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93) 어른 장난감은 아기 이상이 없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어룬 : 어른, 나이 든 노인
* 방둥이 : 장난감, 놀이갯감
* 엇나 : 없다

부모가 연로해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자식으로서 난감하게 마련. 이럴 때 노부모에게 아기를 안겨주는 일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1988년 제주에서 촬영한 아기 사진. 사진=강만보, 제주학아카이브
부모가 연로해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자식으로서 난감하게 마련. 이럴 때 노부모에게 아기를 안겨주는 일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1988년 제주에서 촬영한 아기 사진. 사진=강만보, 제주학아카이브

‘방둥이’, 필자도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아이덜은 방둥이가 이서사 가졍 놀주, 손에 번찍 아무것도 엇이민 심심해영 놀젱 허느냐?(아이들은 장난감이 있어야 가져서 놀지, 손에 말짱 아무것도 없으면 심심해서 놀려고 하느냐?)”

이렇게 많이 쓰던 말이다. 달리 말하면, ‘방디허는 게 방둥이다.’

나이 들어 노인이 되면 거동이 불편하게 마련이다. 활동 범위가 집 안으로 좁혀지면서 마음대로 바깥출입을 못해 만날 안에서 지내야 한다. 시간이 갈 리가 없다. 하루 종일 갇혀 지내려니 답답한데다 이 일 저 일 공상만 늘어간다. 그냥 일이 아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시중들기조차 쉽지 않다.

이럴 때, 어른에게 가장 좋은 소일거리가 아기와 함께 노는 일이다. 

가까이 지내던 벗들도 하나 둘 저 세상으로 돌아가고 없다. 누구와 시름을 털어놓고 말 한마디인들 주고받을 것인가. 앞뒤가 꽉 막혀 답답한 데다 시간은 멈췄는지 가지 않고, 지는 해에 나앉아 한숨으로 신세를 달래다 눈물인들 흘리지 않을까.

옆에 아기가 재롱을 떨면 이 이상 좋은 게 어디 있으랴. 안아 들추고 업어 방 네 구석을 다 돌아도 싫지도 지치지도 않을 것이다. 웃고 장난치고, 말이 되어 등에 태우고 다니기도 한다. 더군다나 집안의 금쪽 같은 귀한 손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어른에게 장난감으로 아이 만 한 게 없다 함이다.

부모가 연로해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자식으로서 난감하게 마련. 이럴 때 노부모에게 아기를 안겨주는 일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어른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다.

‘어룬 방둥인 애기 이상 엇나’

실로 맞는 말이다. 아기를 안겨주면 “어이구, 이래 오라. 내 새끼로구나”라며 어른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활짝 피어오를 것이 아닌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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