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81) 내 노동의 가치를 지키는 일 ‘안전운임제’

한국도로공사가 개발-보급한 왕눈이 스티커 / 사진=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공사가 개발-보급한 왕눈이 스티커 / 사진=한국도로공사

언제부터인가 출근길 왕눈이 스티커를 붙인 화물차가 눈에 띈다. 

처음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 귀여운 모습의 왕눈이였는데 요즘에는 옆으로 째려보는 눈, 위로 치켜뜬 눈. 그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왕눈이 스티커는 2020년 한국도로공사에서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운전자의 전방 주시와 야간 졸음운전 방지를 위하여 보급한 스티커로 이후 호응을 얻어 현재까지도 사용이 확대되고 있는 제품이다. 최근에는 소형차에도 귀엽게 붙여져 있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한다. 

원리는 이렇다. 눈 모양을 반사지에 출력한 왕눈이 스티커는 주간에는 후방차량 운전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시선을 스티커로 유도하는 효과가 있고, 야간에는 반사지에 전조등이 비추어 반짝이면서 전방 주시태만과 졸음 운전을 예방한다. 약 1년간의 시범 운영 후 도로공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용자의 94%가 추돌사고에 예방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왕눈이 스티커는 그림이나 사진으로 표현된 사람의 시선이 심리적인 압박을 가져와 정직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이른바 ‘감시의 눈’으로 불리는 심리학적 효과에 착안한 것이다. 

그러한 효과인지 출근길 화물차에 붙어있는 왕눈이 스티커를 보면서, “안녕? 오늘 하루는 잘 시작했니?”라고 나에게 말을 거는 듯 친근한 느낌을 받는다. 심리학적인 현상인지 직업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왕눈이 스티커로 인해 화물차가 운송 수단만이 아닌 그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일하는 화물노동자의 ‘안녕’을 묻고 싶을 만큼 인격적인 존재로 다가오기도 한다. 

2020년 한국도로공사에서 도로위의 안전을 위해 왕눈이 스티커를 개발하던 즈음에 비슷한 취지로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제’가 시행되었다. 왕눈이 스티커가 심리적인 효과로 안전을 도모했다면,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의 경제적인 안정을 통해 도로위의 안전을 도모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의 경제 불안으로 인한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을 결정하고 공표하는 제도다. 노동자의 최저임금과 같이 화물노동자의 권리와 도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적정한 운송료를 법으로 정한 것이다.

현재는 모든 화물노동자에게 적용되지는 못하고, 일부 품목에 한정되어 운영 중이다. 다만, 시행 당시 국회에서는 안전운임제를 2022년까지 일몰제로 정해두면서 현재 안전운임제 연장 여부 및 확대 적용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 화물연대의 파업 당시 국토교통부는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품목확대 등을 논의한다”는 약속을 했지만 이후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한다. 

화물차주인 화물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어 주요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다보니 근로 시간의 제한이나 최저임금도 없다. 개인사업주로 운영하면서 유류비, 차량 할부금 등의 기본적인 비용을 지출하고 추가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오래 일하고, 빨리 달리고, 많이 실어야 하는 노동 조건을 오랫동안 강요받아왔다. 안전운임제 시행 전 10년 동안 물가는 계속하여 올랐지만 놀랍게도 화물 운송료는 오히려 삭감되었다. 이는 화물노동자들의 과로와 과적, 과속의 원인으로 작용했고, 국민의 안전과도 연결되었다. 

실제로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8~2020년 사이에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중 화물차가 가해차량인 사고로 숨진 경우가 302명으로 전체의 51.9%를 차지했다. 고속도로 화물차 사고의 주요한 원인의 1~3위가 졸음운전(42%), 전방주시태만(34%), 과속운전(8%) 등으로 나타났다. 2016년 화물차가 앞차의 후미를 충돌하여 화물차주가 사망한 사고에서는 화물노동자가 21시간째 운전 중이었다는 사실이 운행기록장치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현장에서의 변화가 조금씩 시작되었다고 한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시멘트와 컨테이너 분야의 과적이 급감하고, 노동시간과 야간운행이 줄어들어 전반적인 위험도가 낮아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안전운임제의 효과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용역을 행한 한국교통연구원에서는 노동시간의 단축 등 노동조건의 개선과 함께 교통사고에 있어서 일부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제란 그 노동자를 포함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그리고 화물노동자에게 안전운임제의 폐지란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과거로 후퇴시키는 일일 것이다. 

화물노동자가 또다시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노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화물노동자를 응원한다. 안전운임제가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것에 비중을 두기 보다는, 화물노동자의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협의로 진행될 수 있길 바래본다.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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