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전국 갈등관리 포럼] 제주 '국책사업' 갈등지수 월등히 높아, "갈등 고착화 집중관리해야"

30일 오후 1시 제주시 아젠토피오레컨벤션에서 열린 '2022 전국 갈등관리포럼'. ⓒ제주의소리
30일 오후 1시 제주시 아젠토피오레컨벤션에서 열린 '2022 전국 갈등관리포럼'. ⓒ제주의소리

제주가 '갈등의 섬'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된 데는 지방정부가 스스로의 역할을 저버렸기 때문이라는 아픈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다른 사례에 비해 압도적으로 갈등지수가 높은 제주 제2공항 사업의 경우 '갈등 조정자' 역할을 맡아야 할 제주도정이 스스로 '갈등의 주체'로 전락하면서 더 큰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제주특별자치도와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제주도사회협약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2022 전국 갈등관리 포럼'이 30일 오후 1시 제주시 아젠토피오레컨벤션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은 제주지역의 갈등관리 사례를 바탕으로 공공갈등 공론화와 향후 전망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위해 전국 지자체 공무원과 갈등관리 전문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포럼은 기조연설에 이어 3개 세션에 6가지 주제발표로 진행됐다. 1세션에서는 '제주지역 갈등사례 및 주요사업 현황'을 주제로 제주의 갈등관리 시스템 활용 사례와 개선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2세션은 '국내외 갈등관리시스템 활용사례와 개선방안'을 주제로 각 지의 갈등 해소 사례를 되돌아봤고, 3세션에서는 '제주해상풍력발전 관련 갈등 해결방안'을 주제로 범위를 좁혀 방향성을 모색했다.

◇ 김태석 전 의장 "행정기관에 물병 던지는 시민들, 신뢰 없이 갈등조정 불가능"

기조발제에 나선 김태석 전 제주도의회 의장은 제주의 공공갈등 양상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방정부가 갈등의 주체가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갈등의 공적 해결 측면에서 정부나 지방정부가 사인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함에도, 제주의 경우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지방정부가 갈등의 주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30일 오후 1시 제주시 아젠토피오레컨벤션에서 열린 '2022 전국 갈등관리포럼'에서 기조발제에 나선 김태석 전 제주도의회 의장. ⓒ제주의소리
30일 오후 1시 제주시 아젠토피오레컨벤션에서 열린 '2022 전국 갈등관리포럼'에서 기조발제에 나선 김태석 전 제주도의회 의장. ⓒ제주의소리

김 전 의장은 "힘이 없는 일반시민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적 권위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데, 이미 제주에서 공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지방정부는 일반시민의 편에 설 수 없는 갈등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문제를 언급하며 "갈등이 커진 것은 비밀주의에 빠졌다는 것이다. 용역진 7~8명이 제주의 미래를 결정하는 제2공항을 어디에 선정했다고 하면 누가 인정하겠나. 절차적 민주성, 정당성, 투명성 등 아무것도 담보되지 않았다"고 갈등 현안을 되돌아봤다. 2015년 11월 국토부와 당시 원희룡 전 제주도정이 제주 제2공항의 입지를 최초 발표하는 순간부터 제주도는 조정자의 역할이 아닌 갈등의 주체가 된 셈이다.

그는 "제2공항은 선이냐 악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 충돌의 문제다. 양 극단의 가치가 충돌할 때 서로의 입장을 좁혀주고 하나로 묶어나가는 과정이 정치이고 행정"이라며 "갈등이 있는 곳에 중립적인 학계 교수가 가면 차분하게 의견을 경청하던 주민들도 행정기관이 가면 물병을 던진다. 기본적으로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갈등 조정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김 전 의장은 제주도의회 주도로 갈등해소 과정을 밟은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결국은 지방정부가 갈등해소 주체로서 우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그는 "지방정부가 정책의 추진에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공익을 표명하나, 이를 지역주민에게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위한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확보하지 않음으로서 갈등을 야기한다"며 "공익이라는 것 또한 정의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논증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공공갈등이 발생할 경우 쟁점에 대한 진위여부가 논란을 야기하는 점을 감안해 지역사회에 정확한 정보전달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단계별 갈등관리방안 마련과 선진 갈등관리 방법의 활용 등에 대해서도 조언을 건넸다. 

◇ 제주 갈등관리 사업 49개, 읍면지역-환경이슈로 쏠려

포럼 과정에서는 제주도내 주요 사업에 대한 갈등관리 현황에 대한 점검도 이뤄졌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소속 강권오 박사는 갈등관리 매뉴얼에 따라 관리 중인 제주도내 주요 공공갈등관리 사례를 소개했다.

강 박사는 "과거 제주는 육지부와 격리된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지역민들이 공유하는 규범이 있었지만, 통신·이동수단의 발달로 인해 타 지역과의 교류가 증가하면서 자체적인 규범도 변화가 있었다. 1차산업 위주의 마을단위 공동체 사회가 도시화로 인해 지역적 특색이 약화되고, 관광산업 등의 발달로 공동체 가치의 중요성도 감소됐다"며 갈등 증가의 원인을 꼽았다.

현재 제주도에서 관리중인 공공갈등 사업 수는 2019년 76개에서 2022년 49개로 감소했다. 다만, 갈등이 장기적으로 고착화 돼 어려움을 겪는 사업이나 갈등 상황이 정점에 달한 사업이 증가해 중점관리 사업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30일 오후 1시 제주시 아젠토피오레컨벤션에서 열린 '2022 전국 갈등관리포럼'. ⓒ제주의소리
30일 오후 1시 제주시 아젠토피오레컨벤션에서 열린 '2022 전국 갈등관리포럼'. ⓒ제주의소리

갈등지수가 가장 높은 사업분야는 단연 국책사업이었다. 분야별 평균지수를 보면 국책사업이 130점으로 가장 높았고, 도로·교통 118.3점, 지방행정 100점, 혐오시설 83.6점, 지역개발 71.4점으로 매겨졌다.

전체 49개 갈등 사업 중 유일하게 1등급으로 분류된 제주 제2공항 사업을 비롯해 해군기지(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강정마을 주민 간 갈등, 제주국립공원 확대 지정 등이 국책사업 분야의 주요 갈등 사례다. 강 박사는 국책사업의 경우 규모가 크고 이해관계의 범위도 넓다보니 높은 갈등지수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특히 제2공항의 경우 "도민, 시민단체 등의 찬반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으로, 최근 국토부 예산 반영 등과 관련한 이슈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으로, 현재 지속되고 있는 갈등이 추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우려했다.

이 밖에도 도로·교통분야의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개설사업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 지방행정 분야의 △제주곶자왈지대 실태조사 및 보전관리방안, 지역개발 분야의 △대정·한림 해상풍력발전사업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 △오등봉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 △하논분화구 습지복원 사업, 혐오시설 분야의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즈설 △도두동 장례식장 건축 △해양폐기물 처리사업 △영농가축분뇨 공동자원화 증설 사업 등을 대표적 공공갈등 사례로 꼽았다.

강 박사는 지역 공공갈등이 읍면지역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인구밀도가 낮고 넓은 부지의 확보가 용이한 읍면지역 중심의 개발사업이 늘어나며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읍면지역 특성 상 큰 마을이 형성돼 있는 해안가 지역은 지역개발 사업들이 주로 추진되는 반면, 상대적으로 정주인구 수가 적고 부지 확보가 용이한 중산간 지역에는 혐오시설 사업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우려했다.

또 "각 분야별 갈등지수가 높은 주요 공공갈등 사업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환경 이슈와의 관련성이 높았다"며 "제주지역의 특성 상 환경 이슈와의 높은 연계성은 필연적으로 시민단체와의 충돌이나 마찰이 발생할 여지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갈등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강 박사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갈등상황이 장기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 쟁점이 흐려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높다"며 "장기적으로 고착화된 사업에 대한 집중관리를 통해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민-민 갈등 사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지역의 성장동력을 감소시킬 여지가 높으므로, 행정단위에서 적극적 개입을 통한 해결이 필요하다"며 "지역 주민들 간 사회적 자본의 약화라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지역의 성장동력을 악화시킬 소지가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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