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92) 물장사 해 나면 다른 일은 못 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물장시 : 물장사, 다방 마담이나 술집 주모를 빗대 이름
* 해 냐민 : 하고 나면
* 다른 거 : 다른 것, 다른 일

무작정 귀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책상 받고 앉아 펜대나 놀리던 사람이 밭갈이하기가 쉽겠는가 말이다. 마담이나 주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일을 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말이다. 사진=픽사베이
무작정 귀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책상 받고 앉아 펜대나 놀리던 사람이 밭갈이하기가 쉽겠는가 말이다. 마담이나 주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일을 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말이다. 사진=픽사베이

물장사 했던 사람은 다방 마담이나 술집 주모를 했던 사람이라 함이니 보통 여인을 가리킨다. 다방이나 술집에서 손님을 상대해 종사하는 일을 해온 사람이 어쩌다 일을 그만두게 됐을 때, 그런 여인은 농촌으로 돌아가 밭을 매거나 하지 못한다 함이다. 하던 일이 몸에 습관으로 배어 있어 갑자기 업종 변경이 어렵다는 얘기. 

차(茶)나 술을 팔던 사람이 손에 흙을 묻힐 수 있겠느냐는 다소 부정적인 눈길을 보내는 말이다. 될세 양반이라고 안된 사람, 실패한 사람에게 긍정의 눈길을 보내는 세상은 관대하지 못하다.

“물장시 허던 여자가 촌이 왕 농시허멍 살아지카(물장사 하던 여자가 시골에 와서 농사하면서 살겠는가)” 

비아냥 섞어 어투로 받아들이면 좋다. 사람의 습관은 오래지 않아 몸에 버릇이 돼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 하지 않는가. 자기 버릇 개 주나 하는 말이 바로 그걸 지적함이다. 

특히 다방업이나 술집 일을 하게 되면 손님을 상대해야 하므로, 화장해 몸을 단장하고 유행하는 좋은 옷으로 몸을 둘러야 하는 직업이다. 밭에 나가 김을 매는 일 따위와는 근본적으로 거리가 멀다. 

굶으면 굶었지 그런 일은 하지 못한다. 물장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사람이 그렇게 변해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이 사람을 만든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단 여자에 그치랴. 도시에서 회사에 다니거나 공무원 생활을 하다 실직해 어쩔 도리 없이 고향으로 돌아와 무위도식하는 남자들도 적지 않은 세상이다. 40~50세가 되면 직장 생활이 불안정한 게 현실이다. ‘사오정(4050이면 정년)’이란 말은 이미 옛말이 됐잖은가. 구조조정에 걸려 실업자가 되면 앞날이 그야말로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귀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책상 받고 앉아 펜대나 놀리던 사람이 밭갈이하기기 쉽겠는가 말이다. 마담이나 주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렵다.

귀촌하는 사람들 가운데 성공 사례도 많은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꼼꼼한 계획과 쉴 새 없는 실천이 따를 때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 하기에 달린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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