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제주 농민들, 오영훈-김경학 '1차산업 축소' 발언 규탄 기자회견 후 천막농성 돌입

농민단체들이 13일 제주도청사 1층 정문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 직후 오영훈 지사에 항의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제주의소리ⓒ제주의소리
농민단체들이 13일 제주도청사 1층 정문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 직후 오영훈 지사에 항의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제주의소리ⓒ제주의소리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의 '1차산업 축소' 발언을 두고, 제주도청 정문 앞에 천막농성장이 다시 등장했다. 주요 지역현안에 있어 귀를 닫았던 원희룡 제주도정을 규탄하던 천막이 철거된 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재현된 풍경이다.

당장의 곤란함만 면피하려 했던 제주도정의 소극적인 대응이 더 큰 화를 키웠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은 13일 제주도청 정문 진입로 앞에 천막농성장을 설치했다. 오 지사와의 면담을 시도했으나, 출타중이라는 답변을 들어야했고, 정무부지사라도 나와 추후 면담 일정을 잡아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마저 거부당하면서다.

이날 오전 기자회견 직후 농민들은 오 지사와의 면담을 통해 책임있는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그러나, 제주도청 정문 진입로가 가로막히며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제주도청 청원경찰을 비롯해 도청 내부 직원들까지 동원되며 입구 봉쇄에 나섰다.

3~4시간에 걸친 대치상황 끝에 농민들은 천막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김윤천 전농 제주도연맹 의장은 "우리가 도지사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하기를 했나. 단순히 오 지사와 면담을 통해 1차산업을 무시한 발언의 진위를 들어보고, 의향을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라며 천막 설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천막농성장 설치 직후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는 김윤천 전농 제주도연맹 의장. ⓒ제주의소리
천막농성장 설치 직후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는 김윤천 전농 제주도연맹 의장. ⓒ제주의소리

김 의장은 "천막이라도 치지 않았으면 책임있는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겠나"라며 자조 섞인 한탄을 내뱉었다.

실제 천막 설치 소식이 전해진 직후에야 김희현 제주도 정무부지사는 농성 현장을 찾아 농민들과 짧은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부지사는 오 지사가 외부일정으로 인해 부재중이라며 양해를 구했고, 농민들은 오 지사와의 대화를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확답할 것을 요구했다.

김 의장은 "모두가 들어서기 어려우면 대표자 몇 명이라도 로비에 들어가 관계자와 대화를 가질 것을 요구했지만, 이마저 문을 틀어막고 거부했다. 농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분을 냈다.

특히 김 의장은 "이전 (원희룡) 도정에서는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도, 이번 도정에서는 책임자가 와서 적극적으로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농민들의 삶을 잘 알고 농업육성 공약을 내건 오 지사라면 대화가 돼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오영훈 도정에 대한 섭섭함도 드러냈다.

당장 농민들은 오 지사와의 면담이 확약될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천막 농성장 주변에는 경찰 기동대가 긴급 배치됐다.


13일 제주도청 정문 앞에 설치된 천막농성장. ⓒ제주의소리

◇  "1차산업 비중 낮춰야" 발언 불씨...농민들 "농업 홀대 당하고만 있지 않을것"

사건의 발단은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불거졌다. 당시 오 지사는 제주의 1차산업 비중이 타 지역에 비해 높게 분포돼있다는 질문에 "2020년 기준 제주 1차산업 비중은 10.9%인데 반해 전국 평균은 3% 내외"라며 "(1차산업 비중을) 다소 낮추는 것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 지사는 "경관이 무너지면 제주의 청정자연환경 가치가 상실될 우려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1차산업 비중을 낮추더라도 8% 수준에서 관리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여지고, 대신 4%대 수준인 2차산업의 비중을 7~8%까지 높여나가는 것이 제주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며 산업구조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같은날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 역시 오 지사의 이 같은 발언에 "현실적이고 용기있는 발언"이라고 평가하면서 "예전부터 1차산업 비중이 10%를 넘는 것은 과도하다고 언급해 왔고, 산업구조 재편의 필요성을 말해왔다"고 발언했다. 김 의장은 이에 더해 "기후위기, 평균기온 상승으로 전남에서 월동채소 재배되기 시작하면 제주 밭농업 경쟁력이 없어지고 있다"며 친환경 농업을 '희망고문'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13일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영훈 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대치중인 제주 농민들. ⓒ제주의소리
13일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영훈 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대치중인 제주 농민들. ⓒ제주의소리

이는 곧바로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은 13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농민·농업을 무시하는 오 지사와 김 의장은 즉각 사죄하고, 제주에 맞는 작부체계를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농민들은 "농업은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공익적 차원으로 생각하는게 일반적인 사고방식이지만 오 지사의 농업에 대한 인식은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하나의 악세사리로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당선된지 100일밖에 안된 도지사가 자신의 농업공약을 이행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고, 농업의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고 얘기하는게 말이 되나. 도민의 11%인 농민의 목숨줄을 쥐락펴락하겠다는 것"이라며 "도지사와 도의원 자리에 앉아 농민, 농촌을 무시하고 홀대한다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시민단체-진보정당 등 '오 도정 규탄' 한목소리 "어리석고 나태한 방식"

1차산업 축소 발언 관련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농민들을 비롯해 시민단체, 진보정당 등에서도 오영훈 도정 규탄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는 13일 성명을 통해 "1차산업 비중을 8%까지 낮추겠다는 것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제주도에서 행정을 책임지는 도정과 감시와 견제를 해야 하는 의회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는 평가"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제주가치는 "제주도는 대한민국에서 기온 상승 폭이 가장 크고 해수면 상승도 가장 높은 지역으로 이미 아열대 기후로 접어들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며 "제주도에서 농업과 목축은 산업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경관자원으로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차산업을 축소할 것이 아니라 저탄소농업과 친환경 지원을 강화해 1차산업을 기후위기 대응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며 "R&D를 지원, 2차산업의 자생력을 높이고 3차산업을 결합해 6차산업으로 도약, 농업이 미래산업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3일 농민들의 도청 진입을 막아서고 있는 청원경찰과 도청 공무원들. ⓒ제주의소리
13일 농민들의 도청 진입을 막아서고 있는 청원경찰과 도청 공무원들. ⓒ제주의소리

앞서 제주녹색당도 지난 11일 논평을 내고 오 지사와 김경학 의장의 발언에 대해 "제주 농업은 경쟁력이 없으니 줄여야 마땅하다고 입을 모았다. 3만여 농가에게 농업 관련 지원을 줄일테니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말인가. 제주 농업에 대한 인지도, 진지한 고민도 없는 해법"이라고 꼬집었다.

제주녹색당은 "1차산업을 기반으로 2차, 3차 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연계한 정책적 지원 확대가 먼저다. 도민의 건강과 안전한 먹거리의 일상적 소비기반 조성, 먹거리 정책의 실행체계 구축을 위한 점진적 도약을 준비할 수 있음에도 1차산업을 버리는 카드로 취급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태한 방식"이라고 성토했다.

이날 천막 농성에 나선 농민들은 오 지사와의 면담 이후에는 김경학 의장에 대해 별개의 입장을 묻겠다고 밝혔다. 김윤천 의장은 "비록 동시에 (집회를)하지 못해서 도청 앞에 와있지만, 오 지사와 짝짜꿍한 김경학 의장의 발언이 더욱 문제가 많다. 김 의장의 지역구인 구좌읍 농민들은 대체 뭐가 되나"라며 "김경학 의장을 대상으로도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