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79) 본래 업무 포함 사회통념상 행위 모두 ‘업무’

사고에 대하여 업무상의 사유인지 여부는, 더 확대되어야 하지만, 보통의 사람이 생각하는 범위보다 크다. 사진=픽사베이
사고에 대하여 업무상의 사유인지 여부는, 더 확대되어야 하지만, 보통의 사람이 생각하는 범위보다 크다. 사진=픽사베이

 

얼마 전 이주 노동자의 상담 방문이 있었다. 도내 모 관광지에서 일을 하던  노동자로 자신의 업무인 공연을 연습하던 중에 팔꿈치에 부상을 입었다. 부상에 대해 정확히 진단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사업주는 그냥 며칠 쉬면 나을 거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하고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업무의 연장인 공연 연습 중에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으로 산재를 신청했는데 사업주가 산재로 인정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주는“업무 지시 하에 진행된 연습이 아니고, 본인이 원해서 추가 공연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 것이다. 공연시간에 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의견을 밝히고 있었다. 해당 사업주의 주장대로 구체적인 지시 없이 일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면, 노동자는 산업재해로 보상받지 못하는 걸까?

이와 비슷한 사례에 대하여 얼마 전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철강 가공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롤러기계를 작동시키던 중 손이 말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 일하던 중 다친 사고이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산업재해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왜 그랬을까?

사고가 난 기계는 A업체의 소유였지만, 재해 노동자는 B업체 소속이었다. B업체는 A업체에서 철강을 가공하면 그것을 다른 업체에 판매하기 위해 상차하여 납품을 했고, 재해노동자의 업무는 상하차와 입출고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고는 B업체 소속의 노동자가 사업주의 지시 없이 업무와 무관한 A업체의 롤러기계 사용법을 배워보려는 사적 행위 중에 발생한 것이니 업무 연관성이 없다며 불승인 했다. 해당 노동자는 이에 불복하여 근로복지공단에서 행한 요양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업무상 재해의 '업무'의 범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업무’의 범위를 어디까지 판단할 것인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예컨대 퇴근하면서 식자재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가 사고가 났다면 업무상의 사유에 해당될까? 회사 회식 중에 문에 손이 끼어 손가락을 다쳤다면 업무상의 사유에 해당될까? 이와 같은 많은 사례에 대한 업무의 범위에 대하여 법원에서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정리하고 있다.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해당 근로자의 본래의 업무행위 또는 그 업무의 준비행위 또는 정리행위,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것으로 인정되는 생리적 행위 또는 합리적·필요적 행위이거나, 사업주의 지시나 주최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사 또는 취업규칙, 단체협약 그 밖의 관행에 의해 개최되는 행사에 참가하는 행위라는 등 그 행위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이어야 한다(대법원 1999. 4. 9. 선고 99두189 판결).

요약하자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업무의 범위는 본래의 업무는 물론이고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것으로 인정(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고개가 끄덕일 정도)되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그 행위과정이 사업주의 지배. 관리 하에 이뤄진 것을 말한다. 

위 철강 가공공장의 사례의 경우는 최근 법원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결정적으로는 B업체의 사업주가 롤러기계를 구입하여 사업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근거로 작용했다. A업체와 B업체가 사실상 구분되지 않는 같은 공간을 작업장으로 활용하였고, 재해 노동자는 사업주의 계획 아래 장차 맡게 될지도 모르는 철강 가공 업무를 준비하던 중에 일어난 사고이기 때문에 업무수행을 벗어난 사적인 행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였다. 

일상생활 위해 경로 이탈한 출·퇴근 재해도 산업재해 포함

앞서 간단한 예시로 들었던 퇴근 시 식자재를 사기위해 마트에 들렀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산업재해에 해당된다. 2018년부터 출·퇴근 중 재해가 산업재해로 인정되고 있는데, 출·퇴근이라는 행위자체가 업무를 위해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출·퇴근시 통상적인 경로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만 산업재해로 인정되지만 경로를 이탈하여 마트에서 식자재를 구매하는 행위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서 출·퇴근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처음 사례로 들었던 이주노동자는 당연하게도 산업재해로 인정되어 요양을 받았다. 당연히 업무상 연관이 있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는 사업주가 부인한다고 해서 불승인 되지 않는다. 사업주의 구체적인 지시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매일 일어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장래에 진행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였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은 요양승인처분을 했고, 당사자는 법에 따라 보장을 받을 수 있었다. 

제주의 29만 노동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숫자만큼이나 그 노동의 과정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그간의 상담의 경험을 종합해 보면 사고에 대하여 업무상의 사유인지 여부는, 더 확대되어야 하지만, 보통의 사람이 생각하는 범위보다 크다. 만일, 사고가 발생했다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주변의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업무상의 사유인지 여부를 판단하여 재해 노동자를 보호했으면 한다.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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