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선거당시 ‘오등봉 보전’ 언급 효력 없다” 판단 근거는?

 제주시 오등봉공원 민간특례사업 조감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시 오등봉공원 민간특례사업 조감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보다 빠를 수 없다. 전광석화 같다고나 할까. 윤석열 정부 들어 최고 권력자에 조응하는 사정기관의 민첩한 동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척척 손발을 맞추기로는 각 부처도 마찬가지다. 사정기관들은 여당과도 이심전심 합을 잘 맞추는 것 같다. 

역대급이다. 과거 어느 정권에서 이랬을까 싶다. 대통령이 입을 여는 순간 이들 기관은 행동을 개시한다. 넌지시 뭔가를 암시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만 해도 예외없이 움직인다. 

날래기만 한 게 아니라 일사불란까지 하다. 또 전방위적이다. 웃프게도, 권력 앞에 ‘알아서 다 해준다’는 퍼스트레이디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타깃은 거의 고정되어 있다. 대개 전(前) 정부 아니면 정적이다. 

대통령이 주연한 ‘외교 참사’ 논란은 그렇다 치자.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환율 대응 실패 논란, 미사일 낙탄 사고 등에도 일벌백계식 칼날을 들이댔으면 생각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서 메시지가 단순하다. 상황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 자체가 없다.

사정기관이 존재감을 키우면 키울수록 정치무대에서 대화와 타협이 끼어들 소지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마치 전쟁터로 변한 느낌이다.  

그래도 분명한 점은 하나 있다. 위계질서가 제대로 잡혀 있다는 점이다. 그 정점에는 윤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 한마디에 죽고 살았던 권위주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인사는 최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윤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화부터 낸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면, 제주에서는 판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시가 도백의 약속 혹은 신념을 비트는 기이한 광경이 연출됐다. 단정적으로 하극상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뭔가 이상야릇하다. ‘윤 대통령 식 위계질서’가 옳다는 건 절대 아니다. 

제주시의 ‘통념 깨기’는 오등봉공원 민간특례사업 공익소송과 관련한 대응 과정에서 빚어졌다. 진술 사항을 법원에 미리 적어 내는 준비서면에, 지난 지방선거 기간 오영훈 지사가 내놓은 답변의 ‘효력 없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잠시 5개월 전 쯤으로 돌아가 보자.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각계의 정책 질의가 쏟아지던 때였다. 

당시 제주환경운동연합은 도지사 후보들에게 총 7개 과제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 

그 중 하나가 ‘공익소송에서 원고가 승소(제주시 패소)할 경우 보호가 필요한 지역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하고 순차적으로 토지를 매입해 오등봉공원을 도시공원으로 계속 기능하게 하자는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공익소송은 도민 200여명이 제기한 ‘도시계획 시설사업 실시계획 인가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일컫는다.

오 지사의 대답은 ‘동의’였다. 오 지사는 더 나아가 오등봉사업 관련 의혹에 대한 도정 차원의 조사 요구에 “감사원의 공익감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오 지사는 취임 직후인 7월12일 그 약속을 이행했다.  

그런데도 제주시는 마치 오 지사가 마지못해-직접적으로 이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동의했다는 식으로 폄훼했다. 부연하자면, 사실상 예 또는 아니오로만 답변했기 때문에 선거캠프의 공식 답변이나 공약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너무 자의적이다. 구체적으로 감사원의 공익감사까지 언급한 마당에 도민들을 상대로 청력 테스트라도 할 셈인지 묻고싶다.

더구나 오 지사는 오등봉공원에 관한 한 그동안 결이 다른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취임 당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도 그는 “특정인, 특정세력이 과도한 이익을 보게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감사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제주시가 뭘 근거로 이렇게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급함에서 비롯된 무모한 용기인지, 혹시나 사전에 오 지사와 말을 맞춘 것은 아닌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믿고싶지 않지만, 만에하나 후자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제주시는 이번 재판 과정에서  오등봉 사업이 좌초될 경우 막대한 난개발이 예상된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어안이 벙벙하다. 2016년 9월, 오등봉공원 민간특례사업 제안에 대해 ‘수용 불가’ 결정을 내릴 때도 제주시는 사실상 난개발을 우려했었다. 사업을 추진해도 난개발, 중단해도 난개발이란다.

6년 전의 제주시와 지금의 제주시는 다른 기관인가. 그때그때 말을 바꾸는 제주시의 야누스적 변신이 놀랍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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