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18) 2022년 개정 교육과정 논의에 부치는 글

제주 제2공항이 제주 사회와 언론에서는 늘 뜨거운 쟁점인데 학생들은 단편적인 내용만 접할 수밖에 없다. 결론을 내려서 입장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논쟁성을 유지하고 교사는 찬반 양측의 입장만 전달할 뿐 토론의 결론을 바꿀 수 있는 내용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 제2공항이 제주 사회와 언론에서는 늘 뜨거운 쟁점인데 학생들은 단편적인 내용만 접할 수밖에 없다. 결론을 내려서 입장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논쟁성을 유지하고 교사는 찬반 양측의 입장만 전달할 뿐 토론의 결론을 바꿀 수 있는 내용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매년 9월 24~25일은 '세계 기후정의를 위한 행동의 날'로 전세계 각지에서 기후행동이 진행된다. 한국에서도 지난 9월 24일 광화문광장에 350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2019년 5000여 명이 모인 후 코로나19로 모임이 개최되지 못하다 3년 만에 엄청난 시민이 거리로 나온 셈이다. 제주에서도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이들이 제주행진을 준비했다. 서울까지 가려면 탄소배출이 심각하니 제주에서 모이자는 제안이었다.

9월 24일 토요일 오후 4시 30분 제주시청 앞. 선선한 가을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 같지 않아 필자도 마음이라도 보태자며 참가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제주시청 앞에는 300여 명의 시민이 모여있었다. 날씨 좋은 주말에 기후 걱정으로 많은 시민들이 모인 것에 놀랐다. 그리고 고사리손으로 쓴 피켓을 들고나온 어린이 청소년 참가자가 많은 것에 더욱 놀랐다.

기후정의행동은 금요일마다 등교를 거부한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파업에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이 동참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24일 행진 하루 전인 금요일(23일) ‘청소년 기후행동’이 주축이 된 글로벌 기후파업이 있었다. 용산역 광장에는 교복을 입고 등교를 거부한 청소년들이 모였다. 이들은 기후위기로 우울증을 느끼고 있고 대한민국의 청소년을 1급 멸종위기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교육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게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지 정리하는 과정을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지금 마련하고 있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25년에 입학하는 중고등학생들은 공부하게 된다. 국가교육의 방향을 잡는 무척 중요한 작업이라 다양한 의견수렴과정을 가진다. 그래서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총론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개정 교육과정 연구의 방향을 밝힌 셈이다.

이번 교육과정의 방향을 잡기 위해 2천 명 이상의 교사들, 9천 명의 국민 참여단, 10만 명의 국민설문까지 실시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작업의 결과물인 셈이다. 짐작하겠지만, 코로나19, 기후위기 등으로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흐름에 맞게 “생태전환교육, 민주시민교육 및 일과 노동에 포함된 의미와 가치 등을 교육목표에 반영”하는 방안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생태'와 '노동'을 지난달 30일 발표된 시안에서는 뚜렷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삭제되었다.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 1년 이상 계속되며 숙의된 내용들이 정권이 바뀌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생태전환교육’이 ‘일과 노동의 의미와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니 착오라고 믿고 싶다.

미래사회에서 기후위기와 생태전환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한국 사회에서 노동교육의 부재가 불러온 참사들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오로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고립된 시험 맞춤형 공부만으론 2050년을 준비할 수 없다. 환경문제를 쓰레기 줍고 샤워 물 아껴서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기후위기 사회에 대한 체계적 학습이 필요하다. 

김광수 교육감은 후보 시절부터 기후위기와 환경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늘 강조하고 무리한 고등학생 현장실습 폐지를 약속해왔다. 부디 이 강조가 강조로만 머물지 않고 제주형 교육과정에 포함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도 적극 의견을 피력해주길 바란다. 하나 덧붙이면 제주의 현안에 대해 학생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토론 자료를 만들어 제공할 것을 제안해본다. 우리 청소년들도 제주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신이 사는 지역의 현안에 관심을 가질 권리와 의무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사회 현안 관련 이야기는 수업에서 다뤄지기 힘들다.

예를 들어 7년 동안 논란이 되는 제주 제2공항에 대해 학생들이 논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제주 제2공항이 제주 사회와 언론에서는 늘 뜨거운 쟁점인데 학생들은 단편적인 내용만 접할 수밖에 없다. 결론을 내려서 입장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논쟁성을 유지하고 교사는 찬반 양측의 입장만 전달할 뿐 토론의 결론을 바꿀 수 있는 내용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독일(서독)이 종전 이후 극심한 좌우대립과정에서 1976년 마련한 교육지침인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의 ‘논쟁성 유지의 원칙’이다. 학문적으로 정치,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은 수업시간에도 논쟁적으로 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너무 정치적으로 되지 않을까,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다양한 걱정이 있을 수 있다. 세계 각국의 교육사례를 보면 그런 걱정은 기우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 문제를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은 건강한 토론 문화를 학습하는 기회가 되고, 이 논의들은 제주 지역사회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 안재홍

안재홍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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