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민의 제주 생활사] (3) 삼양동, 행원리, 세화리 등

마을마다 이름을 갖고 있다. 제주도 여러 마을 이름에는 자연발생적 이름과 인위적 이름이 있다. 자연발생적 마을 이름은 그 마을 주변, 곧 제주도 사람들이 지은 이름이다. 인위적 마을 이름은 마을 사람들의 합의에 따라 지은 이름이다. 옛날 마을 주변 사람들이 하나의 마을 이름을 지은 까닭은 여러 마을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자연발생적 마을 이름은 오랫동안 통용되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무렵에 이르러 제주도 여러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마을 이름을 짓는 수가 많았다.

제주도 여러 마을의 자연발생적 마을 이름 속에는 제주도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인식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인위적 마을 이름 배경도 들여다보고자 한다. 지금까지도 자연발생적 마을 이름과 인위적 마을 이름은 섞여 쓰이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제주도 일부 마을의 자연발생적 이름과 인위적 이름의 사례만을 한정하고자 한다.  

‘서흘개’, ‘가물개’, ‘버렁’에서 삼양동으로

‘서흘개’, ‘가물개’, ‘버렁’은 삼양동(三陽洞)의 옛 이름이다. 삼양동은 제주시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 중 하나이다. 삼양동은 현재 삼양1, 2, 3동과 도련1, 2동 등 5개의 법정동을 거느리지만, 이 글에서는 삼양1, 2, 3동에 한정한다. ‘서흘개’는 삼양1동, ‘가물개’는 삼양2동, 그리고 ‘버렁’은 삼양3동의 옛 이름이다. ‘서흘개’, ‘가물개’, ‘버렁’이 자연발생적 이름이라면, 이 3개 자연마을을 합친 인위적 이름은 ‘삼양’(三陽)이다. 삼양1동의 자연발생적 이름 ‘서흘개’와 삼양2동의 ‘가물개’의 마을 이름 배경은 가늠이 되지만, ‘버렁’의 자연발생적 마을 이름은 가늠되지 않는다. 제주도 사람들은 왜 지금의 삼양1동을 ‘서흘개’, 삼양2동을 ‘가물개’라고 이름 지었을까. 

제주시 삼양1동의 자연발생적 이름 ‘서흘개’의 ‘설-’은 제주어 ‘설덕’과 맞닿는다. ‘설덕’은 돌들이 엉성하게 쌓이고 잡초와 나무가 우거진 언덕 같은 곳이라는 말이다. 삼양1동은 두 개의 포구를 거느린다. 동동네 포구를 ‘동카름성창’, 섯동네 포구를 ‘앞개성창’이라 한다. ‘동카름성창’ 북서쪽 ‘하르비콪’은 ‘동카름성창’의 하늬바람을 막아 주는 구실을 하였다. ‘하르비콪’이란 이름은 ‘하늬보름콪’에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하르비콪’의 갯바위는 바윗돌과 돌멩이로 거칠고 성긴 모습이었다.

/ 사진=고광민
동카름성창(1992. 3. 17). 제주시 삼양1동(三陽1洞), 속칭 ‘서흘개’의 동동네 포구 이름이다. 섯동네 포구인 ‘앞개성창’에 짝하여 ‘동카름성창’이라 하는 것이다. ‘동카름성창’은 곧 방위인 ‘동’(東), 동네를 의미하는 ‘가름’, 포구를 의미하는 ‘성창’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최근 들어 포구를 크게 확장 축조해 놓았다. ‘동카름성창’ 북쪽 ‘하르비콪’에서는 세 사람이 바닷일을 하고 있다. / 사진=고광민

최근 ‘동카름성창’이 확장 건설되기 전에는 ‘하르비콪’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바윗돌과 돌멩이로 거칠고 성긴 모습의 갯가 이름을 ‘서흘’이라고 붙인 바다 지명은 다른 곳에도 있다. 표선면 세화2리 ‘생걸이’라는 포구 동쪽 해변은 바윗돌과 돌멩이가 거칠고 성긴 모습이다. 세화2리 사람들은 이곳을 ‘개서흘’이라고 한다. ‘개서흘’은 갯가에 있는 ‘서흘’이라는 말이다. 서귀포시 법환동 ‘막숙개’라는 포구 서북쪽 해변은 바윗돌과 돌멩이가 거칠고 성긴 모습이다. 서귀포시 법환동 사람들은 이곳을 ‘서흘’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주시 도두1동과 도두2동 바다 경계 지점에는 ‘큰설’과 ‘족은설’이 있다. 바다의 벼랑 바위가 동쪽에 있는 ‘족은설’에 비하여 크고, 그 모양이 매우 거칠어 ‘큰설’이다. 제주시 삼양1동의 자연발생적 이름 ‘설개’는 표선면 세화리의 ‘개서흘’, 서귀포시 법환동의 ‘서흘’, 그리고 제주시 도두동의 ‘큰설’과 ‘족은설’과 같이 거친 갯바위 모습이다. 이형상(李衡祥, 1653∼1733)도 『남환박물』(南宦博物)에서, 제주도 바다의 “사방 둘레는 칼날 같은 벼랑 바위가 둘러쳐져 있다”(四圍劍石束立)라고 기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제주시 삼양2동의 자연발생적 이름은 ‘가물개’다. 더러 ‘가몰개’라고도 한다. 삼양2동 바다는 거친 바위로 이루어진 삼양1동의 바다와 대조적이다. 삼양1동 바다는 울퉁불퉁한 갯바위로 구성되었다면, 삼양2동의 바다는 검은빛이 감도는 모래밭으로 구성되었다. 삼양2동의 바닷모래는 패사질(貝砂質)의 흰 모래가 아니다. 한라산 화산활동 때 생겨난 화산재의 검은빛이 감도는 모래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런 모래를 ‘감은모살’이라고 한다. 삼양2동 바다의 ‘감은모살’은 삼양3동과 경계 지점에 있는 삼수천을 따라 흘러내렸을 것이다.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은 지금의 삼양2동을 ‘가물개’ 또는 ‘가몰개’라고 이름 지었다. ‘가몰개’는 가맣게 생긴 모래라는 말이다. 농사일에 지친 제주도 사람들은 한여름에 ‘가물개’의 ‘감은모살’에서 찜질하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마당으로 인기 높았다.

/ 사진=고광민
모살뜸(1960년대). 제주도 사람들은 삼복더위 때 삼양2동 바닷가 ‘감은모살’ 속에 몸을 묻었다. 이를 ‘모살뜸’이라고 한다.  / 사진=홍정표

그리고 삼양3동의 자연발생적 이름은 ‘버렁’이다. 왜 제주도 사람들은 지금의 삼양3동의 옛 이름을 ‘버렁’이라고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창명 박사의 『제주도 마을 이름 연구』(2004년,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에 따르면, 19세기 말에 장봉수(張鳳秀)와 박운경(朴雲景) 두 사람이 주도하여 ‘서흘개’, ‘가물개’, ‘버렁’의 자연마을 셋을 합친 인위적 이름을 ‘삼양’(三陽)이라고 지었다. 

‘어등개’에서 행원리로

‘어등개’는 구좌읍 행원리의 옛 이름이다. 행원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30여 ㎞ 떨어진 곳에 있다. 제주도는 원래 좋은 조건을 갖춘 포구가 귀한 섬이다. 그러나 제주도 사람들은 바다로 가는 길목인 포구는 필수조건이었다. 제주도 포구는 갯가 중 후미진 곳에 자리하는 수가 많았다. 이런 곳을 ‘개’라고 하였다. 제주도는 화산섬이기에 갯가에는 바윗돌들이 들쑥날쑥 즐비하였다. 제주도 해안선 길이 253㎞ 중 그럴듯한 포구는 드물었다. 어쩌다 바윗돌로 이루어진 ‘코지’로 의지가 될 만한 곳이나 후미진 곳에 돌담을 둘러 포구를 만들었다. 배를 간신히 들여놓을 만큼만 사람의 힘으로 바닷가 바위를 쪼아 포구를 만든 마을도 있었다. 행원리 포구에서 서북쪽으로 나 있는 ‘막나라코지’와 ‘빌렛기’ 사이, 깊게 600m 정도 후미져 들어간 ‘안소’부터 ‘밧소’ - ‘한개’ - ‘한갯목’까지 이어진다.

구좌읍 행원리 ‘한개’ 포구와 그 주변(1979년) / 사진=국립지리원
구좌읍 행원리 ‘한개’ 포구와 그 주변(1979년) / 사진=국립지리원

행원리 포구는 하늘로부터 얻는 것이었다. 행원리는 제주도 안에서도 가장 좋은 포구를 거느리고 있는 마을이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지금의 행원리 이름을 자연발생적으로 ‘얻은개’라고 하였고, ‘얻은개’는 ‘어등개’로 변하였다. ‘어등개’라는 마을 이름은 지금의 행원리 사람들이 지은 마을 이름이 아니었다. ‘어등개’가 제주도 사람들이 지은 자연발생적 이름이라면, ‘행원리’(杏源里)는 행원리 사람들이 지은 인위적 이름이다. 

‘궤’에서 한동리로

‘궤’는 구좌읍 한동리의 옛 이름이다. 한동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31㎞ 지점에 있다. 왜 제주도 사람들은 지금의 한동리를 ‘궤’라고 이름 지었었을까. 1975년 2월 27일, 현용준은 한동리 허술(1898년생, 남) 어르신에게 가르침 받은 「도채비불과 漢東里名」이라는 전설을 『제주도전설』(濟州島傳說, 瑞文文庫)에 실었다. 옛날 이 마을엔 ‘도채비불’(도깨비불)이 끊임없었다. 이 ‘도채비불’은 마치 총알처럼 밤마다 바다 쪽으로부터 날아서 들어오고, 그것은 집 처마에 붙어 삽시간에 집이 타올랐다는 것이다.

/ 사진=고광민
지붕에 불이 붙은 불을 끄다(1960년대). 제주도에서는 화마(火魔)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전승되었다. “‘속불’은 물로 끄고, ‘웃불’은 멍석으로 끈다”라고 말이다. ‘속불’은 집안에서 불이 일어나 초가지붕까지 솟구치는 불이고, ‘웃불’은 어딘가에서 불씨가 날아와 초가지붕에 붙은 불이다.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지붕에 멍석을 덮었다. 불씨가 초가지붕 위로 날아와 붙은 ‘웃불’이 났던 모양이다. / 사진=제주시청

왜 한동리에서는 도깨비불이 날아와 지붕에 붙어 화재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전승되었는지를 한동리 바다 지명에서 찾을 수 있다. 

한동리 사람들은 한동리 바다 ‘바른알’부터 ‘듬벗이’ 사이 바다를 ‘조픈모살’이라고 한다. 왜 ‘조픈모살’일까. 제주도 사람들은 조[粟]를 ‘남방아’라는 절구에서 찧고 나서 ‘푸는체’(키)로 펐다.

푸는체(길이 55.5㎝, 폭 48.5㎝). ‘푸는체’는 곡식 따위를 까불려 쭉정이나 티끌 따위를 골라내는 키이다. 이것은 안덕면 감산리 민속자료실에 있는 것이다. 제주도 ‘푸는체’는 제주도 이외의 육지부에서 전승되는 ‘키’와 비교할 때, 바닥의 재료와 형태가 달랐다. 제주도 이외의 육지부의 ‘키’ 바닥은 버들가지나 대오리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제주도 ‘푸는체’ 바닥은 ‘자골’(차풀), 새삼, 버드나무 따위로 만들었다. 그중 ‘자골’로 만든 ‘푸는체’를 으뜸으로 꼽았다. 제주도 이외의 육지부에서 전승되는 ‘키’에는 귀[耳]가 달렸지만, 제주도 ‘푸는체’에는 귀가 없다. 그리고 제주도 이외의 육지부에서 전승되는 ‘키’의 뼈대는 왕대나무이지만 제주도의 그것은 ‘자귀낭’(자귀나무)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것을 ‘에움’이라고 한다. ‘푸는체’의 바닥을 ‘에움’에 끼우고, 칡넝쿨로 얽어맸다. 제주도에서 ‘푸는체’를 만드는 고장은 한림읍 금악리였다. / 사진=고광민
푸는체(길이 55.5㎝, 폭 48.5㎝). ‘푸는체’는 곡식 따위를 까불려 쭉정이나 티끌 따위를 골라내는 키이다. 이것은 안덕면 감산리 민속자료실에 있는 것이다. 제주도 ‘푸는체’는 제주도 이외의 육지부에서 전승되는 ‘키’와 비교할 때, 바닥의 재료와 형태가 달랐다. 제주도 이외의 육지부의 ‘키’ 바닥은 버들가지나 대오리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제주도 ‘푸는체’ 바닥은 ‘자골’(차풀), 새삼, 버드나무 따위로 만들었다. 그중 ‘자골’로 만든 ‘푸는체’를 으뜸으로 꼽았다. 제주도 이외의 육지부에서 전승되는 ‘키’에는 귀[耳]가 달렸지만, 제주도 ‘푸는체’에는 귀가 없다. 그리고 제주도 이외의 육지부에서 전승되는 ‘키’의 뼈대는 왕대나무이지만 제주도의 그것은 ‘자귀낭’(자귀나무)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것을 ‘에움’이라고 한다. ‘푸는체’의 바닥을 ‘에움’에 끼우고, 칡넝쿨로 얽어맸다. 제주도에서 ‘푸는체’를 만드는 고장은 한림읍 금악리였다. / 사진=고광민

이때, 조 겉껍질의 겨는 몹시 가벼워서 어지간한 바람에도 잘 날렸다. 조 겉껍질의 겨를 ‘붕뎅이체’라고 하였다. ‘조픈모살’은 조를 절구에서 찧고 ‘푸는체’로 펐을 때 날리는 ‘붕뎅이체’ 같은 모살(모래)이라는 것이다. 한동리 바다의 ‘조픈모살’은 시절에 따라 많기도 또는 적기도 하였다. 어떨 때는 ‘조픈모살’이 그 주변에 있는 ‘갯담’을 덮어버렸다. ‘갯담’은 돌담으로 만든 개매기인 ‘개’를 둘러쌓은 담이라는 말이다. 

‘조픈모살’에는 서쪽에 ‘모려진개’, 동쪽에 ‘바른알개’가 있다.

바른알개(2017. 7. 23). ‘바른알개’는 한동리 바다 ‘조픈모살’ 앞에 있다. ‘바른알개’는 일주도로에서 바닷가로 곧바로 이어진 길과 마주치는 곳에 있다. 그 길 좌우에 한동리 ‘섯동네’와 ‘개렝이동네’가 있다. ‘바른알개’는 마을 바른 아래쪽에 있는 석방렴(石防簾) ‘개’이다. ‘바른알개’ 돌담은 조간대 중간층에 걸쳐 있다. ‘바른알개’는 북쪽을 향하여 돌담을 에둘렀다. ‘바른알개’ 돌담 길이는 48m 정도다. ‘바른알개’ 돌담 모양은 ‘一’ 자 모양이다. 단면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헝클어졌다. ‘바른알개’ 바닥에는 모래, 자갈, 돌멩이가 띄엄띄엄 널려 있다. / 사진=고광민
바른알개(2017. 7. 23). ‘바른알개’는 한동리 바다 ‘조픈모살’ 앞에 있다. ‘바른알개’는 일주도로에서 바닷가로 곧바로 이어진 길과 마주치는 곳에 있다. 그 길 좌우에 한동리 ‘섯동네’와 ‘개렝이동네’가 있다. ‘바른알개’는 마을 바른 아래쪽에 있는 석방렴(石防簾) ‘개’이다. ‘바른알개’ 돌담은 조간대 중간층에 걸쳐 있다. ‘바른알개’는 북쪽을 향하여 돌담을 에둘렀다. ‘바른알개’ 돌담 길이는 48m 정도다. ‘바른알개’ 돌담 모양은 ‘一’ 자 모양이다. 단면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헝클어졌다. ‘바른알개’ 바닥에는 모래, 자갈, 돌멩이가 띄엄띄엄 널려 있다. / 사진=고광민

한동리 사람들은 ‘조픈모살’이 ‘갯담’을 덮어버릴 정도로 많이 쌓이면 마을 사람들이 질병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도 전승되었다. 한동리는 크게 한라산 쪽에 있는 ‘웃한동’과 바다 쪽에 있는 ‘알한동’으로 구성되었다. ‘조픈모살’을 끼고 있는 ‘알한동’은 북서풍으로 바람에 시달렸고, 초가집에 화재를 일으키는 바람으로 작용하였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조픈모살’은 추분(9월 23일경)부터 청명(4월 5일경)까지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북서풍 바람의 유산이었다. 사리 때 밀물과 파도가 밀어 올린 바닷모래는 한동리 갯가까지 올라왔다. 조금 때는 바닷물이 낮아지니 바닷모래는 며칠 동안 북서풍 건조한 바람으로 바싹 말랐다. 그리고 바싹 마른 바닷모래는 북서풍을 타고 육지로 날아가 모래밭을 만들었다.

중국 고대 전설 수인씨(燧人氏)는 괴목(槐木)으로 불을 일으키는 법을 발견하고 인류에게 유산으로 전하였다.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은 지금의 한동리 옛 이름을 수인씨가 맨 처음 불을 일으킨 괴목의 ‘괴’라는 이름을 지어 통용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의 한동리를 두고 『제주계록』(濟州啓錄, 1846∼1884)은 ‘괴이리’(槐伊里), 『제주읍지』(濟州邑誌, 정조 때)는 ‘괴리’(怪里)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현용준의 「도채비불과 漢東里名」에 따르면, 1895년에 오씨 훈장은 이 마을을 ‘한동리’(漢東里)라고 이름 지었다. 중국 고대 전설의 주인공 수인씨가 괴목으로 일으킨 불을 끄는 데는 한수(漢水)를 당겨와야 하니 ‘한’(漢) 자를 써야 좋고, 한동(漢東)은 한라산 백록담의 동쪽에 있는 마을로 그 백록담의 물을 당긴다는 의미도 있어 좋다는 것이다.

‘고는곶’에서 세화리로

‘고는곶’은 구좌읍 세화리의 옛 이름이다. 세화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35㎞ 지점에 있다. 세화리 산 6번지에 있는 ‘도랑쉬오름’(382.4m)의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솟구쳐 올랐다가 지금의 세화리까지 흘러내렸다.

도랑쉬오름과 아끈도랑쉬오름(1980년대). ‘도랑쉬오름’은 왼쪽에 높게 서 있고, ‘아끈도랑쉬오름’은 오른쪽에 낮게 누었다. ‘도랑쉬오름’은 소들의 방목지, ‘아끈도랑쉬오름’은 세화리 사람들의 공동소유 ‘촐왓’이었다. ‘촐왓’은 마소의 월동 사료인 ‘촐’(꼴)을 가꾸거나 자라는 밭이라는 말이다. / 사진=고용석
도랑쉬오름과 아끈도랑쉬오름(1980년대). ‘도랑쉬오름’은 왼쪽에 높게 서 있고, ‘아끈도랑쉬오름’은 오른쪽에 낮게 누었다. ‘도랑쉬오름’은 소들의 방목지, ‘아끈도랑쉬오름’은 세화리 사람들의 공동소유 ‘촐왓’이었다. ‘촐왓’은 마소의 월동 사료인 ‘촐’(꼴)을 가꾸거나 자라는 밭이라는 말이다. / 사진=고용석

가늘게 흘러내린 용암 줄기에는 수림지대를 이루었다. 「제주삼읍도총지도」(濟州三邑都摠地圖)와 「탐라지도병서」(耽羅地圖並書)는 세화리 수림지대를 그려 넣기도 하였는데, 이곳을 ‘고는곶’이라고 하였다. ‘고는’의 ‘고늘다’는 ‘가늘다’[細], ‘곶’은 수림지대의 제주어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도 “수림지대를 방언으로 ‘곶’이라고 한다”(藪諺作花)고 하였다. ‘수언작화’(藪諺作花)에서 ‘화’(花)는 ‘곶’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지금의 세화리를 ‘고는곶’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고는곶’이라고 일렀다. 그리고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도 지금의 세화리를 한자어를 빌려 ‘세화’(細花)라고 기록하였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제주시 삼양동의 ‘서흘개’, ‘가물개’, ‘버렁’은 자연발생적 이름, 그리고 삼양동의 ‘삼양’(三陽)은 인위적 이름이다. 구좌읍 행원리의 ‘어등개’는 자연발생적 이름, 그리고 행원리의 ‘행원’(杏源)은 인위적 이름이다. 구좌읍 한동리의 ‘궤’는 자연발생적 이름, 그리고 한동리의 ‘한동’(漢東)은 인위적 이름이다. 구좌읍 세화리의 ‘고는곶’은 자연발생적 이름, 그리고 세화리의 ‘세화’(細花)는 인위적 이름이다. 제주시 삼양동은 3개의 동네를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로 ‘삼양’이라고 이름 지었다. 구좌읍 행원리와 한동리는 자연발생적 이름을 따르지 않고 ‘어등개’를 ‘행원리’(杏源里), ‘궤’를 ‘한동리’(漢東里)라고 이름 지었다. 구좌읍 세화리의 ‘고는곶’이라는 자연발생적 이름에 따라 ‘세화리’(細花里)라고 이름 지었다.

제주도의 자연발생적 이름의 의미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앞으로 우리들의 숙제로 남아 있다.


[고광민의 제주 생활사]는 제주의 문화와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이니스프리 모음재단’과 함께 합니다.


# 고광민

1952년 제주도 출생. 서민 생활사 연구자.

저서 ▲동의 생활사 ▲고개만당에서 하늘을 보다 ▲마라도의 역사와 민속 ▲제주 생활사 ▲섬사람들의 삶과 도구 ▲흑산군도 사람들의 삶과 도구 ▲조선시대 소금생산방식 ▲돌의 민속지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 ▲제주도 포구 연구 ▲사진으로 보는 1940년대의 농촌풍경 ▲한국의 바구니 외.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