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규의 film·筆·feel] (29) 불의 숨길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 


탄두_2022 / ⓒ2022. 양동규<br>
탄두_2022 / ⓒ2022. 양동규
숟가락_2022 / ⓒ2022. 양동규<br>
숟가락_2022 / ⓒ2022. 양동규

우리가 딛고 서있는 이 땅은 불이 뿜어낸 생명의 땅이다. 허나 불이 뿜어낸 땅은 척박한 땅이다. 토양 1cm가 쌓이는 데 20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불이 만들어낸 이 땅에 흙이 쌓이고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데 걸렸던 시간은 짐작하기 힘들 만큼 긴 시간이었을 게다. 어렵게 얻은 생명이었다. 

이 숲과 이 땅은 삶과 죽음의 접경지대였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숲에 숨어들었던 사람들은 용암이 만들어낸 굴속이나 궤 안으로 들어갔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 갔다. 함께 들어갔지만 함께 나오지는 못했다. 모두의 안위를 걱정해 엄마가 자식의 숨을 막아야 했던 곳이 이곳이다. 살아남은 자는 말이 없었다.

힘겹게 바위를 붙잡고 오랜 세월을 버텨낸 나무는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다. 나무가 보았던 모든 것들은 숲속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아직도 깊은 숲 곳곳에는 기억의 흔적이 남아있다. 누군가를 향했던 탄두, 누군가가 삶을 연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숟가락이 남아있는 기억의 흔적이다.

-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 작업노트


# 양동규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20대에 흑백카메라를 들고 제주를 떠돌며 사진을 배우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골프장 개발문제, 해군기지 건설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접하며 그로 인해 변화되어가는 제주의 본질을 직시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섬의 하루」, 「잼다큐 강정-범섬에 부는 바람」 등을 연출, 제작했다. 개인전 「터」(2021), 「양동규 기획 초대전 섬, 썸」을 개최했고 작품집 「제주시점」(도서출판 각)을 출판했다. 제주민예총 회원으로 「4.3예술제」를 기획·진행했고 탐라미술인협회 회원으로 2012년부터 「4.3미술제」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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