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82) 안전하게 운행하도록 요구하는 게 불법인가?

지난 회 기고를 통해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제의 도입배경과 효과에 대하여 소개를 한 바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가 ‘도로위의 무법자’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현재의 물류유통 시스템에 ‘안전운임제’를 도입하여 화물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운송 수입을 보장하고, 과속․과적․과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목적의 제도다. 

현재는 시멘트, 컨테이너 운송에만 한시적으로 적용 중이다. 2020년부터 3년간 시행되고 있는 안전운임제는 과속․과적․과로를 방지하는 본래의 취지에 부합한 효과를 가져왔다. 제도 시행 후 시멘트와 컨테이너 분야의 과적이 급감하고, 노동시간과 야간운행이 줄어들어 전반적인 위험도가 낮아지고 있다. 과거 화물노동자가 화물차를 유지하기 위해서 낮은 운송료 하에서 장시간 노동을 통해 채워야 했던 소득이 안전운임제 시행 후 적정 운임 보장체계로 전환되면서 가져온 효과다. (관련 기사 : 출근길 왕눈이 스티커를 바라보며 )

제주항 인근에 걸린 화물연대 파업 지지 현수막.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항 인근에 걸린 화물연대 파업 지지 현수막.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과거로 회귀할 수 없다는 절박한 외침 

화물노동자들은 도로위의 안전과 적정운임보장을 위해 안전운임제 시행 연장 및 적용 품목확대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화물노동자들은 지난 6월 1차 파업을 통해 정부와 안전운임제 연장시행과 대상 품목확대를 위한 논의를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정부와의 대화가 수개월간 진행되지 않자 화물노동자들은 지난 11월 24일에 2차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뒤늦게 화물연대와 대화 자리를 만들었지만 책임자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등장하지 않으며 형식적인 교섭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화물노동자의 생존권 요구에 “업무개시명령”이라는 희대의 탄압책을 펼쳐들고 있다. 11월 30일 시멘트 분야 파업 참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고, 운송에 복귀하지 않으면 정유업계에 대한 추가 업무개시명령과 현재 시행되고 있는 안전운임제 마저 폐지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개인사업주라는 이유로 노조를 만들지 못하고, 특수고용노동자로 최저임금의 적용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화물노동자들이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이라고 불리는 안전운임제를 요구하기 위해 차량을 멈췄다는 이유로 불법을 운운하는 윤석열 정부에게 묻고 싶다. 

과속, 과적, 과로의 주요 원인인 낮은 운송료 개선요구가 불법인가?
고속도로에서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불법인가?
일하는 사람에게 적정한 수익을 보장해달라는 요구가 불법인가?

“죽이려면 죽여라, 어차피 이렇게는 못산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금지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 위반,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에 위배될 소지가 매우 크다. 업무개시명령 직후 ILO는 “즉시개입”을 결정하고 결사의 자유 조약 위반 등에 대한 우려를 한국정부에 공문을 통해 전달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단체가 아니다. UN의 산하조직으로서 협정국이 준수해야 할 국제노동기준을 정하는 것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기관이다. 정부가 국제노동기준을 위반하게 되면 국제무역협정 등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발표에서 정부는 화물노동자의 파업으로 인해 주요 산업 3.5조원 손실을 초래했다고 한다. 화물연대는 이미 11월 중순에 총파업을 공식화하고 정부의 해결을 촉구해왔다. 비밀리에 일방적으로 파업에 돌입한 것이 아니다. 화물운송의 차질이 예정되어있던 상황에서 발생한 경제적 손실이라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동안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창출해온 경제적 효과일 것이다. 

2022년 3분기 주요 시멘트 회사의 영업이익이 수백억에 달하고 있다. 업체는 수백억의 이익을 취하고 있는데 화물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조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경제적 이익을 사회적으로 분배하지 않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에게는 왜 부담을 지우지 않고 책임을 묻지 않는지 이유를 되묻고 싶다.

화물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죽이려면 죽여라, 어차피 이렇게는 못산다.’ 하루 13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해도, 폭등한 유류비와 물가를 고려하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백기투항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29곳은 지난달 30일 화물연대 총파업 지지를 선언했다. 지지선언 기자회견 참석자가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을 성토하는 종이를 들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29곳은 지난달 30일 화물연대 총파업 지지를 선언했다. 지지선언 기자회견 참석자가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을 성토하는 종이를 들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안전운임제를 강화하자는 화물노동자의 요구는 도로 위 국민의 안전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보도에 따르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운송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기존의 안전운임제를 완전 폐기하는 것까지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뉴스를 들으며 내가 잘못들은 것은 아닌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토부 장관의 발언은 국민의 안전을 국가가 포기하겠다는 발언과도 같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전운임제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도로 위 재난을 방지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정부부처의 책임자가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 발언이 있은지 얼마 뒤 정부는 시멘트 수송차량이 과적을 하더라도 통행허가를 하겠다는 기자브리핑을 진행했다. 과적·과속·과로를 없애자는 안전운임제 요구에 대한 정부의 대답이 ‘과적’을 용인하는 것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면서도 섬뜩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가의 부재로 인한 재난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의 감시와 행동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인 듯하다.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제 확대요구는 도로 위의 안전과 일하는 사람의 노동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제 확대를 위한 총파업을 지지한다. 

화물노동자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의 응원을 보낸다.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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