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47) 故 배두봉 씨 등 4.3 재심사건 피고인 6명 전원 무죄

항일 운동에 앞장섰던 배두봉 선생의 생전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항일 운동에 앞장섰던 배두봉 선생의 생전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75세의 노인이 자식으로서 마지막 소원이라며 법정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독립유공자인 아버지가 4.3광풍에 휩쓸려 억울하게 처벌 받은 명예를 반드시 회복시켜달라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제주지방법원 형사4-1부와 형사4-2부는 13일 오후 2시부터 4.3 유족들이 청구한 6개의 재심사건을 잇따라 심리해 피고인 총 6명 전원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4.3 광풍에 휩쓸린 피해자 6명은 1948년 무장대에 식량을 제공하거나 남로당에 군자금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처벌을 받은 억울한 피해자들이다. 

명예가 회복된 6명에는 독립유공자 배두봉(裵斗奉 , 1914~1948, 호적명 배창아(裵昌兒)) 선생이 포함됐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소규모 무역을 했던 배두봉 선생은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까지 할줄 알았던 당대의 지식인이다. 

귀국후 1933년 8월 고향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서 야학을 만들었고, 수십명의 학생들에게 일본의 식민지 수탈 실상과 독립의 필요성을 가르친 인물이다.

항일의식에 고취된 학생들과 1935년 5월5일 어린이날 이른바 ‘하귀야학회 사건’이라는 항일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935년 5월5일 하귀야학회사건이 보도된 옛 동아일보 신문 기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935년 5월5일 하귀야학회사건이 보도된 옛 동아일보 신문 기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후 제주4.3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월1일 관덕정에서 벌어진 경찰의 발포 사건 당시에도 배두봉 선생은 경찰을 향해 격렬히 항의하던 군중에 속해 있었고, 이 때문에 포고 제2호와 법령 19호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8월에 처해져 옥고를 치렀다. 

1948년 11월 출소했지만, 중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진행하던 9연대는 그해 12월 배두봉 선생을 포함한 지식인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해 총살했다. 소위 ‘박성내 말방앗간 총살사건’의 피해자 중 한사람이 바로 배두봉 선생이며, 가족들은 그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배두봉 선생의 후손들은 독립유공자로 인정해달라고 1994년과 1998년, 다시 2007년에 신청했지만, 4.3과 연관됐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됐다. 

2019년 4번째 신청 끝에 정부가 제74주년 광복절을 앞둬 배두봉 선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하면서 마침내 독립유공자로 인정됐다. 

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자 아들 배광흠(75)씨는 배두봉 선생을 ‘국립호국원’에 안장하려고 신청했지만, 4.3에 연관됐다는 이유로 빠른 심사 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3년 전 국가가 인정한 독립유공자임에도 또다시 4.3 연관을 이유로 아직까지 국립호국원에 안장되지 못한 기막힌 일이 다시 벌어진 것이다. 관련 규정 등에 따르면 형사재판을 받아 금고형 이상 처벌을 받은 사람은 국립호국원 안장 배제 대상이다.  

이날 재심 법정에 출석한 배씨는 “저는 (당시 너무 어려서) 아버지 얼굴도 기억 못한다. 어머니가 2009년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싶다. 독립유공자인 아버지를 호국원에 안장하고 싶다고 신청했는데, 4.3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할 필요가 있어 재심을 신청했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배씨는 “항일운동가인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자식으로서 마지막 소원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국립호국원에 안장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소원을 간절히 얘기했다. 

검찰은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고, 변호인도 무죄를 변호했다. 관련 기록을 검토한 재판부 역시 이날 6개 재심사건 6명 전원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가 인정한 독립유공자이고, 이날 4.3재심에서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판결받은 만큼 국립호국원 안장이 더이상 미뤄질 이유가 없게 됐다. 

다음은 특별재심, 유족 청구재심 명예회복 명단. 

2022년 3월29일
김정유, 고태명, 이경천, 정양추, 오성창, 홍만선, 강석주, 강병주, 강익수, 김경욱, 양치선, 김경종, 현태집, 김재은, 문성보, 문성언, 박남섭, 양계운, 양운종, 장진봉, 한신화, 양규석, 강상호, 강병식, 강동구, 고명옥, 고윤섭, 변병출, 박원길, 박갑돈, 이재인, 장임생, 한순재

2022년 5월31일
강승하, 김두창, 한창석, 이경원

2022년 6월14일
고창옥

2022년 6월21일
현봉집, 홍숙, 문재옥, 박경생, 양서학, 강상문, 이남구, 양석구, 김천종, 고우삼, 고한수, 강상휴, 김영문

2022년 6월21일 
현상순

2022년 8월30일
박원길(2022년 3월29일 명예회복 박원길과 동일인)

2022년 9월6일
김병두, 강일범

2022년 9월13일
오창운, 양부연, 김희중

2022년 9월13일
안의길, 배두봉(호적상 배창아), 김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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