튀김, 미더덕을 빼고 청양고추의 알싸함을 더한 살이 두툼한 아귀찜을 제가 만들면 참 좋아했습니다. 전화로 “아구찜 먹고정 허다. 탕수육 만들어지크냐?” 하면 나는 준비해서 가서 바로 만들어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늘 아무 듣는 사람 없는데도 크게 얘기했습니다. 

“우리 아덜은 못허는 거 어시 다 잘 햄쪄! 놈인 아덜 대여섯 개 라도 우리 아덜 호나보다 당치 못 헌다” (우리 아들은 못하는 것 없고 다 잘한다!. 다른 사람은 아들이 대여섯이라도, 우리 아들 하나보다 당췌 못한다.) 

아버지는 특히 몸국과 고사리육개장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고사리를 듬뿍 넣어 뼈 바른 살과 같은 식감으로 씹히는 고사리 육개장을 끓였을 때 아버지는 반응이 과했습니다. 

“야! 이거 엿날 영장밭이서 먹어난 맛이여.”(야 이거 옛날 장례식날 산소에서 먹었던 맛이네)

사실 나도 아버지 말처럼, 고사리육개장은 태흥리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산소에 묻을 때 그때 처음 맛본 음식입니다. 몸국이나 고사리 육개장은 큰 일 있을 때 돼지고기를 삶았던 진한 국물에 각각 모자반, 고사리를 넣고 끓여 먹었던 음식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몸국보다, 뼈에 남은 살점들을 다 털어내 다시 끓인 고사리 육개장이 훨씬 손이 많이 가고 뒤에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특히 털어낸 살점과 고사리가 같이 어우러져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은 거의 호불호 없는 음식입니다. 

고사리 육개장에는 돼지등뼈가 들어갑니다. 사진=강충민.
고사리 육개장에는 돼지등뼈가 들어갑니다. 사진=강충민.

고사리육개장의 재료는 간단합니다. 고사리와 돼지등뼈에 메밀가루가 주재료입니다.

제주의 들녘에 건강한 뿌리를 내려 싹을 올린 고사리를 꺾어 삶아 말린 고사리가 특히 중요합니다. 올해는 고사리를 많이 꺾지 못했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고, 생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올해 아버지 추석 상에 올릴 고사리는 충분했습니다. 이 고사리를 물에 불려 커피색처럼 우러나오는 물은 버립니다. 물에 불린 고사리를 삶아 또 거멓게 우러난 물은 버리고 푹 삶습니다. 식당에서 파는 고사리육개장의 고사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실처럼 된 경우도 있던데 그 정도로 삶아 버리면 털어낸 고기와 같이 씹히는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푹 삶되 짓이기지 않는 것, 중요합니다. 푹 삶은 고사리를 5센티미터 크기로 자릅니다. 고사리는 이렇게 준비합니다. 

고사리를 푹 삶습니다. 삶은 고사리는 먹기 좋게 썰어 넣습니다. 사진=강충민.
고사리를 푹 삶습니다. 삶은 고사리는 먹기 좋게 썰어 넣습니다. 사진=강충민.

돼지등뼈를 써야 합니다. 등뼈는 진한 육수를 내기도 좋고, 뼈 사이에 붙은 살점들을 털어내야 옛날 큰 일 때 먹었던 맛에 그나마 가까운 고사리 육개장이 됩니다. 등뼈는 찬물에 최소 두 시간은 담가둬 핏물을 뺍니다. 등뼈를 다시 찬물에 깨끗하게 행궈 등뼈가 잠길 정도로만 물을 붓고 한 번 후루룩 끓입니다. ‘후루룩’이라는 말은 팔팔 끓이기 전까지입니다. 후루룩 끓이고 다시 등뼈를 깨끗하게 씻어내어 새로 물을 받아 센 불로 팔팔 끓입니다. 이때 꼭 양파를 넣습니다. 두 시간 센 불, 한 시간 중불로 해서 끓인 다음 뚜껑을 덮어 30분 정도 둡니다. 

30분 지나면 등뼈를 건져 올릴 때 힘을 주지 않아도 슬며시 살점이 분리됩니다. 좀 더 진한 국물을 원하면 살점만 따로 건진 후, 뼈를 넣어 다시 끓여도 됩니다. 뼈는 고사리를 넣을 때는 당연히 없어야 합니다. 

돼지 등뼈는 푹 삶고 살과 뼈를 분리합니다. 사진=강충민.
돼지 등뼈는 푹 삶고 살과 뼈를 분리합니다. 사진=강충민.

이제 준비한 고사리를 등뼈 삶았던 육수에 넣고 10분 정도 끓입니다. 아주 센 불로요. 팔팔 끓을 때 등뼈에서 발라둔 살점을 같이 넣습니다. 다진 마늘을 넣습니다. 일자로 썬 대파도 듬뿍 넣습니다. 이때 간을 하는데 꼭 국간장으로 해야 합니다. 액젓을 같이 넣으면 감칠맛이 살아납니다. 

이렇게 간을 맞추고 불을 꼭 약불로 줄입니다. 고사리육개장의 마무리는 물에 갠 메밀가루입니다. 센불로 하면 메밀가루가 눌어붙어 공들인 음식 다 버릴 수 있습니다. 메밀가루를 걸죽하게 물에 개어서 약불로 줄인 그것에 빙 둘러 천천히 젓습니다. 메밀가루는 너무 많이 넣지 말아야 합니다. 메밀가루를 너무 많이 넣으면 고사리와 털어낸 고기의 양이 많지 않아도 걸쭉한 느낌을 낼 수 있는데, 그런 고사리육개장을 접하면 많이 아쉽습니다. 

고사리 육개장의 맛을 한층 살려주는 세 가지 양념은 참깨, 고춧가루, 후춧가루입니다. 세 가지를 동일한 비율로 섞어 위에 올려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잘게 썬 쪽파를 고명처럼 같이 올립니다. 이렇게 제주도 고사리 육개장이 완성됩니다. 

이번 추석 명절 아버지 차례상에는 고사리 육개장 올립니다. 사진=강충민.
이번 추석 명절 아버지 차례상에는 고사리 육개장 올립니다. 사진=강충민.

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추석 명절입니다. 올리 아버지 추석 멩질 상에는 고사리 육개장 올렴수다.(올해 아버지 추석명절 상에는 고사리 육개장 올립니다.) 소고기미역국을 차례 상에 올린 걸 생일상이냐, 한 것처럼, 어쩌면 고사리육개장을 명절 상에 올린다고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만 저는 이른 새벽 우리 효돈마을 하효 기기방에서 가루를 빻아 떡을 한 것에는 못 미쳐도, 아버지에게 제 정성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가장 아버지를 생각하는 제 마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여러분들 이번 추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2년 9월 

강충민 올림


# 강충민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글쓰고, 요리하고, 운동하고, 사회 보는 걸 좋아합니다.
제주의소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써왔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강사, 여행사팀장, 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좋아하는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은 한라초등학교 인근에서 독서논술교실을 하며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제주참여환경연대( jejungo.net )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강충민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강충민시민기자 블로그 가기 ⇒ http://blog.naver.com/som0189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