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약속 불구 문체부 반대 흐름...“국회 대응 포함 범도민 여론화 작업 시급”

“제주에 관광산업의 컨트롤타워인 관광청을 신설하겠다. 이를 통해 제주를 수준 있고 세련된 세계 관광의 메카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겠다. … 저 윤석열, 쉽게 말 바꾸고 약속을 쉽게 뒤집지 않는 신뢰의 정치 반드시 하겠다.” 
- 2022년 2월 5일, 국민의힘 제주 선거대책위원회 필승결의대회

“제주에 관광청을 설치해서 제주 관광이 그냥 먹고 노는 관광이 아니라, 자연사와 문화, 인류학을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수준 있는 관광으로 탈바꿈 시키겠다. … 제가 정직하게 약속을 지키고 책임 있게 제주도를 변화시키겠다.”
- 2022년 3월 8일, 제주 유세

제20대 대통령선거 하루 전인 3월 8일 제주를 찾은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유세마이크 앞에서 제주도민들에게 “제주에 관광청을 설치하겠다”고 또박또박 약속했다. 앞선 2월 필승결의대회에서도 관광청 신설을 공언했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취임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국민의힘은 여당이 됐다. 이제 윤 대통령 말대로 ‘정직하고 책임 있게’ 약속을 지킬 차례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취임 첫 해부터 다른 제주 공약들의 예산이 줄줄이 삭감당하면서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고, 여기에 부처 이기주의와 타 지자체 견제까지 더해지면서 ‘관광청 제주 설치’ 공약은 위기에 놓였다. 보다 못한 제주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윤석열 정부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제주 관광청 설치' 공약이 위험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제주의소리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관광청 제주 설치' 공약이 위험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제주의소리

# 명칭은 관광청, 그런데 내용은 조금 다르다?

앞서 언급한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꾸준히 제주에 관광청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한 국정과제에도 ‘관광청 제주 설치’가 포함되는 등 대표적인 제주 공약으로 평가 받는다.

관광청은 당연히 중앙정부 부처라고 도민 사회에 인식돼 왔다. 지난해 10월 13일 윤석열 당시 대선 경선후보는 제주를 찾아 “우리나라 관광 관련 업무가 십여개 부처로 나뉘어져 있다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복합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관광청을 만들어 대한민국 관광산업의 컨트롤 타워를 제주에 둘 생각”이라고 일찌감치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기류는 사뭇 달라진 모양새다. 관광청이 중앙부처가 아닌 제주도 산하 기관의 하나로 격하됐다는 우려다.

[제주의소리]가 입수한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를 보면 ▲제주특별관광청 신설 검토 ▲제주관광진흥 종합계획 수립·실행 검토가 포함됐다. 단어대로 이해하면 계획대로 관광청이 제주에 온다고 이해할 수 있겠으나 속내는 다르다.

복수의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 문화체육관광부가 계획한 제주특별관광청은 중앙정부 부처가 아닌 제주도(지방정부) 산하 부서 혹은 기관으로 알려졌다. 애초 윤석열 대통령 공약과 국정과제에서 언급된 성격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명시된 '제주특별관광청' 신설 검토 부분(붉은 색).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공약인 '외청 관광청'과는 다른 내용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제주의소리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명시된 '제주특별관광청' 신설 검토 부분(붉은 색).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공약인 '외청 관광청'과는 다른 내용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제주의소리

제주에는 이미 제주관광공사, 제주도청 관광국이 존재하는 마당에 제주도 산하 관광청은 큰 의미가 없다. 제주관광진흥 종합계획 역시 이미 관광진흥계획을 운용하는 마당에 눈 가리고 아웅에 다름 아니다.

# 줄줄이 약속 파기, 관광청은 문체부가 반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약속한 제주 공약들이 줄줄이 무산되는 상황에서, 관광청 역시 같은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제주 해녀의 전당, 국립탐라문화재연구소 등 제주 대선 공약을 실현할 예산들은 내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제주 해녀의 전당 건립 실시설계비(9억원), 국립탐라문화재연구소 설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비(2억원) 모두 전액 삭감됐다.

이런 마당에 관광청 설립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이해관계 대상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정작 관광청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관광청 관련해 전후 사정이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제주의소리]와 만나 “지금 문체부는 내심 관광청 신설을 반대하는 기류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처 내 한 부분을 떼서 별개 기관으로 나가버리면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래서 문체부에서는 이런 논리를 들이밀고 있다. (관광)청장은 (문체부)장관보다 위치가 낮으니 국무회의도 참석하지 못하고, 결국 제대로 된 업무 수행도 어려워질 게 뻔하니 지금 문체부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문체부가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서 언급한 ‘제주특별관광청’도 결국 ‘용두사미’에 가까워 보인다.

# 신설 관광청 제주 설치, 타 지역 경쟁까지 불 붙나

줄줄이 공약 파기 분위기에 이해관계 부처까지 협조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보다 못한 국회가 관광청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송재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갑)은 문체부 산하 관광 사무를 분리해 ‘한국관광진흥청’을 설립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최근 대표 발의했다. 관광청 제주 설치를 위한 포석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주목할 부분은 경북 경주시를 지역구로 둔 김석기 국회의원(국민의힘)도 관광청 신설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일찌감치 제출해뒀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관광청 신설을 미는 구도는 일면 반갑지만, 문제는 타 지역들이 유치를 희망하면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는 사실이다.

송재호 의원은 [제주의소리]와 통화에서 “현재 외청 관광청을 유치하려는 지자체로 제주 포함 세종, 강원, 경주 등이 파악되고 있다. 강원도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위치해 있고, 경주는 대표 관광도시 가운데 하나로 김석기 의원이 법안을 제출해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맞물려 있지만, 관광청 신설은 여야 모두 이견이 없어 충분히 국회에서 통과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라며 “제주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제주에 관광청을 두겠다고 직접 약속했으니 이를 기정사실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재호 의원은 관광청 제주 설치를 위해 국회와 제주가 각자 역할에 맞게 전략적인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는 정부 조직 개편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등을 공략하며 대통령 공약을 확실히 못 박고, 제주에서는 도·의회·도민 전체가 나서서 범도민 운동 등으로 강력한 여론화가 필요하다는 것.

이와 관련해 지난 9월 19일 도정질문에서 이승아 의원은 “제가 도정질문을 준비하면서 타 시도 상황을 파악한 결과, 관광청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지자체가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며 “정부조직법에 관광청 신설은 있지만 그게 꼭 제주에 둔다는 내용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승아 의원의 지적에 오영훈 지사는 “관광청 제주 신설은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당시 공약이다.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 믿는다”며 “이미 관련 논의가 시작됐고, 의회에서도 힘을 실어달라”고 답한 바 있다. 다만, 오 지사의 답변을 두고 단순히 대통령만 바라보는 태도는 안일하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애숙 제주도 관광국장은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현재 오영훈 지사는 관광청 제주 설치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의회, 도민과 힘을 합쳐서 관광청 설치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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