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20) 한림읍 대림리~애월읍 고내리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한림항에서는 언제나 천년의 기다림으로 비양도가 먼저 아침을 연다.

그 뱃길 따라 뭍으로 나들이 온 바람의 올레, 항로 표시가 없어도 물길 열어 안겨주시는 톤대섬·도도리여·눌굽여가 방파제에 기대어, 저 물결 이랑마다 씨앗 한줌 뿌리며 마음 멍 때리면, 일순 한림은 한숲이 되어 고랑마다 마음 순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지구상에서 너비가 가장 작은 해변마을 대림리가 없었다면 어떻게 비양도의 물길을 열 수 있었을까. 폭 80m 대림리 포구를 지키는 비양도행 도항선 선착장을 지나 한수리로 노 저어가면, 톤대섬을 온몸으로 지켜서는 한수리포구, 이곳에서 수원리는 10분 거리인데, 한수리의 죽도연대를 지나야 한다.

비양도 도항선 대림리포구. 사진=윤봉택
비양도 도항선 대림리포구. 사진=윤봉택

수원리 마을회관 입구에서 제주올레 15-A·B코스가 나누어지는데, 다시 대림리를 건너 귀덕리에 이르면 잣질동네 성로동이 있다. 이 성로동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명월대 까지, 숱한 사연을 담은 제주돌담이 용트림하듯 밭과 마을을 이어준다.

금성리 금성천 지나 어음천을 넘으면 납읍 금산공원, 여기에서 북으로 과오름 지나 모루왓으로 내리면, 망오름 아래가 고내포구이다.

스무 번째로 연재하는 제주올레 15-A코스는 2009년 12월 26일 바닷바람으로 개장되었다. 제주올레 15코스 안내센터에서 대림리·한수리·수원리·귀덕리·성로동·금성리·봉성리·곽지리·납읍리·애월리·고내리 등 열 개 마을의 경계를 넘나들며 애월읍 고내포구까지 16.5km, 42리 올레이다.

15코스 안내센터는 비양도행 매표소 2층에 있는데, 센터 뒤에는 1934년 12월에 정비된 대림리 ‘큰물’이 있다. 비양도 도항선 선착장 역할을 하는 대림리포구를 지나 80m 지나면, 바로 톤대섬 입구에 작은 한수리포구가 있다. 

대림리 큰물.
대림리 큰물.

한수리는 한림읍 16개 마을 가운데, 면적 0.14㎦로 4만 3천여 평(약 14만2148㎡)의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인구는 500명이 넘는다. 이 한수리 대섬에 ‘대섬밧하르방당’이 있는데, 영등대왕 전설이 전해온다. 오래전 이곳에 사는 어부가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외눈박이 사는 나라에 도착하였다가 그곳에 잡혀 있었으나, 그곳에서 겨우 탈출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데, 꿈에서 나타난 신령의 당부를 그만 잊어버리고, 포구에 닿을 무렵 한마디 말로 인하여 배는 부서지고, 어부는 '영등대왕'으로 변하여 이곳에 좌정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대섬 입구에는 죽도연대 터가 있는데, 명월진 소속으로 동으로는 귀덕 유지연대, 서쪽으로는 한림 마두·금능 배령연대와 교신했다. 한수리 ‘개당’ 입구 해안에 ‘하물’이 정비되어 있고, 목재 데크를 따라 가면, ‘한수리 본향 개당·남당’이 있다. 당의 신은 문씨할망으로 바다 어부를 관장한다.

한수리 개당.<br>
한수리 개당.

수원리 고래코지 지나면, 바로 ‘큰물개’라고 부르는 대수포구가 있다. 이곳에서 ‘돈물코지’ 해안을 기점으로 마을안길로 들어서면, 목가적인 풍경화가 펼쳐지며 마음 멍 때리기가 시작된다.

마을안길 조물캐 퐁낭 쉼터에서 올레삼춘을 만나지고 나서, ‘앞동네·웃동네·뒷질목’을 지나면 마을회관 입구 ‘용구왓질’에서 15-A·B코스가 나뉜다. 수원리 마을회관을 지나면, 바로 대림리 ‘비석밧, 궁돌왓, 버리왓’인데, 납읍리 까지 밭에 작지(자갈)가 많은 게 특징이다.

길가 대림리 선돌은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석으로, 1975년까지는 이곳에서 마을제를 지냈을 만큼 마을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선돌이다.

대림리 선돌.<br>
대림리 선돌.

큰길을 건너면 돌담과 올렛담이 정겨운 대림리 하동마을이다. 귀덕리까지 연결된 ‘진동산’을 넘기면, 올레 옆에 ‘영생수물’이 있고, 그 동쪽 밭이 ‘강머리왓’이다. 올레 3km 지점을 지나면 볕 바른 ‘양지빌레’가 있고, 바로 옆에 ‘양지빌레연못’에 홍련이 정겹다. 고븐데기 돌아서면, 지난날 군사들이 활쏘기 연습을 하였던 ‘사장밧’이고, 귀덕리 4길 교차로 지나면  ‘정워리연못’이 있다. 

귀덕리 성로동 입구 ‘문밧무기’를 지나면, 잣질동네 성로동이다. ‘동웃질’에서 마을을 지나 5km 지점까지, 옛 모습 그대로 돌담과 잣질이 간직되어 있어 골목마다 살피면 좋다.

수원리 잣질.<br>
수원리 잣질.

큰길 건너 금성리 방향으로 가면 길가에 ‘연화못’이 기다린다. 바로 올레 건너에는 조군성 시혜비(施惠碑)가 세워져 있다. 조군성이가 사재를 내놓아 우물을 파서 동네에 공급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기 위하여, 1940년 5월에 귀덕리 주민들이 세운 비석이 있고, 그 서쪽에는 ‘행개못’이 있다고 하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이곳을 지나 어도오름 방향으로 가면, 애월읍 지경 금성리이다. 금성천과 어음천 변에 있는 ‘촐동산’ 아래로 금성천을 따라 오르면, 선운정사 못 미쳐 ‘대상물’이 하천 다리 아래에 있다. 7km 지점 지나 어음천을 건너면 다시 곽지리 ‘섯머흘’이다. ‘머흘·머들’은 흙 속에 박혀 있는 암반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곽지리 버들못.<br>
곽지리 버들못.

‘작지왓’ 지나 동산으로 내리면 상동마을에서 우마의 급수용으로 만든  ‘버들못’이 있고, 올레 9km 지점이 ‘장퉁이’ 지경이다. 큰 길 가로 나서면, 같은 지역을 두고서도 납읍리에서는 ‘해암이’, 곽지리에서는 ‘오전동산’이라고 부른다. 

큰 길 가에서 납읍으로 이어지는 길다란 숲이 ‘언거니동산’이다. 동산에서 내려 금산공원으로 진입하면 바로 11km 지점이 ‘둥뎅이’인데, 과거에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좀 더 가면 납읍 난대림지대 금산공원이다. 공원 내부에 마을 포제청이 있고, 초등학교 측면에 올레 중간 인증 스탬프가 있다.

납읍리 언거니동산 올레.<br>
납읍리 언거니동산 올레.

마을 ‘답단이’를 지나면 마을회관 뜨락에 ‘돌확’이 있는데, 그 쓰임새가 자못 궁금하다. 마을 중심에 고씨 열녀비와 1937년도에 인공 조성한 ‘새못’이 있으며, 마을을 벗어나 북쪽으로 가면, 마을 밖에 4.3성 유적이 있다.

과오름은 봉우리가 3개인데, 애월리 지역 큰오름 동쪽 능선을 건너 내리면, ‘모루왓동산’이다. 고내오름은 모두 다섯 봉우리로 되어 있는데 과거에 망대가 있었다. 주봉 망오름을 따라 고내로 가면, 애월과 고내 경계에 ‘정머르, 큰태왓, 한질새왓’이 기다린다.

일주도로 건너 마을로 가는 길목에 ‘정지동산’이 있고, ‘배염골’을 따라 가면, 고내포구 위에 지난날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우주물’이 있으며, 그 위에 제주올레 15코스 종점 제주올레 16코스 안내센터가 있다.

납읍리 새못.<br>
납읍리 새못.
사진=윤봉택
고내포구.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로 격주로 게재합니다. 


# 윤봉택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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