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주인이다-제주 마을이야기] (11) 소길리 - 문화로 화합하는 주민들

마을의 자원과 가치를 주민들이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사업.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 제주 마을 곳곳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와 함께 주민 주도의 마을만들기를 통해 희망의 증거를 발견한 제주의 마을들을 살펴보는 연중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더 나은 제주의 미래를 향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 편집자
소길리 마을길을 걷다보면 돌담 사이사이에 고개를 내민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제주의소리
제주 애월읍 소길리 마을길을 걷다보면 낮은 돌담에 포근히 감싸 안기는 듯 내내 편안함을 준다. ⓒ제주의소리

제주 애월읍 중산간에 위치한 소길리(召吉里)는 주변보다 낮은 지형과 아기자기한 마을길 덕에 포근하게 감싸 안기는 듯한 편안함을 준다. 소길리 사람들의 심성이 대체로 어진 것도 그런 연유일까? 

원래 소길리의 마을 명칭은 ‘쉐질’이었다. 제주 전통 목축문화의 상징이자 국영목장인 10소장(所場) 중 제5소장 초입에 소길리가 위치해 있어 이 일대에 살았던 목자(牧者)들이 마소를 몰고 다니던 길, 즉 ‘소의 길’에서 유래해 제주어로 ‘쉐질’이라 했다. 

쉐질 주변에 형성된 소길리는 1870년 ‘소의 길’이란 지명이 속되다고 여겨 새로운 금덕(今德) 마을, 즉 신덕(新德)리로 개명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1880년과 1891년 사이에는 이웃 마을인 장전리와 같은 우물을 마시며 사이좋게 지내는 마을의 의미로 동정(同井)리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 ‘길조(吉兆)를 부른다(召)’라는 의미를 담아 지금의 마을 이름인 소길(召吉)리로 정착됐다. 

조용했던 이 마을은 2010년대 들어 유명인들의 거주지로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마을에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섰고 여행객들이 방문이 부쩍 늘었다. 전원적인 분위기를 찾아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도 늘어나 2013년 100세대였던 것이 지금은 400세대에 이르고, 인구도 8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 시기 본격적으로 시작된 공동체 활동들은 마을의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풋감 천연염색체험, 쉰다리 체험, 마을민박이자 소통센터 역할을 한 녹색체험관에 꾸준히 발걸음이 이어졌다. 주민들은 마을의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위해 지혜를 모았다. 지역 구석구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소규모 개별 여행으로 관광 패턴이 바뀌는 시대, 작은 마을 소길리에 지닌 소소한 매력들은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풋감 천연염색 체험은 소길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색있는 프로그램이다. ⓒ제주의소리
풋감 천연염색 체험은 소길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색있는 프로그램이다. ⓒ제주의소리

현재 조성 중인 주민화합 공간에는 새로운 변화 속에서 공동체를 지키고 싶은 주민들의 바람이 담겨있다. 4.3 당시 경찰 파견소였다가 주민들의 결혼식장으로, 청년들의 연극 상연 공간으로, 태권도 연습장으로, 비료 보관 장소로 사용되던 마을창고는 이제 소통과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재탄생한다.

전시회나 음악회, 플리마켓, 향토음식 체험장 등을 통해 마을 주민들이 안을 채워가게 된다. 지역 내 재능보유자와의 연계를 통해 예체능, 전통 문화 교육 등을 이어가는 프로그램도 계속된다.

주민들이 내부를 채울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이 마을의 소통과 화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마을의 기억을 담고 있는 이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마을의 역사와 맥락을 살펴볼 수 있게 할 계획인데, 내년 여름쯤 진행될 개소식에는 지역에 이주한 예술가들의 공연도 함께 열릴 예정이다.

소길리 마을 창고. 과거 공연장이자 잔치 공간으로 쓰이던 곳이다. 내년 이 곳은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제주의소리
소길리 마을 창고. 과거 공연장이자 잔치 공간으로 쓰이던 곳이다. 내년 이 곳은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제주의소리

이번 가을 문을 열 4.3길은 소길리가 지닌 다크투어리즘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주민들이 직접 해설을 맡아 이 지역이 지닌 아픔과 역사를 방문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게 된다.

작은 마을이었던 곳에 정착주민의 인구가 더 많아지고 각종 카페가 들어선 것은 오랜 기간 마을에 살던 주민들 입장에서는 낯선 변화였다. 이 때 주민들은 ‘이주민과 선주민이 화합하는 마을 공동체’를 비전으로 정하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화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

부현철 소길리장. ⓒ제주의소리
부현철 소길리장. ⓒ제주의소리

좁은 골목길로 이뤄진 마을의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사무소 주차장을 오픈하고, 선주민과 주민들이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접촉할 수 있는 만남들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리더들이 가장 땀을 흘리는 부분이다.

부현철 소길리장은 “주민들의 마음이 모아지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추진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며 “문화적으로 풍성한 마을이 돼서 젊은 사람도, 나이든 분들도 함께 즐기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소길리는?

소길리는 애월읍에 위치한 중산간마을로 높은 지대에 둘러쌓인 분지 지형에 위치해 있다. 감귤과 보리, 콩, 참깨 등의 밭작물이 많이 난다. 돌담 사이로 구불구불하고 아늑하게 이어진 마을길이 특징이다.

옛이름은 ‘쉐질’이다. 제주어로 ‘소의 길’이라는 뜻인데 조선시대 5소장 목장으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됐다.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우로리’인데 이 대신 좋은 뜻을 가진 명칭을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길조를 부르는 곳이란 의미를 담아 ‘소길(召吉)’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1948년 4.3으로 소개됐다가 재건된 마을이기도 하다. 

말굽형 분화구를 지닌 검은덕이 오름을 비롯해 마을이 형성될 때부터 이용되던 연못 거린못, 봉천수인 고드레물, 식수로 이용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윤남비물, 수령이 260년이 넘은 보호수 팽나무 등 특색있는 자연자원을 갖고 있다. 매해 포제를 지니는 포제단, 본향당인 당밧할망당, 4.3유적인 윤남비 마을터와 원동 마을터, 제주도에 유일하게 세워진 곡비인 곡반 제단비, 고려시대의 고분인 석관묘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공간들이 마을 곳곳에 있다.

녹색체험관은 소길리 마을에서 직접 운영하는 민박시설이다. 1층에 갤러리책방 섬타임즈가 위치해 있다. ⓒ제주의소리
녹색체험관은 소길리 마을에서 직접 운영하는 민박시설이다. 1층에 갤러리책방 섬타임즈가 위치해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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