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규의 film·筆·feel] (28) 홍초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


물 막은 섬-보목_2020 / ⓒ2022. 양동규
물 막은 섬-보목_2020 / ⓒ2022. 양동규

홍초(칸나)꽃이 피어 있다. 두껍게 겹쳐진 구름이 점점 거세지는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섬에서 떨어져 있는 섬은 붉게 물들어 간다. 한여름에 피었던 홍초도 절정을 넘겨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다. 파도는 쉼 없이 밀려와 깨지며 하얀 포말을 해안으로 올려 보내다가 이내 사라진다.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제주도 어촌 마을 포구의 풍경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초록 초록한 홍초 잎과 넝쿨과는 다른, 이미 말라 썩어가는 풀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누워있다. 홍초에 둘러싸여 있는 바위도 낯설다. 검게 내려앉아 있는 돌담과는 다르게 생채기가 남아있는 바위는 주변과 어우러지지 않는다. 어릴 적 가끔 파도를 보러 갔던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라 생각했는데 뭔가 다르다. 있을 법한 풍경이면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제주도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다.


# 양동규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20대에 흑백카메라를 들고 제주를 떠돌며 사진을 배우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골프장 개발문제, 해군기지 건설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접하며 그로 인해 변화되어가는 제주의 본질을 직시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섬의 하루」, 「잼다큐 강정-범섬에 부는 바람」 등을 연출, 제작했다. 개인전 「터」(2021), 「양동규 기획 초대전 섬, 썸」을 개최했고 작품집 「제주시점」(도서출판 각)을 출판했다. 제주민예총 회원으로 「4.3예술제」를 기획·진행했고 탐라미술인협회 회원으로 2012년부터 「4.3미술제」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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