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계간 ‘시와 정신’으로 등단한 김정순 시인이 첫 시집 ‘늦은 저녁이면 어때’(메이킹북스)를 펴냈다.

출판사는 “시인은 첫 시집을 통해 태어남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온 오랜 이야기들을 마치 서사처럼 펼쳐 보인다”면서 “해방과 제주4․3 등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견디며 살아온 시인의 흔적들이 4부로 이뤄진 75편의 작품에 드러나 있다”고 소개했다.

가연(佳緣)
김정순

안개비가 내리는 날
젖은 산여뀌 풀무로 지폈다

질긴 쑥 줄기 헤치니 썩은 무
그루터기 조금 남아,

서릿발 같은 지친 호흡으로 살았다
야생의 삶은 결코 아니다
단지 오지 골에서 무양무양히 살아온
미욱한 시간이었다

삼나무 숲
뻐꾹새 울음, 부리에 물어
잠기는 무 줄기 당겨 괴웠다

어깨 위에 앉은 햇살
접순의 화아(花芽)가 
산여뀌보다 더 높이 오르는
연보라 무꽃

특히 “시인의 4․3 시들은 역사의 기록과 같은 무거움과 경건함을 갖게 만든다. 본인의 ‘제주 4.3’ 연작뿐만 아니라 다른 4.3과 관련된 작품들이 비유나 과장, 그리고 여타 문학적 상상력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에 함덕 백사장에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두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4․3 시편들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통해 완성됐는지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묵직한 삶의 흔적들을 펼쳐 보인 작품 속에서도 삶의 경쾌함은 잃지 않은 시편들도 눈길을 끈다”고 덧붙였다. 

책 해설을 작성한 정찬일 시인은 “폴 고갱이 그린 대작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앞에 선 것 같은 감정을 갖게 만든다”고 호평했다.

메이킹북스,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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