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55) 제19차 직권재심 피고인 30명 전원 무죄
매일같이 술만 먹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방황했던 아들이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간절히 소망했다. 아들은 자신의 딸에게는 제주 4.3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누군가를 원망하게 되는 그 아픔을 소중한 딸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다.
6일 제주지방법원 형사4-1부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19차 직권재심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차까지 이어진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4.3피해자는 총 520명으로, 이날 500명을 돌파했다.
19차 직권재심 대상자 30명 중 8명은 1948년 1차 군법회의에 회부되 내란죄로 억울하게 옥살이했으며, 나머지 22명은 1949년 2차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이라는 누명을 썼다.
고(故) 허경옥의 아들 허모(60)씨는 아버지를 원망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호소했다.
조천읍 교래리에서 살던 허경옥은 돌담을 잘 쌓기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는데,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회부돼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4.3 피해자다.
허경옥은 무장대에 끌려가 성을 쌓는 등의 노역을 하다 탈출, 도망친 해안가에서 군경에 끌려갔다. 군경은 허경옥이 무장대에 잡혀 있던 1949년 음력 1월4일 당시 조천지서 앞에서 허경옥의 부모와 조카를 모두 죽였다.
대구형무소에서 부산형무소로 이감된 허경옥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풀려나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제주에 돌아온 허경옥은 4명의 아들을 둬 2002년 생사를 달리했다.
허경옥의 아들 허씨는 이날 직권재심 공판에서 “기억속에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만 드셨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이 저에게 ‘아버지 때문에 취업이 힘드니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아버지가 너무 밉고, 원망스러워 고등학교 졸업 후 수차례 가출도 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아버지는 한달에 한번씩 경찰서를 찾아갔어야 했다. 당시에는 왜 그래야 했는지도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후 10년 정도 방황하다 서른살이 될 때쯤 아버지가 4.3 때 피해를 겪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촌형이 4.3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아버지를 정말 싫어했지만, 자신 때문에 가족이 죽었다고 생각해 술만 드신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며 “저에게 딸이 있는데, 딸에게는 4.3에 대해 별말하고 싶지 않다. 4.3의 아픔, 원망, 슬픔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오늘도 일이 있어 법원에 다녀온다고만 했다”고 전했다.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회부돼 억울하게 옥살이한 고(故) 강원철의 아들 강서경(74)씨는 “12살 때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5살 때 어머니가 재혼했고, 친아버지는 4.3 때 행방불명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대정읍 섯알오름에서 총살당한 4.3 피해자”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강씨는 “집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나오고 중학교를 가지도 못했다. 1999년부터 매년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전 골령골을 찾고 있다.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해 매년 아버지 생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너무 억울하다. 꼭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호소했다.
유족들의 간절한 호소가 끝난 뒤 재판부는 피고인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 70여년의 누명을 씻어줬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
1차 직권재심(2022년 3월29일) 2차 직권재심(2022년 3월29일) 3차 직권재심(2022년 4월19일) 4차 직권재심(2022년 5월3일) 5차 직권재심(2022년 5월17일) 6차 직권재심(2022년 5월31일) 7차 직권재심(2022년 6월14일) 8차 직권재심(2022년 7월5일) 9차 직권재심(2022년 7월12일) 10차 직권재심(2022년 8월9일) 11차 직권재심(2022년 8월30일) 12차 직권재심(2022년 9월6일) 13차 직권재심(2022년 9월13일) 14차 직권재심(2022년 9월20일) 15차 직권재심(2022년 10월4일) 16차 직권재심(2022년 10월25일) 17차 직권재심(2022년 11월1일) 18차 직권재심(2022년 11월15일) 19차 직권재심(2022년 12월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