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주인이다-제주 마을이야기] (12) 행원리 – 유배길로 마을을 잇다

마을의 자원과 가치를 주민들이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사업.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 제주 마을 곳곳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와 함께 주민 주도의 마을만들기를 통해 희망의 증거를 발견한 제주의 마을들을 살펴보는 연중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더 나은 제주의 미래를 향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 편집자
제주 구좌읍 행원리 해안에는 풍력발전기와 해녀상, 해녀노래비가 서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 구좌읍 행원리 해안에는 풍력발전기와 해녀상, 해녀노래비가 서 있다. ⓒ제주의소리

[기사보강=29일 13:35]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해안도로를 내달리다보면 유독 바람이 거센 마을이 나타난다. 줄지어 있는 거대한 풍차 곁에는 해녀상과 노래비가 우뚝 서 있다. 

국내 최초로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된 곳이자 해녀노래의 발상지로 꼽히는 구좌읍 행원리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1호 해녀노래 예능보유자 故 안도인씨가 평생을 해녀로 지냈던 마을이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안을 따라서 쌓은 환해장성이 잘 보존돼 있으며, 연대봉 전망대에서는 아늑하고 소담한 마을의 풍광이 펼쳐진다. 해안가에는 화산분출의 흔적인 용암 언덕 투물러스가 독특한 지형을 자랑한다. 

행원의 옛 이름은 ‘어등개’다. 육지와 제주를 잇는 포구인 어등포가 발달돼 있었다. 조선 제15대 임금 광해군이 이 곳을 통해 제주 유배 당시 처음 제주섬에 발을 디뎠다. 최근 마을은 이 역사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행원리는 광해의 흔적을 좇는 광해유배길을 조성 중이다. 다음 달 진행되는 2022 세계유산축전의 마을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선보일 예정이다. 광해가 실제 이동했던 유배길을 따라 마을의 여러 자원들을 연결하고, 실제 당시 광해에게 대접했던 음식들을 모은 광해밥상, 전시체험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이 마을길을 따라 걸으며 마을의 지닌 다양한 분위기와 명소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조선의 제15대 왕 광해는 제주에서 숨을 거뒀다. 인조반정에 의해 폐위된 광해는 1637년 제주로 유배됐는데, 광해가 처음 제주 땅을 밟은 곳으로 추정되는 제주 어등포(지금의 구좌읍 행원리)에 기착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조선의 제15대 왕 광해는 제주에서 숨을 거뒀다. 인조반정에 의해 폐위된 광해는 1637년 제주로 유배됐는데, 광해가 처음 제주 땅을 밟은 곳으로 추정되는 제주 어등포(지금의 구좌읍 행원리)에 기착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행원리를 얘기할 때 마을을 정신적으로 단단히 묶는 교육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행원리 주민들은 1949년 사립 행원고등공민학교을 설립해 10여년간 운영하는 등 교육에 대한 애착은 마을에 깊게 뿌리내려있다. 2013년 설립된 마을 장학회는 올해도 구좌중앙초등학교 전교생을 비롯해 1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다른 지역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마을 출신들이 여기에 마음을 보태는데 이는 강한 향토의식을 잇는 끈이 된다. 

김승만 행원리장. ⓒ제주의소리
김승만 행원리장. ⓒ제주의소리

4.3의 아픈 역사를 지닌 행원리는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위령탑을 건립했는데 리민들이 자체적으로 건립한 것은 제주 최초로 알려져있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동시에 아픈 역사를 잊지말고 후손들에게 공유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김승만 행원리장은 “장학사업은 부메랑이라고 생각한다”며 “미래에 긍정적인 결실로 마을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장은 “주민들이 건강하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살기 좋은 마을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광해 임금의 기착지로서 연구와 실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행원리는?

구좌읍 행원리는 동쪽으로는 한동리, 서쪽으로는 월정리, 남쪽으로는 덕천리에 접해있는 해변마을이다. 농경지에서 선사시대 대표 유물인 토기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신석기시대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행원리의 옛 이름은 ‘어등개’. 천혜의 포구였으며 군사의 요새지 역할도 했다. 행원리에는 1637년 6월 6일 광해군의 유배선이 입항했고, 포구에서 하루를 보낸 후 제주성으로 이동했다.

해녀와 어부들의 수호신이 머무는 해신당인 남당,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공간인 포제청이 마을을 지키고 있고, 세계중요농업유산인 제주밭담이 잘 보존돼있다.

행원리는 반농반어의 마을로 소라와 톳 등 각종 해산물과 무, 당근, 쪽파, 마늘 등이 생산된다. 1997년부터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돼 2003년 가동이 시작됐고, 2009년에는 제주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가 조성됐다. 2012년부터는 행원풍력특성화 마을법인이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

연대봉에서 바라본 제주 구좌읍 행원리 마을 풍경. ⓒ제주의소리
연대봉에서 바라본 제주 구좌읍 행원리 마을 풍경. ⓒ제주의소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