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25) 추자도 ①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등대산 해안 / 사진=윤봉택
등대산 해안 / 사진=윤봉택

추자도는 상추자·하추자도 포함 유인도 4개, 무인도 38개 등 42개 섬으로 이뤄져 있는 섬들의 고향이다. 

갈치·조기·멸치의 만선을 비념하는 추자의 풍어제는 생명선이다. 음력 2월 15일 영흥리 뒷산에 있는 산신당에서 먼저 산신제를 올리고 나서는, 대서리 최영 장군 사당에서 장군제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사당 북쪽 해안 기꺼산 제단에서, 걸궁으로 배송하며 풍어제를 마무리한다.

1374년 고려조 최영 장군이 탐라국의 목호를 토벌하기 위하여, 풍랑을 피해 잠시 머물렀던 섬 추자도는, 큰작지·대서리, 절구미·영흥리, 무기·묵지·묵리, 예초리·추포리, 신상리·신하리·얼그미·신양1리, 진작지·석짓머리·신양2리 등 여섯 마을이 옹립하여 있다.

뭍과 탐라국으로 오가는 수많은 배들이 바람을 피하는 후풍처로 이용되었고, 제주도와는 교류문화를 느끼는 풍경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남도문화 일색이 아닌 추자만의 향토색을 간직한 갯내음 묻어나는 도서문화가 마흔두 개의 섬 기슭마다 면면이 살아 있다. 이는 70대 이상은 뭍으로 일을 보러 나가신다고 하지만, 60대까지는 제주시로 나가 일을 보고 있음이 문화의 동선이다.

제주올레 18-1코스는 상추자 큰작지·대서리, 최영장군사당(귓개산)·등대산·봉골레산, 영흥리 순효각·처사각·큰산·추자등대·뒷산/엉개산·바람캐·정자·추자대교·은달산·생기미·옝벤길·뒷골창·돈대산 정산 중간 인증샷·바람재·곤돌밋·장승바위·예초리·예초리포구·작은산·신대산·물생이끝·신대·신양리·추석산·황경한 묘역·모적리·모진이몽돌·모끝산·신양항까지 이어진다. 현재 구간은 11.4km이지만, 2010년 6월 26일 첫 올레를 개장할 때는 17.7km였다가, 2022년 6월 4일 제주올레 18-2코스가 새롭게 개장되면서, 코스 거리에도 11.4km, 29리로 변화가 있었다.

추자도 제주올레안내센터 / 사진=윤봉택
추자도 제주올레안내센터 / 사진=윤봉택
봉골레산 / 사진=윤봉택
봉골레산 / 사진=윤봉택

추자도에는 ‘짝제, 작지, 짝지’라 부르는 지명이 열여덟 군데나 된다. 이는 그만큼 해안선마다 작지(자갈)가 많음을 뜻한다. 대서리 ‘큰작지’는 상추자도의 추자항 권역을 의미한다. 18-1코스 출발점에서 등대산 끝자락으로, 최영 장군 사당의 귓개산(기꺼산)을 지나 낮은 봉골레산에 오르면, 남서쪽을 기점으로 메주박산, 큰골산에서 영흥리 큰산과 엉개산 사이에 펼쳐지는 남쪽 해안선이 절경이다.

‘순효각’으로 가는 대서리 올레에는 1800년대에 축조된 ‘가운데샘’이 있고, 바로 아래에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일본샘’이 있다. 영흥리의 박씨 순효각을 거쳐 추자 처사각을 지나 남쪽으로 오르면, 1970년대 이곳을 찾은 낚시꾼에 의하여 ‘나바론’이라 부르기 시작한 해안가 절벽을 감상할 수가 있다. 사실 이곳 해안선은 ‘나바론’이 아니라, 대서리 '따무내미, 독산'에서부터 영흥리 소재 큰산과 엉개산 까지 사이에 있는 기암절벽인 ‘용둠벙너메’ 해안선을 말하며, 후포 ‘용둠벙’ 정자에서 바라보는 해안 절벽이 장관이다.

영흥리 등대와 ‘바랑캐’를 지나 내리면, 자갈 해변 ‘집앞짝제’ 건너에, 상하추자를 연결하는 대교가 있다. 하추자의 첫머리 ‘아랫진두’에서 ‘진둣동산’에 이르면, 예초리와 묵리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무기재’를 오르면, 예초리 방향 왼쪽이 은달산 올레이다. 예초리로 가는 도로 옝벤길을 마주하며 걷다 보면, ‘생기미’ 해안선이 나타난다. ‘생기미짝제’에서 ‘뒷골창’으로 들어서면, 하추자 저수지이다.

하추자도 / 사진=윤봉택
하추자도 / 사진=윤봉택
추자대교-진둣다리 / 사진=윤봉택
추자대교-진둣다리 / 사진=윤봉택

묵리마을 뒷산에서 묵리와 돈대산으로 갈리는 ‘뒷장재를 지나면, 가파른 ’높은내리‘와 ’똥바우‘가 나타나고, 여기에서 좀 더 오르면 하추자에서 가장 높은 돈대산 정상으로, 정자에는 올레 중간 스탬프 인증점이 있다.

쉼 없이 정상에 오르면, 이곳 주민들이 즐겨 먹는 냉콩나물국이 생각난다. 추자에서는 대소사와 구분 없이, 콩나물을 푹 삶고 나서, 그 물을 차게 식힌 다음, 갖은 양념을 다 하여 냉콩나물국으로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신상리에서 예초리로 넘어가는 샛길 바람재를 따라 내리면, 엉개독산(큰산/주석산) 자락에 영험한 엄바위(엄바구, 엄장승)가 있다. 억발장사 전설이 서려 있는 이곳에서는, 동네 엿장수도 이 길목에 이르면, 가위질 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동쪽 마을 예초리 포구에 닿으면, 곳곳에서 추자 멸젓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풍수지리로 보면 예초리는 닭, 바라보이는 대서리 횡간도는 지네로 비유가 되기에, 두 마을에서는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는 풍습이 있다. 

엄바위. 엄장승 / 사진=윤봉택
엄바위. 엄장승 / 사진=윤봉택
예초포구, 가막녀 / 사진=윤봉택
예초포구, 가막녀 / 사진=윤봉택

예초리포구에서 기정길이 시작되는 ‘먹돌궁근골창’을 지나 작은산 해변을 넘으면, 신대산 전망대가 있다. 그 아래로 내려서면, 1801년 백서사건의 황사영 부인 정난주 마리아가 제주도로 유배 가던 중, 어린 아기 황경한을 물살 세기로 유명한 ‘물생이끝’을 지날 때, 배가 바위 가까이로 붙자마자 품에 안겼던 두 살배기 아기를 얼른 바위 위에 내려놓고 떠나갔다는 곳에, 눈물의 십자가가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소를 돌보던 마을의 오상선이가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서는, 그를 안고 돌아와 양육하였기에, 지금도 오씨와 황씨는 서로 혈연으로 여겨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 아기를 안고 가면, 종의 자식 신분이 될까 염려하여 놓고 떠나간 정난주의 애끓은 모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대정현에 유배되어 관노로서의 생을 마칠 때까지, 생이별한 아들과는 몇 번이나 소식을 주고받았을까.

신대산 남쪽 능선을 따라 ‘소문내리’를 내려서면, 동남쪽 해안이 ‘큰신대, 양짝’이며, ‘신댕이’를 지나면 넓게 펼쳐진 자갈 해안선이 ‘신대짝지’이다. 이곳 해안에는 지난날 예초리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신대샘과 능선 따라 밭을 일궜던 축대 담장과 주거 흔적이, 당시 모습으로 아스라이 남아 있어, 삶의 자취를 그대로 전해옴을 느낄 수가 있다. 추석산 능선 해안 따라 올레로 가면, 지금도 황경한의 눈물샘이 바위틈에서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다. 제주섬이 잘 보이는 그 능선 위 ‘술박낭끝’에는,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삶을 마친 황경한의 무덤이, 오늘은 바람이 되어 배냇저고리를 한없이 날리신다.

눈물의십자가, 신대산 / 사진=윤봉택
눈물의십자가, 신대산 / 사진=윤봉택
신대 / 사진=윤봉택
신대 / 사진=윤봉택
추석산, 황경한 묘역 / 사진=윤봉택
추석산, 황경한 묘역 / 사진=윤봉택

‘어리기미’라 부르는 우데밋동네 신양1리로 이어지는 ‘모진재’를 지나면, 지난날 모진이 몽돌 해변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뤘던 모적리 마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모진이 샘과 그 주변의 샘을 이용하여 논농사를 지었던 돌렝이 닮은 논 47평(155.3㎡) 한판이(신양리 58번지)와 해수욕장 ‘모진니짝지’가 그대로 살아 있는데, 그 주변에는 ‘갈방중, 달방중(갈대)’이 많이 자생하고 있다. 

신상리 남동쪽 해안을 지키는 모끝산(큰끝산)은 ‘큰끄테, 모끄테’로 남아, 지금도 밀려 나가는 해안선을 살피는 척후병이 되었고, 물결 따라가는 목에, 제주올레 18-1코스 종점 신양항이 해로를 열고 있다.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로 격주로 게재합니다. 


# 윤봉택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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